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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⑥]신비의 인도 ‘오감여행’…원초적 삶 깃든 ‘콜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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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1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4.08.14 09:02:53

▲콜카타 시내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타이완 인도 여행<2/7>

인천 - 타이베이 - 방콕 - 인도 콜카타 -(항공)- 첸나이 -(항공)- 뭄바이 -(항공) (델리 경유)- 아그라 -(열차)- 자이푸르 -(열차)- 델리 -(항공)- 바라나시 -(항공) (델리, 방콕, 홍콩 경유)- 인천


3일차 (타이베이 → 홍콩 경유 → 방콕)

타이완을 떠나며

호텔을 나와 타이베이 역에서 國光(구오꽝)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시설은 매우 크지만 비행기 노선과 승객이 적어 쓸쓸하다. 타이베이 공항에서 캐세이패시픽 항공편으로 12시 5분 홍콩으로 향하다. 타이완은 태평양 서북쪽 끝, 중국대륙 한켠에 비껴나 있다. 이 작은 섬은 세계사적으로나 세계 지리적 관점에서 변방 중의 변방이다.

바다를 건너 홍콩을 거쳐야 넓은 바깥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타이완의 지정학적 조건이 안쓰럽다. 한 때는 UN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 5000년 역사의 정통성을 인정받았으나 지금은 외롭다. 두루 다녀본 해외 중화문화권의 거점들, 즉 홍콩, 마카오, 그리고 이번에 방문한 타이완까지 중국문화의 다양성과 융합성에 다시 한 번 놀란다.

타이완의 운명은 앞으로 어찌될 것인가? 과연 언젠가 대륙에서 공산체제가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타이완은 결국 중국이라는 블랙홀에 휩쓸려 들어갈 것인가? 타이완의 미래가 어떻게 풀려나갈지 크나큰 의문을 품은 채 타이베이를 떠난다. 캐세이패시픽 항공의 스톱오버 요금제도 덕분에 인도로 가는 길에 ‘덤으로’ 들르기는 했지만 타이완은 진작 방문했어야 할 나라이다.

타이베이 공항을 정시에 이륙한 항공기는 1시간 30분후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공항은 활기가 넘친다. 모든 게이트는 세계 각국 항공기들로 가득 차 있다. ‘Asia’s World City’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느낀다. 외로운 섬에 덩그마니 큰, 그러나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타이베이 국제공항을 막 떠나온 후라서 홍콩공항이 더욱 분주하게 느껴진다.

방콕행 캐세이패시픽 항공기로 환승해 오후 3시 50분 홍콩공항을 이륙한다. 남중국해를 거의 다 건너니 인도차이나 반도가 바다와 맞닿은 모습이 보인다. 항공기는 2시간 30분 비행 끝에 오후 5시 20분 방콕 스완나품(Suvarnabhumi)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대중교통환승센터(Transportation Center)로 이동해 556번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 카오산(Khaosan) 지역으로 들어간다. 퇴근시간 교통체증이 만만치 않다.

▲콜카타


세계 젊은이들의 해방구 방콕 카오산

호텔에 여장을 풀고 카오산 거리로 나와 인파에 묻힌다. 전 세계 젊은이들의 해방구에서는 나도 젊어진다. 수많은 서양과 아시아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거리에는 훤칠한 북방계와 이목구비가 뚜렷한 남방계가 어우러진 태국의 선남선녀들이 곳곳에서 눈에 띤다. 혼자 식사하는 중에 우연히 인도 출신 중년 엔지니어를 만나 인도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Kabul)에 근무하는 UN직원이다. 인도남부 출신으로 기독교도인 그는 영어가 유창하다. 인도에서 가볼 곳과 조심할 것 등을 듣는 사이 조금은 긴장되지만 내일이면 만나게 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이 차오른다.


4일차 (방콕 → 콜카타)

방콕발 인도 콜카타행 Jet Airways 항공기 출발은 아침 9시 40분이지만 국제선이고 출근 시간 방콕시내 교통상황을 감안해 새벽에 호텔을 나와 공항 가는 길을 재촉했다. 길에 나서니 마침 영국인 청년 두 명이 공항 가는 길이라기에 1인당 150타이바트(THB, 약 5000원)씩 내고 택시에 합승했다. 수다쟁이 택시기사는 빠른 속도로 시내고속도로를 달려 30분 만에 공항에 도착하니 아직 새벽이다. 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변에 거대한 삼성 입간판이 자랑스럽게 솟아 있다.

방콕 스완나품 공항

공항 내 푸드코트에서 국수와 커피로 간단히 요기하고 항공기를 기다린다. 태국은 사람들이 선량하고 음식이 맛있고 게다가 호텔비와 교통비 등 물가가 저렴하기까지 하니 언제나 마음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나라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은 명실공히 ‘국제공항’이다. 유럽, 아시아 각 지역은 물론 중동, 심지어 아프리카 지역으로 항공기가 빈번히 드나든다. 그런 만큼 공항에 오가는 승객들의 용모도 다양하다. 동서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일찌감치 문화와 음식, 사람이 섞이고 또 섞여서 만들어진 문화가 태국의 브랜드일 것이다.
인도 땅을 밟다

Jet Airways 065편은 방콕 공항을 정시에 출발해 서북쪽으로 향한다. 기내식사는 일품이다. 항공기는 미얀마 상공을 날아 벵골만(Bay of Bengal) 북쪽 해안을 스쳐 2시간 30분만인 인도시각 오전 10시 50분 콜카타(Kolkata) 공항 착륙을 앞두고 있다. 항공기는 만석이다. 옆자리에 앉은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Palo Alto)에 거주하는 인도 출신 사업가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40년 전에 콜카타를 떠나 미국에 왔지만 콜카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고 불만을 뱉는다.

첸나이(Chennai), 뭄바이(Mumbai) 같은 도시들에 비하면 죽은 도시나 다름없다고 혹평한다. 떠나온 고향이 뒤처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시로 받아들인다. 그는 또한 음식과 물, 거리의 소음, 소매치기, 지저분함, 이런 것들을 견디라고 당부한다. 콜카타에서 내가 받을 충격을 배려해서 그랬을 것이다. 1960∼70년대의 한국 모습을 기억하는 나에게 콜카타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공항 환전소에서 미화 220달러를 내미니 9450 인도 루피를 내준다. 환전소 직원은 오늘 환율이 좋은데 왜 좀 더 바꾸지 않느냐고 한다. 친절인지 상술인지 알 수 없다. 시내까지 교통수단은 택시가 유일하다. 공항 터미널을 나오니 온갖 종류의 바가지 운전자들이 어수룩한 동양의 여행자를 유혹한다. 택시 요금 수준을 이미 알고 왔는지라 흔들리지 않고 230루피(약 5600원)에 택시 하나를 흥정해 시내로 향한다.

▲콜카타 트램


인도 여행은 오감으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은 30km 가량이지만 도로가 불량해 1시간쯤 걸린다. 시내로 들어가면서 벌써 인도를 체험하기 시작한다. 매연, 먼지, 소음, 경적 등 오감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인도 여행은 오감으로 하는 것이 맞다. 낡은 버스의 엔진소리, 콜카타 트램의 경쾌한 경적, 까마귀 소리, 어딜 가도 풍기는 온갖 냄새, 이상한 냄새, 역한 냄새, 좋은 냄새, 야릇한 냄새, 이런 것들을 글로써 표현할 방법이 없다.

Sudder Street 여행자 거리에 자리 잡은 호텔은 깔끔하다. 간단히 샤워를 하려고 비누까지 묻혔으나 물이 끊긴다. 연중 24시간 수돗물이 콸콸 나오는 나라에 사는 것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호텔을 나와 몇 발짝 걸으니 파크스트리트(Park Street) 지하철 정거장이다. 지하철 차량은 1975년 우리나라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 시 투입했던 차량보다 훨씬 못하다. 그래도 콜카타는 인도에서 델리와 함께 드물게 지하철이 있는 도시다. 칼리가트(Kalighat)역에 내려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칼리사원(Kali Temple)이다.

▲빅토리아 기념관


방문자를 귀찮게 하는 거리의 삐끼들

더위와 배고픔에 축 늘어진 개들이 널브러진 뒷거리를 지나 사원 앞에 도착했다. 각종 제기(祭器)를 파는 가게들을 지나 사원으로 들어서니 마침 제물로 바칠 염소를 손질하느라 분주하다. 그쯤 한 청년이 나타났다. 신분증을 내보이며 자신은 사원 소속 직원이라면서 안내를 해 주겠다고 한다. 뿌리치는 나를 굳이 끌고 다니더니 이윽고 다른 한 청년이 다가와 많은 관광객들의 이름이 적힌 기부자 명단을 제시하며 동참을 요구한다. 여행안내 책에서 익히 봤던 수법이라서 끝내 못들은 척 외면했다. 인도 여행은 이렇듯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공항에서 그랬고 또 여기 칼리사원에서 그렇다. 외국인 여행자들은 협잡꾼들의 과녁인 셈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겪어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빅토리아 기념관

칼리 사원을 나와 택시로 세인트폴 성당(St. Paul Cathedral)에 도착했다. 고딕 양식의 성당이 웅장하다. 1847년에 건축돼 여러 번 개축하며 깨끗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서쪽 벽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이태리 어디쯤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화려하다. 인접한 빅토리아 기념관(Victoria Memorial)을 찾아갔다. 외국인이라서 입장료가 좀 세다(150루피, 약 3700원). 대영제국 전성기인 1921년 완공했다.

빅토리아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손자 조지 5세가 지었다. 타지마할을 능가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온통 대리석으로 내부를 장식한 기념관에는 영국의 인도 통치 역사가 그림과 사진으로 재연돼 있다. 무려 64년 동안(1837∼1901) 이어진 빅토리아 치세(治世)의 영광을 기린 기념관을 가득 채운 인도인 관광객들의 밝은 표정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게 다가온다. 

▲레닌 동상


시내 한 복판에 레닌 동상

이곳을 나와 택시를 타고 에스플러네이드(Espalande)에 내렸다. 콜카타의 명동 같은 곳이다. 거리에는 우아한 모습의 선남선녀들이 눈에 자주 띤다. 그런데 시내 한 복판에 레닌 동상이 서있다. 콜카타가 인도 공산주의의 본산임을 깨닫게 한다. 콜카타에는 지식인들이 많았고 영국의 영향도 강하게 받았던 만큼 자연스럽게 공산주의 사상도 따라 들어왔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유독 많은 콜카타는 공산주의 사상이 번식하기 좋은 토양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하다.

죽음의 도시 vs 삶의 도시

학술과 문화예술의 도시 콜카타에서는 타고르를 비롯해 문인도 많이 나왔지만 영국 식민체제에 반대하는 인사도 많이 나왔다. 자신들의 교육을 받은 우수한 인도 젊은이들이 결국 반체제 반식민주의 인사가 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영국은 결국 1912년 수도를 반영(反英)거점 콜카타(당시 명칭 캘커타, Calcutta)에서 델리로 옮긴다. 이후 콜카타는 급속히 쇠락해 한때 ‘죽음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거리는 50∼60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많다. 게다가 지금도 기근이 날 때마다 인근 방글라데시에서 몰려드는 하층민들은 빈민굴을 넓히며 도시의 모습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고 한다.

저녁 무렵 콜카타 거리 풍경

콜카타는 웨스트벵갈(West Bengal)주의 주도이다. 인구 8500만 명의 웨스트벵갈주는 면적이 거의 남한과 맞먹는다. 1772년부터 1912년까지 140년 동안 영국 식민정부의 수도로서 한때는 런던 다음가는 세계적인 대도시로 번영을 구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도사람들은 콜카타를 ‘삶의 도시’라고 부른다. 원초적 삶의 힘이 살아서 꿈틀거린다는 뜻이다.

마침 퇴근 시간이 돼 도로는 자동차로 메워지기 시작한다. 매연, 경적, 멋대로 머리를 들이미는 자동차들, 그리고 곡예 하듯 보행자와 차량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릭샤 인력거꾼과 짐꾼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무질서 속에 묘한 질서의 물결이 흐르는 듯 도시는 오늘도 아무 탈 없이 일상을 소화해 간다. 복잡한 거리를 잠시 걸으니 비비디바크(BBD Bagh)다. 주정부청사가 모여 있는 곳이다. 식민지 시절 건설한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들이 아직 멀쩡히 사용되고 있다.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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