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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만화 법률]아버지 보석상 턴 아들과 친구, 누군 처벌 받고 누군 안 받나?

직계혈족이라도 강도죄는 처벌…친족상도례 범위 조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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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9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2014.10.09 07:37:28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저도 나이가 들고, 사회적 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이런 저런 일로 필기구를 선물 받는 일이 많아 졌습니다. 최근에 어떤 행사에 가서 기념품으로 케이스에 곱게 담긴 고급 볼펜을 선물 받았습니다. 유명한 브랜드인 P사의 필기구 세트였는데, 필자에게는 P사의 필기구와 관련한 추억이 있습니다.

재작년 필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던 중, 몇 개의 고급 볼펜 케이스를 발견했습니다. P사의 필기구 케이스였는데, 이 케이스는 내용물인 볼펜이 없는 상태로 비어 있었습니다. 필자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케이스였습니다. 왜냐고요? 그 케이스 안에 있던 볼펜을 제가 아버지 몰래 갔다 썼기 때문입니다. 고급 필기구를 써보고 싶기도 했고, 때로는 처분해 용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버지도 나중에 그 사실을 아셨지만, 웬일인지 볼펜 케이스는 장롱에 그대로 놓아 두셨더군요. 아버지는 필자가 완전한 성인이 돼 나름 밥벌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도 볼펜 케이스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 케이스를 그냥 두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게는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필자도 부모님의 지갑에서 몰래 돈을 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물건을 가지고 가서 몰래 처분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발각(?)돼 크게 혼이 나기는 했습니다. 당시의 기억으로도 죄질(罪質)에 비해 덜 혼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다른 사람의 물건에 손을 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도 물론 죄책감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크게 죄가 되는지에 대한 인식은 적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구나 한두 번 쯤 이런 기억은 있지 않을까요?

필자가 아버지의 물건을 가져다 쓴 것은 형법상 절도(竊盜)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 형법에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라는 규정이 있는데, 아버지와 자식 같은 직계혈족(直系血族)은 형을 면제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친족상도례라는 것은 범인과 피해자가 일정한 친족관계에 있는 경우 형을 면제하거나 또는 그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입니다.

친족상도례에 해당해 형이 면제되는 경우에는 아버지가 아들의 처벌을 원한다고 해도 아들은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형의 면제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처벌 자체를 할 수 없도록 법률에 규정돼 있습니다.


친족 상대 막장범죄 급증, 친족상도례 폐지도 검토

친족상도례는 오직 절도죄에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기죄, 공갈죄, 횡령죄, 배임죄, 장물죄에도 적용됩니다. 그런데 만약 아버지를 상대로 강도를 했다면 어떨까요? 이 경우에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강도죄의 경우에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아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형법이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취지는 친족이라는 울타리와 가족 간의 정서를 고려해서 처벌을 막아보자는 것인데, 아버지에게 강도짓을 한 패륜아는 이러한 고려의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만약에 아들과 아들의 친구가 아버지가 운영하는 보석상에 침입해 보석들을 훔쳤다면 어떻게 처벌 받을까요? 정답은 ‘아들의 친구는 절도죄로 처벌 받으나, 아들은 형이 면제 된다’입니다. 친족이 아닌 사람에게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들에게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고, 아들의 친구는 적용되지 않아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요즘 부모, 친족을 상대로 한 막장 범죄가 워낙 많이 일어나서, 이 친족상도례의 폐지를 검토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의도 있습니다. 필자도 친족상도례의 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범위 조정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소한 현재와 같은 필요적인 형 면제 규정은 없어지고, 고소가 있으면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親告罪)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절도죄나 강도죄나 정도가 다를 뿐, 부모, 친족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이라는 점은 동일합니다. 이러한 자들에 대한 처벌 여부를 부모, 친족에게 맡기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kohyg75@hanmail.net (정리 =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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