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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행근의 중국부자 이야기]중국 최고부자 마윈, 국내게임 진출 임박

한류 매개로 한 게임·영화분야에 관심, 한국 청년 100명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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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01호 송행근 중국문화학자⁄ 2014.10.23 09:06:49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내 직업은 돈을 버는 것이며, 또한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얼마 전 CNBC와 인터뷰에서 알리바바그룹 마윈 회장이 한 말이다.

지난 달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Alibaba)가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됐다. 상장되자마자 68달러였던 공모가는 93.89달러로 폭등했다. 알리바바의 시가 총액은 2314억 달러로 미국 페이스북의 2016억 달러를 넘었다. 인터넷기업 가운데 구글의 4061억 달러에 이어 2위로 올라선 것이다. 그 결과 마윈은 1999년 알리바바를 세운 15년 만에 1500억위안(약 25조 5000억원)의 자산을 가진 중국 최대의 갑부에 오르는 영예를 차지했다.

마윈(馬雲, 영문이름 Jack Ma)은 1964년 항저우(杭州)에서 가난한 경극배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키 162센티에 45킬로로 깡마르고 못생겨 볼품없었다. 삼수 끝에 정원미달에 힘입어 항저우대 영어과에 겨우 들어갔다. 재학중 짐꾼, 삼륜차 운전 등을 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다. 특히 못생긴 외모는 취업전선에서 30번 넘게 고배를 마시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 됐다.

마윈은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조건을 다 가진 ‘루저’였다. 작은 키와 왜소한 몸 그리고 못생긴 얼굴. 하지만 그는 2000년 포브스가 선정한 첫 중국 기업인 표지인물이었고, 2009년 타임이 선정한 전 세계 영향력 있는 100인이었다. 2012년에는 포천이 선정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마윈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이 그토록 다니고 싶어 했던 하버드대학에서 그 비결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제겐 세 가지 성공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 저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한 푼의 돈도 귀하게 사용했고 둘째, IT기술에 무지했기 때문에 이 분야의 최고 인재들을 고용해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이트를 만들었으며 셋째, 계획을 세우기 않았기에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춰 변화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계획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돈이 없었기에 한 푼도 허투루 안 썼고, 기술에 무지했기에 최고 인재를 구해 그들의 말을 경청했으며 계획이 없었기에 변화에 맞춰 잘 적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곰곰이 새겨볼만한 말이다.

▲알리바바그룹 마윈 회장.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이 세 가지 성공비결 때문에 오늘날 그가 된 것은 결코 아니다. 마윈이 중국 최고의 부자에 오른 성공요인은 크게 다섯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뛰어난 영어실력이다. 마윈은 1988년 항저우전저과학기술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첫 달 월급은 20달러였다. 영어가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1992년 ‘하이보(海博) 번역’이라는 통번역 사무실을 차리면서 창업한다. 첫 달 수입은 700위안(약 12만원)이었다.

‘항저우에서 영어를 제일 잘 한다’는 명성에 힘입어 저장(浙江)성 교통국이 미국 기업과의 분쟁협상에서 통역업무를 요청하자 1995년 미국 시애틀로 출장 가면서 미국이라는 신세계에 발을 디뎠다.

둘째, 알리바바를 비롯한 IT다. 마윈은 1999년 통역 차 간 미국출장에서 난생 처음 인터넷을 경험한다. 세상을 뒤바꿀 인터넷의 잠재력을 직감한 순간 자본금 50만 위안(당시 7000만원)과 단돈 500위안(당시 7만원)을 가지고 알리바바를 창업한다. 알리바바라 회사 명칭을 정한 이유는 동화 속 ‘열려라 참깨’ 주문에 담긴 긍정적 비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셋째, 두둑한 배짱이다. 마윈은 알리바바를 창업한지 1년 만에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으로부터 2000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한다. 그 투자금을 기반으로 2003년 온라인쇼핑몰 타오바오를 설립하면서 이베이의 공세에 맞선다. 또한 자금압박에 대비하기 위해 2005년 야후로부터 1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투자와 야후 중국 자산을 받아들이면서 알리바바의 40%의 지분을 내놓는다.

넷째, 냉철한 판단력이다. 알리바바의 필살기는 무료 전략이다. 미국의 이베이를 비롯해 다른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판매 수수료를 챙기는데 목표를 뒀다. 반면에 알리바바는 공짜로 고객과 판매업자를 연결시켜줬다. 마윈은 어렸을 때 홍콩 무협소설의 대가 진융(金庸) 소설을 즐겨 읽었고, 그에 따라 기발한 발상에 승부를 걸었다. ‘처음부터 돈 벌 생각은 말자, 일단 시장을 키운 다음에 돈을 벌자’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결국 이베이는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알리바바 천하가 됐다.

▲중국 인터넷 전자상거래 포털 사이트 알리바바 화면.


알리바바 신화, 마윈의 5가지 성공비결

다섯째, 중소기업의 관심이다. 알리바바는 하루 평균 3억명이 알리바바 사이트를 방문하고, 5000만명이 계약을 하고, 1억5000만개의 소포가 주문한 고객에게 배달되고 있다. 2007년 중국 전자상거래 전체 시장점유율 80퍼센트를 달성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전자 상거래라는 플랫폼을 통해 중국 전역의 이름 없는 개인이나 중소기업들이 만든 제품이 세계 고객과 연결되는 시스템이다.

마윈은 기업을 부자 기업과 가난한 기업으로 나눴을 때 인터넷은 가난한 기업들의 세상이라고 인식했다. 그가 알리바바를 창업한 중요한 취지도 수많은 중소기업들을 더 번창하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1999년 9월 알리바바 홈페이지가 등장한 이래 15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그가 만든 알리바바 덕택에 부유해졌다. 중소기업에 대한 애착은 알리바바가 미국 뉴욕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된 후 “중국 경제의 성공이자, 인터넷업계의 성공이고, 아울러 중소기업의 성공”이라고 한 소감에서도 잘 나타난다.

미국의 헐리우드에서 마윈의 일대기를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명실공이 성공신화를 이룩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윈은 한국에 관심이 없을까? 많다. 최근에 마윈은 박근혜 대통령과 양국 간 전자 상거래 등에서의 협력에 합의했다. 그는 또 한국의 중소기업이 중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우수한 청년 인력 100명을 초청해 교육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특히 그는 한류를 매개로 한 게임·영화 분야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게임 분야는 알리바바의 국내 시장 진출이 가시화된 분야다. 앞으로 마윈이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송행근 =  중국문화학자로 전북중국문화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하(李賀)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시가의 이해’ 등 10여권의 저서가 있다. ‘송행근의 요절복통 중국’과 ‘송행근의 차이나리뷰’ 등 다양한 중국 관련 칼럼을 쓰고 있다.

(CNB저널 = 송행근 중국문화학자) (정리 =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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