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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⑰ 지중해·대서양 여행 2]‘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을 걷다

수천년 역사 지니고 잠들어 있는 암만과 페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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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2-413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1.15 09:03:21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3일차(암만→페트라)

야박한(?) 자가용 택시

이스탄불을 전날 밤 11시 30분에 떠난 항공기는 2시간 10분 걸려 새벽 1시 30분 요르단 암만 퀸알리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소박한 공항이다. 도착비자 20디나르(3만5000원)를 지불하고 공항을 나와 시내까지 자가용 택시로 이동했다. 25디나르를 요구한다. 꽤 비싸지만 늦은 시각에 택시조차 없으니 다른 방법은 없다. 운전사는 아침에 요르단 시내를 관광시켜 주러 오겠다고 집요하게 설득해 오지만 적당히 둘러댔다. 비싼 자가용 택시 요금을 또 줄 수는 없다.

한국차 넘치는 요르단

시내로 들어가는 외곽 신시가지에 한국 음식점이 눈에 띤다. 현지 상사 주재원, 성지 순례 관광단 등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공항을 나오는 길에 처음 만나는 입간판이 LG다. 거리에는 한국차가 넘치는데 80%쯤이 한국차인 것 같다. 한국이 자동차 수출 4위 국가라는 말이 허명이 아님을 이곳 중동의 변방에서 확인한다.

호텔에 도착하니 거의 새벽 3시, 호텔 매니저는 그때까지 연락도 없이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TV는 북아프리카와 쿠르드 지역까지 범아랍 세계의 모든 채널을 쏟아낸다. 짧은 잠을 자고 아침 식사 후 길을 나섰다.

▲암만 고대 유적지의 모습.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정겨운 요르단 사람들

처음 나선 곳은 구시가 중심에 있는 로마 원형극장이다. 로마제국 식민지 시대인(당시 도시이름은 필라델피아) 2세기에 만들어졌지만 거의 온전히 보존돼 있다. 원형극장 최상단에는 여신을 모신 신전도 있다. 마침 아카바에서 왔다는 핫산이라는 남성이 말을 걸어온다.

요르단 사람들은 대체로 정겹다. 고접촉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요르단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 현지 설립 한국 회사에 근무한 인연으로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시장 자체가 작아 서구 자본은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한국 기업들이 뚫고 들어 온 것이다.

수천 년 자리를 지켜온 고대도시 암만

원형극장 한편에는 민속박물관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전통 의상, 장신구 등을 정성들여 전시하고 있다. 원형 극장에서 멀리 보이는 맞은 편 산언덕에 있는 성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언덕길 너머로 암만 구시가지 전경이 들어온다. 아침 해를 반사하는 밝은 황토색의 집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성채는 암만이 선사시대부터 수천 년 존재해 온 도시임을 말해 준다.

▲암만의 로마 원형경기장. 거대한 규모가 눈길을 끈다.


성채 안에는 우마이야 궁전과 허큘리스 신전 같은 고대 유적이 남아 있다.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시작한 우마이야 왕조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는 물론 8세기에는 이베리아 반도를 지나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 남부까지 진격해 유럽 세계를 존망의 위기에 빠뜨린 바로 그 세력 아닌가? 성채 안에는 또한 고고학 박물관이 있어서 이 도시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궁전으로 들어서면 비잔틴 양식의 돔이 반기니 여기 한때 거대한 궁전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스탄불과는 또 다른 도시 풍경과 사람들 모습에 흠뻑 젖는다.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 세계 여행은 눈도 눈이지만 귀와 코를 동원해야 제 맛이 난다. 코란 낭독하는 확성기 소리, 행상의 외침, 빵 굽는 냄새, 심지어 당나귀 배설물 냄새까지 정겹기만 하다. 

회색 눈을 가진 유목민 아내

현지 음식으로 요기한 뒤 호텔에 들러 짐을 챙겨 택시로 남부 터미널로 이동, 마침 떠나려는 와디무사행 중형버스를 잡아탄다(5디나르, 한화 8500원). 와디무사는 모세의 계곡이라는 뜻이다. 머나먼 사막 길을 버스는 잘도 달린다.

건너편 자리에 앉은 젊은 요르단 유목민 여성이 매우 아름다워 자꾸만 눈길이 간다. 흰 피부에 회색 눈동자를 가진 완전한 백인 얼굴이다. 아이 다섯, 친정어머니, 남편과 함께 타고 간다. 버스 뒷자리에는 호주 젊은이들이 있어서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 울음소리로 정신없지만 여행이 주는 참맛이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참았다.

▲페트라의 트레저리는 이름 그대로 ‘보물창고’를 뜻한다.


미국 데스밸리 닮은 사막길

와디무사로 가는 길은 미국 서부 데스밸리(Death Valley)의 험악한 사막 모습 그대로다. 인공적으로 들어선 오아시스 마을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이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답답하겠지만 고층빌딩 도시 생활에 찌들어 살던 나에게는 시원한 풍경이다.

요르단 남쪽 끝 항구도시 아카바까지 뚫린 고속도로 옆으로는 철도가 나란히 달린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좁은 길로 한 시간 구불구불 언덕을 넘고 넘어 들어가니 눈앞에 거대한 바위 산맥이 펼쳐진다. 사막 한 복판인 와디무사의 겨울 저녁 날씨가 음산하다. 부근 식당에서 현지 음식으로 저녁을 먹는데 웨이트리스가 필리핀 여성이어서 깜짝 놀랐다. 이 깊숙한 곳까지 돈 벌러 온 것이다. 


4일차(페트라→아카바)

추위에 떤 사막의 밤

난방 시설 자체가 없는 페트라 호텔의 밤은 정말 추웠다. 여기는 사막 한 복판인 데다가 해발 고도 또한 900m를 넘는 지역이다. 두꺼운 담요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저절로 이가 떨릴 정도로 추운 밤을 몇 번이나 자다 깨며 겨우 났다. 내가 사는 한국이 얼마나 풍요로운 곳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도 호텔 조식이 훌륭해서 악몽을 잊는다.

▲페트라 협곡. 계곡의 좁은 틈을 빠져 나가면 웅대한 건물이 나타난다.


정신 번쩍 들게 비싼 페트라 입장료

호텔은 페트라 유적지 정문에서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다. 상상하기 싫은 비싼 입장료(외국인 요금 기준, 한화로 환산하면 9만원)를 내고 들어가려니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더욱 궁금해진다. 8시 30분 이른 아침이지만 벌써 한국인 단체관광 버스가 여러 대 와 있다. 대화를 섞진 못했지만 먼 타국에서 만나니 반갑다.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잊힌 도시 페트라

페트라(Petra)는 ‘바위’라는 뜻으로 BC 1400년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도시다.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 그리고 십자군전쟁을 모두 겪은 곳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과 지진, 수자원 고갈 등으로 폐허가 돼 있다가 19세기 초반 스위스 탐험가가 발굴해 세상에 알렸다. 한때 실크로드 길목으로 교역의 요충지였던 화려한 도시였다고 한다.

페트라 정문에서 얼마 가니 붉은 사암이 차별침식을 받아 기묘한 기암괴석을 연출해 놓았다. 그 사이로 이어지는 계곡의 좁은 틈을 빠져 나오니 웅대한 건물이 나타난다. 바로 영화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에 등장했던 낯익은 곳이다. 헬레니즘 양식의 건물은 보고(寶庫, Treasury)다. 암벽을 깎아 만든 신전, 무덤들이 즐비한 가운데 모세의 형 아론의 무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 에돔 왕국이었던 이 지역의 통행 허가를 얻지 못해 먼 길을 돌아서 갔다고 한다.

▲페트라 무덤군. 수천년의 역사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사막에 울려 펴진 찬송가

3000명을 수용하는 원형극장 광장에 도달하니 어디선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송가가 우리말로 들려온다. 건너편 높은 언덕에서 한국인 교인 단체가 둘러 앉아 부르는 소리다. 이슬람 국가 한 복판에서 들리는 찬송가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계곡 넓게 울려 퍼지는 찬송가 소리가 기분은 좋았다.

원형극장 광장을 지나 한참을 더 들어가 로마 거리가 있던 지역까지 갔는데도 아직 11시다. 정문으로 돌아 나오려니 수많은 유럽인 단체 관광객들이 닥친다. 남쪽 아카바 항구에 대형 크루즈선이 들어왔다고 한다.

아카바행 엘란트라 택시

페트라를 나와 35디나르(약 6만원)에 택시를 대절하여 아카바로 향한다. 아카바행 미니버스는 하루 한 번 아침에만 다니는데 이미 떠났으니 택시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나중에 알았지만 페트라에서 아카바까지는 150km가 넘는 먼 길이니 택시 요금 흥정을 잘한 셈이다.

황량한 사막 길을 엘란트라 택시는 잘 달린다. 아카바가 가까워질수록 헐벗은 산세가 기승을 부린다. 아카바는 거대한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항구인 것이다. 요르단의 유일한 해상 출구인 아카바의 전략적 중요성은 이미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통해서 알고 있었던 터이다.

▲푸른 아카바만은 마음까지도 시원하게 만든다.


푸르디푸른 홍해

아카바의 겨울 날씨는 기막히게 좋다. 훌륭한 날씨와 맑은 홍해는 아카바를 세계적인 휴양지로 발전시켰다. 홍해라는 이름 때문에 어떤 빛깔일까 궁금했는데 푸르디푸를 뿐이다. 도시는 규모도 적절하고 쾌적해 걸어 다니기 그만이다.

멀리 아카바만(灣) 건너편으로 이스라엘 국경 도시 에일랏이 휘황하게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사이가 좋을 것 없는 요르단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집트까지 세 나라가 넓지 않은 아카바만을 공유하는 것이 이채롭다. 아카바에서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는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경도 있다.

친한파 팔레스타인 태권도 선수

해변에서 청년 셋이 말을 걸어온다. 완전히 백인 용모라서 유럽인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르단 국적 팔레스타인 청년들이다. 그중 한 청년은 요르단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로서 훈련이나 시합을 위해 한국에도 몇 번 다녀왔다면서 한국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는다. 해변을 거닌 후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저녁 7시다. 요르단 페트라 맥주에 기분이 알딸딸해진다. 시설이 잘 갖춰진 호텔에서 오랜만에 편안하고 따뜻한 잠자리를 맞는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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