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오⁄ 2015.02.16 09:11:09
(CNB저널=왕진오 기자) 백범 김구 선생이 강릉 선교장에 내린 휘호 '천군태연(天君泰然)'과 강릉 선교장에서 비밀리에 보관 중이던 고종 하사 추정 태극기가 최초 공개된다.
은평구(구청장 김우영)가 운영하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관장 황평우)은 광복 70주년 3.1절을 맞아 2월 25일부터관내 사찰 진관사와 한국 최대 한옥인 강릉 선교장에서 발견된 태극기를 중심으로 '광복 70년! 미래 천년 진관사·강릉 선교장의 독립운동 태극기'전을 연다.
이 전시는 2009년 발굴돼 근대문화재 제 458호로 등록된 '진관사 소장 태극기 및 항일독립신문'과 2014년 발견돼 문화재 등록을 준비 중인 '강릉 선교장 태극기'와 김구 선생의 휘호를 공개한다.
'진관사 태극기'는 1919년 독립운동 현장에 쓰였던 태극기로 보이며 우연히 발견되기까지 9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벽 속에 숨겨져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색이 변하고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타 약간 손상되었지만 형태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89cm, 세로 70cm이고, 태극의 직경은 32cm이다. 이 태극기의 4괘는 현재와 비교하면 리·감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이는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 양식과 동일하다.
진관사 태극기가 주목받는 것은 일제강점기 한국 불교계 항일운동의 자취를 보여 주는 생생한 자료이며, 일장기위에 덧그려졌다는 점이다. 일장기를 거부하고 일본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을 표현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고종이 하사한 것으로 추정하며, 강릉 선교장에서 비밀리에 보관 중이던 태극기도 최초로 공개된다. 가로 154cm, 세로 142cm 크기의 이 대형 태극기는 고종히 하사했거나, 이강백 강릉 선교장 관장의 증조부인 이근우 옹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태극기는 1908년 강릉 선교장 내 동진학교에서 사용되던 2개의 태극기 중 하나다. 일제 탄압으로 학교가 문을 닫은 후 광복될 때까지 땅속에 묻어뒀다가 광복 후 하나는 임시정부에 기증했고, 남은 하나를 강릉 선교장에서 보관해 오다 최근 공개했다.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독립운동 자료 중 이번 전시에는 신대한(新大韓) 3점, 독립신문(獨立新聞) 2점, 조선독립신문(朝鮮獨立新聞) 5점, 자유신종보(自由晨鍾報) 3점, 경고문(警告文) 1점이 전시된다. 이들은 모두 태극기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1962년 도난당했다가 최근 경매시장에 나와 52년 만에 최초 공개되는 백범 김구 선생의 강릉 선교장 하사 휘호 '천군태연'도 전시된다.
이 휘호는 광복 후 귀국한 백범 김구(1876∼1949)가 73세이던 1948년 4월, 당시 강릉 선교장 주인이던 이돈의 선생에게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남몰래 물심양면으로 도운 것을 치하하는 뜻으로 보내졌다.
한편, 이번 '진관사·강릉 선교장의 독립운동 태극기' 전에는 진관사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승려 백초월에 대한 재조명이 함께 이뤄진다.
백초월(1878∼1944)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14세에 영원사로 입산, 출가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불교계 민족대표인 한용운을 대신해 불교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특히 백초월은 진관사에 보살계 법회를 통해 군자금의 모금, 제2의 3.1운동 추진, 임정의 독립신문과 비밀 지하신문을 배포했다.
이후 1939년 '용산역 낙서 사건'의 배후로 일경에 붙잡혀 3년간 수감됐다. 출옥 후에도 임정에 군자금을 보내다가 체포, 옥고를 치르다 1944년 6월 청주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번 전시에는 백초월의 '칠언시' 및 '묵죽도' 등 서예 작품 7점이 선보인다. 전시는 4월 3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