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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쇠락한 해양왕국의 항구에 어둠 물리치는 등불 밝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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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4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4.02 09:10:35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1일차 (스페인 바르셀로나 → 포르투갈 리스본)

호텔 바로 근처는 고딕 지구다. 고딕 지구 중심에는 노바 광장이 있고 대성당이 있다. 1448년 완공했으니 560년 된 고색창연한 성당은 보수 공사 중이다. 시내에는 조그만 카지노가 드문드문 있어 호기심에 들여다보지만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없다. 고딕 지구에는 좁은 골목을 두고 아주 오래된 7∼8층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어둠침침하다. 하얀 집에 햇살이 쏟아지는 안달루시아 골목과는 완전히 다르다.

재주 많은 네팔 남성

골목을 나오니 레이알 광장, 그리고 람블라스 거리다. 거리에는 하루벌이를 시작하는 거리예술가, 판토마이머, 연기자들이 이미 분주하다. 거리에서 ‘하리’라는 네팔 남성이 한국말로 인사해온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일한단다. 한국어를 비롯해 여러 언어를 구사한다. 이곳에는 일자리 기회를 알아보러 온 것 같다. 한국에도 기회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나라 국민이라는 이유로 용모와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그가 안타까워 보인다. 그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 준다.

아침을 여는 산호세 시장은 생동감 넘친다. 부산 자갈치 시장과 흡사하다. 채소, 과일, 생선, 육류 등 별별 먹을거리가 다 있다. 람블라스 거리 남쪽 끝 항구와 닿은 광장에는 콜럼버스 기념비가 아주 높이 서 있다. 미 대륙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1888년 만국박람회 때 세운 것이다. 기념비 꼭대기에 서있는 콜럼버스의 손가락 끝은 지중해가 대서양과 만나는 남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 끝에 위치한 카보다호카. 절벽 아래로 넘실거리는 대서양의 파도를 볼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바르셀로나 1박 2일 마치고 리스본으로

바르셀로나에서의 1박 2일(정확하게 30시간)이 꽉 차게 지나갔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A2 공항버스로 공항에 도착해 포르투갈 리스본행 이지젯 항공기를 기다린다. 항공기는 1시간 35분 비행 끝에 포르투갈 시각 오후 6시 40분 리스본에 도착했다. 테주강을 따라 도시가 펼쳐진다. 어귀가 넓은 테주강은 대서양까지 훤히 열려 있다. 날씨는 바르셀로나보다 더 따뜻한 것 같다. 리스본은 언덕과 광장이 많고 광장 가운데에는 어김없이 누군가의 동상이 있다.

22일차 (리스본)

신트라와 카보다호카(호카곶, Cabo da Roca)를 모두 볼 욕심으로 새벽에 일어났다. 호텔 근처에 기차역이 있어 여유롭게 갔으나 표를 파는 사람이 없다. 자판기는 지폐를 소화하지 못한다. 수도 포르투갈하고도 중앙역인데 오전 7시에 매표원이 없다. 이해가 잘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시민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신트라 왕궁의 모습. 신트라는 도시 존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19세기 초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에덴동산이라고 극찬한 곳이다. 사진 = 김현주

흑인이 유달리 많은 포르투갈

스페인 혹은 이탈리아와 달리 포르투갈에는 흑인이 많고 거리에서는 흑백 혼성 커플도 많이 보인다. 인종 간 결혼에 개방적이라는 뜻이다. 포르투갈은 1975년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해외 식민지를 포기할 때까지 아프리카의 앙골라, 모잠비크와 폴리네시아의 동티모르를 통치했고, 마카오는 1999년까지 통치했다. 포르투갈이 과거 영토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해양박물관 입구의 대형 지도, 테주강가 발견기념비 앞 세계 지도에도 그랬고 심지어 TV 기상예보도 그렇다. 세계 날씨를 소개할 때는 딜리(동티모르), 마카오, 루안다(앙골라) 같은 곳을 모두 짚고 넘어간다.

마법의 성 신트라

우여곡절 끝에 표를 구해 신트라행 교외 통근열차에 올랐다. 열차는 도시를 벗어나 40분 만에 산중 전원 마을에 도착한다. 신트라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19세기 초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에덴동산이라고 극찬한 이유를 와보니 알 것 같다.

너무 이른 시각(오전 8시)이어서 박물관 관람은 포기하고 도시를 걸으며 사진 몇 장 남기기로 했다. 첨탑 문양이 예사롭지 않은 시 청사가 눈에 들어오더니 이윽고 야릇한 건물이 나타난다. 왕궁의 대형 원추형 굴뚝이 매우 인상적이다. 왕의 사냥물을 요리하던 부엌의 굴뚝에 불과하지만 마법의 성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트라는 도시 전체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동화책 도시 같다.

▲바스쿠 다 가마가 항해를 시작한 곳에 위치한 발견기념비. 바로 앞 광장에는 옛 해양제국 시절 일본 나가사키부터 남미 대륙까지 그들이 상륙하거나 통치했던 세계 각 지역을 담은 대리석 세계지도가 깔려 있다. 사진 = 김현주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에 서다

역으로 돌아가 카스카이스행 403번 버스를 탄다. 중간 경유지인 카보다호카까지 40분 남짓 걸린다. 버스 안에는 등교하는 학생들이 재잘거린다. 스쿨버스가 없어 등하교는 물론이고 견학 갈 때 학생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습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자주 본다. 버스는 그림 같은 시골 마을들을 무수히 지나 카보다호카에 도착했다. 절벽 아래로 대서양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유라시아 대륙 최서단이다. 더 이상 갈 곳은 없다.

포르투갈이 해양제국으로 융성했던 16세기에 활동한 민족시인 카몽이스의 시 구절 일부를 담은 시비와 등대가 있다.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Aqui ondea terra se acaba e o mar começa).’ 저 넓은 대양에 도전한 유럽인들은 결국 수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하지 않았는가? 대서양을 만난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도 유럽 대륙 최서단에서…. 북위 38.49도, 동경 9.30도, 해발 140m 지점이다. 도시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바닷바람에 떨던 몸을 녹여 준다.

▲16세기 초반 항국 방어를 위해 건립된 벨렝탑은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선박을 배웅하고 마중했던 곳이다. 사진 = 김현주

리스본에서 마카오를 엿보다 버스는 대서양을 오른쪽에 두고 절벽 길을 넘더니 눈부신 해변 마을을 여럿 지나 리스본행 열차가 출발하는 카스카이스 역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의 거리와 도시, 마을 풍경이 무척 낯익다. 리스본을 쏙 빼닮은 마카오에서 많이 봤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광장, 분수, 오르락내리락하는 구불구불 좁은 언덕길,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벽과 창틀을 칠한 집, 쇠창살 장식이 달린 작은 베란다 그리고 거기 널린 빨래. 모퉁이를 돌면 나타나는 작고 예쁜 교회, 항구 뒤로 뻗어 올라간 언덕…. 이런 모습들이 무척 정겹다.

리스본의 화려했던 한때

카스카이스 역에서 열차로 벨렝 역에 도착했다. 테주강변 넓은 공원 지역에 각종 볼거리가 몰려 있다. 리스본은 그 옛날 포르투갈 초전성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부유한 도시 아니었던가? 세계 각지의 귀한 산물들을 실은 범선들이 꼬리를 물고 테주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 지었을 왕들을 생각한다. 당시 동방에서 가져온 귀한 향료를 가미해서 고기 굽는 냄새가 도시에 가득 찼고 전세계 80개 언어가 통용됐던 곳이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16세기 건축물로서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을 기념해 건립했다. 뾰족하면서도 둥근 탑이 묘하다. 수도원 안에 성당이 있고 그 입구에는 바스쿠 다 가마와 카몽이스의 무덤이 있다. 수도원과 바로 붙어 해양박물관이 있다. 입구에는 엔리케 왕자의 거대한 동상이 있고 이어서 포르투갈 항해 기록을 표시한 대형 세계지도, 바스쿠 다 가마 동상, 카몽이스 흉상, 하비에르 신부 대형 초상화에 이어 현대 함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전시물이 있다. 해양 왕국다운 거대 규모의 해양박물관이다.

▲16세기 건축물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뾰족하면서도 둥근 탑이 묘한 모습을 띄고 있다. 사진 = 김현주

벨렝탑과 테주강을 마주하다

큰길 건너편에 있는 벨렝탑까지 걷는다. 16세기 초반 항구 방어를 위해 건립했고 출발 혹은 도착하는 선박을 배웅하고 마중했던 곳이다. 찬란한 오후 햇살을 맞으며 발견기념비(Padrao dos Descobrimentos)를 향해 걷는다. 멀리 대교 건너편으로 거대한 예수상이 보인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상을 모방한 것이다. 잠시 발을 식히려 테주강에 발을 담가 본다.

해양제국의 추억

바스쿠 다 가마가 항해를 시작한 곳에 발견기념비가 있다. 1960년 엔리케 왕자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건립한 53m의 대형 구조물에는 맨 앞 엔리케 왕자를 선두로 바스쿠 다 가마, 카몽이스, 마젤란 등 주요 인물들이 조각돼 있다. 발견기념비 앞 광장에 깔린 대리석 세계지도에는 옛 해양제국 시절 일본 나가사키부터 남미 대륙까지 그들이 상륙 혹은 통치했던 세계 각 지역이 표시돼 있다.

마침 중국인 단체 관광객 중 한 명이 중국 광둥성 지역과 마카오에도 포르투갈의 흔적이 표시된 것을 보고 뭔가 언짢은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간다. 초강대국의 영토가 이제는 사그라져 초라해져버린 소국에 의해 유린당했음에 대한 불편함의 표시일 것이다.

코메르시우에서 버스로 서너 정류장 가면 알파마 지구다. 중세 그대로의 모습일 듯한 좁고 고불고불한 길이 부산의 수정산복도로를 빼닮았다. 항구 뒤에서 곧바로 언덕이 이어지고 언덕에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리스본 특유의 도시 풍경이 부산과 흡사하다. 리스본은 소박한 도시다. 리스본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그렇다. 거창하거나 화려한 것은 없지만 좁은 땅을 아기자기하게 멋내어 가꿨다. 지금 저녁 6시, 하루 일과를 마친 서민들이 버스나 전차에서 내려 집을 향해 언덕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양손에는 채소, 과일 혹은 빵, 생선이 담긴 비닐봉지를 한두 개씩 들고 있다. 크고 작은 광장마다 들어선 성당에선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리스본에서 운 좋게 마주한 28번 전차. 가파른 내리막길을 엉금엉금 기어서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 김현주

리스본 28번 전차

나도 그 길을 정처 없이 걷는다. 길을 잃어 방황하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러던 중 우연히 언덕을 가쁘게 올라오는 28번 전차를 발견하고 얼른 탔다. 행운이다. 언덕을 한참 더 올라가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서 전차를 내렸다. 저 아래 항구가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시내로 나가는 전차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엉금엉금 기어서 간다. 리스본 28번 전차야 말로 포르투갈의 진짜 모습이다. 내일이면 이 도시, 이 나라를 떠난다. 이 거리 저 골목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정감 넘치는 거리의 저녁 풍경이 지금 호텔방에서 여행일지를 정리하는 내 눈 앞에 아른거린다.

너무 비싼 식당

마침 TV에서는 경제가 어려운 현장을 취재하는 시리즈가 나오다. 오늘은 주제가 식당업이다. 애피타이저나 수프, 후식, 와인 등을 시키지 않고 메인 디시만 먹거나 테이크아웃이 늘어나는 경향을 지적한다. 여행 중에 가끔 서빙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지만 식당은 텅텅 비어 언제나 손님은 한두 팀이다. 유럽 물가가 비싸긴 비싸다. 물가가 상대적으로 덜 비싼 포르투갈에서도 간단한 식사 한 끼라도 20유로는 들었으니 말이다.

다정한 포르투갈 사람과 한바탕 웃음

포르투갈 사람들은 온순하고 다정하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 국가부도 위기라는데 이 멋진 나라가 위기를 잘 극복하기를 바란다. 호텔로 돌아오니 주인이 나의 오늘 하루에 대해 묻는다. 카보다호카에 갔다 왔다는 말에 주인장 노인은 바다 건너 오바마 잘 있더냐고 생뚱맞은 질문을 한다. ‘포르투갈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더라’고 응수하니 한바탕 유쾌한 웃음이 터진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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