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왕진오 기자) 17세기 조선이 성대한 불교의식을 거행하면서 조성한 야외의식용 괘불을 보여주는 '청룡사 괘불(보물 제1257호, 1658)'이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 상설전시관 2층 불교회화실에서 6월 2일∼11월 29일 공개된다.
당시 불교의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죽은 많은 영혼들을 위무하기 위해 법당 내부에서 외부 공간으로 이동하여 괘불을 걸고 죽은 이들을 천도(遷度)하기 위한 대승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의식이 거행되고 석가모니와 영취산 설법이 그려진 괘불이 법당 밖에 걸리면 현세(現世)의 공간은 석가가 머무는 정토(淨土)로 바뀐다.
법회(法會)에 모인 많은 청중 중에서 부처의 앞쪽에 가사와 장삼을 입고 승려처럼 머리를 깍은 인물이 뒤돌아 앉아 있는데 그는 석가의 제자 중 가장 지혜로운 사리불(舍利佛)이다.
사리불은 설법을 듣는 청문자(聽聞者)인데 이 도상은 명대(明代) ‘법화경변상도’에 이어 조선전기 ‘법화경변상도’의 영향을 받아 그려진 것으로서 괘불에서는 ‘청룡사 괘불’ 등 3점에만 등장하는 보기 드문 예이다.
1658년 괘불을 조성한 곳은 인평대군(麟坪大君 1622~1658)의 원당(願堂)인 안성 청룡사(靑龍寺)였다. 주상전하(主上殿下)와 왕대비전하(王大妃殿下), 왕비전하(王妃殿下), 세자저하(世子邸下)의 안녕을 받들어 모신다는 축원문과 성주(城主) 김홍석(金弘錫)이 괘불 조성을 위해 향대(香臺)를 시주했다는 내용이 화기(畫記)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화원(畫員) 사과(司果) 박란(朴蘭)을 비롯한 승려 명옥비구(明玉比丘) 등 5명이 성대한 괘불 제작에 참여한 일은 불화의 조성이 왕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불화는 보통 붉은 색, 녹색, 남색의 진채(眞彩) 위주로 그려지는데 비해, 청룡사 괘불은 담채(淡彩)의 사용으로 맑고 산뜻한 느낌을 주며 노란색, 하늘색 등의 중간색이 조화를 이룬다.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천개(天蓋)와 바닥에 그려진 꽃문양, 채운(彩雲) 등이 산뜻한 채색과 어우러져 석가가 머무는 곳이 정토(淨土)임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