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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해피엔딩일 줄 알았지?" 관객 유린하는 뮤지컬 '유린타운'

배우가 무대 위에서 직접 하는 역대급 스포일러에 사회풍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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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5.06.03 16:48:41

▲극 중 악덕기업주 클로드웰의 딸 호프 역을 맡은 아이비(앞)가 열연 중이다.(사진=신시컴퍼니)

“헐~ 대박.” 공연 중 옆 관객의 한 마디다. 남자주인공이 뜻밖의 생뚱맞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였다. 


뮤지컬 ‘유린타운’에는 이런 탄성을 내뱉게 되는 반전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공연 프레스콜이 열릴때 “스포일러를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곤 하는데, ‘유린타운’은 1막을 시작하자마자 해설자 역의 록스탁 순경이 극의 중심 이야기인 유린타운의 숨겨진 실체를 폭로해 버리며 스스로 스포일러를 해버린다.


이어 극 중간 중간에 “쟤가 남자주인공이라 여자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극이 흘러간다” “이건 비밀인데, 1막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배우가 나와 춤추고 노래한다” 등의 대사가 나오며 관객들은 앉은 자리에서 스포일러를 계속 당한다. 그 중 가장 귀에 꽂히는 스포일러는 “미리 말씀드리지만 결말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다.”


▲뮤지컬 '유린타운'은 물 부족에 시달리는 마을에서 공중 화장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업과 주민의 갈등을 다룬다.(사진=신시컴퍼니)


유린타운은 번역하면 '오줌 마을'이다. 극은 물 부족으로 '유린 굿 컴퍼니' 소유의 공공 유료 급수를 이용해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한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돈을 내지 않고 정해진 장소 외 다른 곳에서 용변을 보는 시민은 체포돼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비밀스런 공간 유린타운으로 보내진다.


어느 날 용변기 관리자인 페니와이즈의 조수 바비의 아버지가 용변을 참지 못하고 즉시 체포돼 유린타운으로 끌려간다.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바비 앞에 유린 굿 컴퍼니의 사장 클로드웰의 딸 호프가 나타나 “가슴이 이끄는 소리를 따라가라”고 격려를 전한다. 이에 용기를 얻은 바비는 오줌을 자유롭게 배출할 권리를 위해 민중봉기를 일으킨다.


일반적인 뮤지컬 방식을 따르자면 민중봉기가 성공하고, 모두가 자유를 만끽할 것 같지만 ‘유린타운’은 관객의 이 기대를 철저히 벗어나며 유린한다. 그런데 유린 방식이 참 유쾌하다.


일단 공연 시작 때 언급된 스포일러와 황당무계 장면들이 이어진다. 클로드웰과 협상을 하기 위해 찾아간 바비는 유린타운으로 끌려가고, 그곳이 실체가 없는 ‘죽음’이라는 걸 알자마자 죽음을 맞이한다. ‘설마 죽었겠어?’ 하는 순간에 머리 위에 천사 링을 달고 등장할 때 관객의 실소가 터진다. 극의 중심에 있던 남자 주인공을 죽여 버리다니!


엔딩 또한 그렇다. 화장실을 점령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독재를 펼치는 아버지의 실체를 바비의 죽음으로 깨달은 호프는 아버지를 유린타운으로 내몰아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기업주가 돼 주민들에게 자유롭게 소변을 볼 권리를 주지만, 무차별한 물 사용으로 마을 강물의 씨를 말려버린다. 그래서 처음엔 행복해하던 주민들이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싶다”며 신음한다. 그런 주민 앞에 생기발랄하게 웃으며 다가가 “우리의 가슴 속에 물이 있다”고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호프의 모습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뮤지컬 '유린타운'에는 패러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패러디한 장면의 사랑에 빠진 바비(왼쪽, 김승대 분)와 호프(아이비 분).(사진=신시컴퍼니)


인간의 기본적 생리 욕구에 빗대 담아낸 날카로운 사회풍자가 흥미롭다. 극 속 갑을 관계가 명쾌하지 않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처음엔 악덕 기업주 클로드웰이 ‘갑 중의 갑’으로 보이지만, 클로드웰과 대립하는 마을 주민들이 그의 딸 호프를 인질로 붙잡고 죽이자고 노래부르는 더 잔악한 모습을 보인다. 또 클로드웰의 독재가 사라진 뒤 자유 아닌 방종을 맞이한 주민들은 새로운 갈등과 파멸로 치닫는다. “현실과 동화는 다르다”는 말처럼 동화처럼 단순명료하지 않고 이해관계가 얽힐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이상과 현실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유린타운만의 방식으로 풍자한다.


이 뮤지컬은 또한 ‘레미제라블’ ‘로미오와 줄리엣’ 등 유명 작품을 패러디해 풍자를 더한다. 가령 소변을 자유롭게 볼 권리를 주장할 땐 지나치리만큼 비장하게 '레미제라블'의 민중봉기와도 비슷한 장면을 연출하고, 서로 대치되는 입장에 선 호프와 바비는 “당신의 이름은 왜 호프인가요” 식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유명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친숙한 장면의 재구성이 공연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배우들의 열연이 이런 장면을 빛나게 한다. 용변기 관리자 역의 최정원과 악덕 기업주 클로드웰 역의 성기윤이야 익히 명성 높은 배우들이고, 이번 공연에서는 특히 호프 역의 아이비가 돋보인다. 너무 순수해 주위를 힘들게 만들고 백치미에 주책바가지인 호프의 모습을 그는 제대로 보여준다. TV의 ‘복면가왕’에서 화제가 됐던 가창력을 성악발성까지 쓰며 마음껏 발휘한다. 랩, 가스펠, 재즈, 흑인영가, 컨츄리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혼합돼 있는 곡들을 깨끗한 목소리로 소화한다.


극 중간에 록스탁 순경과 함께 해설자 역할을 하는 소녀 리틀 샐리가 이런 말을 한다. “이 공연 잘 안 될 것 같은데요.” 관객의 기대를 철저히 벗어나는, 어떻게 보면 관객을 유린하는 방식과 타 공연보다 긴 해설 등이 익숙치 않은 관객에게는 황당무계하고 지루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유린타운스럽게’ 전망하고 싶다. “글쎄요~어쩌면 잘 될지도?” 공연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8월 2일까지.


▲뮤지컬 '유린타운'에는 배우가 방출하는 스포일러, 일반적인 해피엔딩에서 벗어난 특별한 엔딩 등이 독특하다.(사진=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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