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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동유럽]멋진 역사의 거리 망치는 한국꼴 사각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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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6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6.25 09:03:07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지난 호에 이어 루마니아에서의 5일차 여정을 소개한다.

루마니아 농촌 삶 담은 민속촌

키셀레프 거리를 걸어 남행하니 민속박물관(Museul Satului, Village Museum)이 나온다. 루마니아 각지에서 옮겨온 200채 가까운 민가와 교회, 마을 터가 지역-시대별로 보존돼 있다. 집안에 각종 주방기구와 농기구, 실내 장식까지 그대로 옮긴 민속촌이다. 한쪽으로 호수를 낀 도심 복판 멋진 공원은 시민과 학생들로 바빠지기 시작한다.

싱그러운 풀 냄새까지 어우러져 영락없는 루마니아 시골 어디쯤 와 있는 것 같다. 루마니아 정교회 교회당 앞에서는 검은 성복을 입은 사제가 나와서 반길 것 같다. 돌담 너머 파란 창틀을 가진 집, 마을 어귀 돌 십자가, 한가로이 노니는 고양이까지…. 영화 같은 풍경이다. 지역에 따라 건축 자재와 지붕 재료, 지붕 기울기까지 모두 다르다.

다시 키셀레프 거리를 걸으니 곧 개선문이다. 1922년 세계 1차 대전 참전 루마니아 용사들의 승리를 기려 목조로 지었다가 1936년 화강암으로 개축했다. 개선문 가운데는 대형 루마니아 국기가 펄럭인다. 개선문 좀 더 남쪽으로는 지질학 박물관과 루마니아 농부박물관이 키셀레프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루마니아 농부박물관은 루마니아인의 농촌 삶을 엿볼 수 있는 민속박물관으로서 도자기, 의상, 농기구, 카펫, 가구 등 방대한 자료가 모여 있다. 사진촬영 금지라 그 규모를 전달할 방법이 없어 애석하다.

▲루마니아인의 농촌 삶을 엿볼 수 있는 민속박물관에는 도자기, 의상, 농기구, 카펫, 가구 등 방대한 자료가 모여 있다. 사진 = 김현주

리틀 파리, 승리거리

드디어 승리광장, 승리거리가 나타난다. 그 한복판에 자리 잡은 LG 옥외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부터 남쪽으로 승리 거리를 따라 이어지는 지역은 립스카니 지역으로 부카레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거리다. 독일 라이프치히(Leipzig) 무역상들이 많이 왕래했다는 뜻에서 Lipscani(Leipzig)라고 불린 이 지역을 따라 혁명광장, 루마니아 은행 건물, 교회, 군인 클럽, 역사박물관 등 주요 시설과 건물들이 늘어섰다.

루마니아인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그리스, 세르비아, 아르메니아, 그리고 유대인까지 상점을 열었던 다국적, 다문화 거리의 흔적은 다양한 건축물로 남아 있다. 부카레스트는 20세기 초 ‘리틀 파리’로 불릴 만큼 격조 높은 도시였음을 이 거리에 와보면 알 수 있다.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의 민속촌. 루마니아 각지에서 옮겨온 200채 가까운 민가와 교회, 마을 터까지 지역-시대별로 보존됐다. 사진 = 김현주

혁명광장과 차우셰스쿠

혁명광장(Piata Revolutiei)은 1989년 12월 21일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당시 공산당 본부 건물에서 황망히 헬리콥터로 탈출하는 장면을 TV로 본 세계 시민에게 낯익은 곳이다. 루마니아 혁명은 사실 구 유고연방 TV를 볼 수 있었던 서쪽 티미쇼아라에서 먼저 시작돼 며칠 후 부카레스트로 번져왔다.

당시 이란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차우셰스쿠는 12월 21일 부카레스트에서 친위 시위로 맞불을 놓아 권력을 과시하려 했다. 그러나 혁명광장에 모인 친정부 군중까지도 반정부 시위대, 반공산당 시위대로 변했다. 시위 규모는 계속 커져 시위대는 12월 22일 루마니아 국영 TV를 장악하고 혁명의 승리를 선포했다. 차우셰스쿠와 추종자들은 공산당사 옥상에서 헬리콥터로 급히 탈출했으나 몇 시간 후 체포되고 성탄절에 총살당했다. 아직도 광장 어디선가 혁명의 함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부카레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거리로 불리는 립스카니 지역의 우아한 건축물들. 독일 라이프치히 무역상들이 많이 왕래했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혁명광장, 루마니아 은행 건물, 교회, 군인 클럽, 역사박물관 등 주요 시설과 건물들이 눈에 띈다. 사진 = 김현주

광장 일부인 루마니아 카지노울 음악당은 순전히 부카레스트 사람들의 성금으로 건축됐다. 높은 돔과 도리아식 기둥은 고대 그리스 신전의 모습을 닮았다. 광장 다른 한편으로는 크레줄레스쿠 교회가 있다. 작지만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붉은 벽돌의 루마니아 정교회에는 많은 방문자들이 들어와 경배를 올린다. 사람마다 사연이 많아 보인다.

이어서 화강암 깔린 거리를 남쪽으로 계속 걸으니 네오클래식 전면이 돋보이는 루마니아 저축은행 건물, 군인 클럽, 국립역사박물관 같은 건물들이 연이어 나온다. 현대식 호텔까지도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거리를 계속 걸어 의회궁까지 갔다. 거리는 멋지지만 아쉬운 것은 역사가 오랜 멋진 건물들과 사회주의 시절 건설한 네모진 콘크리트 건물(주로 아파트)이 마구 섞여 경관을 흉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무질서한 서울의 건축물도 외국인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 같다.

▲혁명광장 전경. 1989년 12월 21일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통치가 막을 내리는 루마니아 혁명이 일어난 곳이다. 루마니아 혁명은 서쪽 티미쇼아라에서 시작돼 며칠 후 부카레스트로 번져왔다. 사진 = 김현주

거대한 의회궁

의회궁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단일 행정 건물로는 미국 국방부(펜타곤, Pentagon) 다음으로 크다고 한다. 차우셰스쿠가 신도시 건설을 위해 주변 아파트와 함께 신축했고, 현재 의회 건물로 쓰인다.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겉으로만 봤지만 내부가 매우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콘스탄차행 오후 2시 출발 열차에 맞추느라 허겁지겁 북역으로 향한다. 시간에 쫓겨 국립역사박물관에 가지 못해 아쉽다. 날씨 때문에 이동이 더디고 지치기 쉬운 여름철 여행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멋진 건물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리스, 로마, 헝가리, 이탈리아 제노바 상인, 오토만 제국, 러시아의 지배를 거쳐 국민국가로 성장한 루마니아의 독특한 역사 기록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역사박물관에 가보면 그 나라 역사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한편 무엇을 자랑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다.

▲혁명광장에 있는 아테네울 음악당은 부카레스트 사람들의 성금으로 건축됐다. 높은 돔과 도리아식 기둥이 고대 그리스 신전의 모습을 닮아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의회궁에서 버스로 북역에 도착했다. 가까운 거리지만 교통체증으로 열차 출발 시각에 겨우 닿았다. 점심은 빅맥 세트(18Lei = 7200원) 테이크아웃을 들고 열차에 타야 할 만큼 서둘렀다. 열차는 정시에 출발했다. 도로 사정이 나쁜 루마니아에서 장거리 이동 수단은 열차가 최적이다. 열차는 부카레스트-콘스탄차 225km 구간을 3시간 남짓 달리니 느린 것은 아니다.

광활한 농지, 다뉴브 델타

루마니아 동부는 광활한 농지다. 여기가 바로 농업국가 루마니아의 다뉴브 델타다. 부카레스트 출발 두 시간 지나니 폭이 넓고 골짜기가 깊은 강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두나레이강이라 부르는데, 다뉴브강의 하류다. 다뉴브강은 독일 슈바르츠발트 산악 지역에서 발원해 오스트리아 비엔나,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등 굵직굵직한 도시들을 적시며 2580km를 흐른 후 흑해로 들어가는 국제 하천이다.

▲차우셰스쿠가 신도시 건설을 위해 신축한 의회궁은 규모가 크다. 단일 행정 건물로는 미국 국방부 다음으로 크다고 한다. 현재 의회 건물로 쓰인다. 사진 = 김현주

흑해 항구도시 콘스탄차

두나레이강을 만난 후 곧 콘스탄차다. 드디어 나는 유럽 대륙 동남쪽 끝 흑해 서안까지 오고야 말았다. 터키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300km 북쪽 지점이다. 콘스탄차는 인구 35만으로 옛 이름은 토미스였으나 BC 71년 로마제국의 영토가 된 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여동생 ‘콘스탄티아나’의 이름을 땄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벨기에 안트베르펜, 프랑스 마르세유에 이어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항구 도시다.

▲흑해 항구도시 콘스탄차. 네덜란드 로테르담, 벨기에 안트베르펜, 프랑스 마르세유에 이어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항구 도시다. 사진 = 김현주

역전에서 40번 버스를 타니 마마이아 지역에 닿는다. 테마공원 등 임해(臨海) 위락시설이 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여기서 버스를 바꿔 타고 센터로 나가니 도심 한복판에 고고학 공원이 있다. 3~4세기 로마 시대 돌기둥들과 도기들을 늘어놓았다. 멀리 콘스탄차 항구의 수많은 접안 시설이 보인다. 드높이 솟아 있는 수십, 수백 개의 사일로도 보인다. 루마니아 혹은 흑해 주변 곡창에서 산출되는 곡식을 수출하는 항구임을 말해 준다.

택시로 해변 카지노울(건물 명칭)에 갔다(20Lei = 8000원). 카지노는 다른 곳으로 옮기고 건물만 남았지만 80년 넘은 석조 건물이 바다를 배경으로 아주 멋진 모습을 보인다. 주변 해안 산책로를 따라 수많은 시민들이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긴다. 오늘따라 잔잔한 흑해 멀리 오가는 화물선들이 보인다.

▲콘스탄차 항구 해변에 자리한 카지노울(건물 명칭). 카지노는 다른 곳으로 옮기고 건물만 남았지만 80년 넘은 석조 건물이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모습을 보인다. 사진 = 김현주

이 변방에도 중국 영사관이

시내 중심 오비디우 광장으로 나가 마무디에 모스크 첨탑에 오르다. 140개의 계단을 오르니 펼쳐지는 풍경이 스펙터클하다. 가까이 시내와 항구, 멀리 흑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비디우 광장에는 웅장한 자연사 고고학박물관(Muzeul de Istorie Nationala i Arheologie)이 위용을 뽐낸다.

도심 쉼터에서 쉬고 있던 현지인이 다가와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이 도시를 비롯해 바로 남쪽 망갈로아에 기술자 등 한국인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귀띔한다. 콘스탄차에는 중국 영사관도 있다. 중국과 무역 교류가 많다는 뜻이다. G-2 시대, 중국의 존재감은 이제 세계 어디를 가도 미국에 버금가는 것 같다. 그 엄청난 나라 옆에 붙어 있는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중국 같은 나라를 이웃으로 두고 있는 것이 축복인지 불행인지 다시 한 번 되묻는 순간이다.

▲콘스탄차 오비디우 광장에는 웅장한 규모의 자연사 국립 고고학박물관이 위용을 뽐낸다. 사진 = 김현주

저녁 8시 15분 부카레스트행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콘스탄차역 플랫폼을 가득 메웠다.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휴양객들이 대부분이다. 열차 안에서 경찰들이 로마스, 즉 집시 일행을 단속해 험하게 다루며 어디론가 데려간다. 루마니아는 집시 비율이 10%로 유럽에서 가장 높다. 가끔 얼굴로는 구별이 잘 안 가는 집시도 있지만 경찰은 족집게처럼 잘 골라낸다. 기나긴 하루를 마치고 부카레스트 호텔 방에 돌아오니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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