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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법 이야기]소송에선, 억울한 사람 아니라 증거 가진 사람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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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8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5.09.17 08: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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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제품은 제품대로, 성품은 성품대로 주변 사람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훌륭한 사장님인데 뜻밖에도 수금에 어려움을 겪다 결국 사업을 접게 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대개 “빨리 소송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는 주변의 걱정에 “그래도 어떻게 그럽니까. 오랫동안 함께 해온 거래처인데…”라면서 말끝을 흐리곤 합니다. 사장님은 혼자 속앓이하다가 “그렇게 속 편하게만 있으려면 애초 사업을 시작하지 말았어야지”라는 모진 말도 듣게 됩니다. 사람 좋다는 소리만 듣는 그런 사장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중소기업 CEO를 대상으로 자문을 하다보면 가장 안타까운 경우 중 하나가 이런 경우입니다. 왜냐하면 대개 이미 일이 벌어진 뒤이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법률 전문가를 찾아오시는 경우 심정적으로는 잘 도와드리고 싶지만, 대부분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거나 증거를 찾기에 너무 늦은 시기다 보니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무리 탁월한 법률 전문가라 해도 지나간 시효를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믿음과 의리는 충분히 가치 있는 덕목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당사자가 이익 본위로 움직이며 이윤 추구가 기본적인 원리인 자본주의 시대에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은 현실적으로 “침묵하면 만만하게 본다”는 말로 변하기 일쑤입니다.

사업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그 사람은 돈 좀 늦게 줘도 아무 소리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평을 듣는 것보다 “아, 그 사람 만만하게 볼 사람 아니야! 그 사람한테 약정한 게 있으면 반드시 이행해야 해. 안 그럼 큰 코 다쳐. 하지만 대신 일 하나는 확실히 해”라는 평을 듣는 것이 유리합니다.

지기 위해 소송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실무를 하다보면 감정에 휩쓸리거나 법에 무지하다 보니 마치 지려고 작정한 것처럼 소송에 임하는 분들을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고객의 상대방이 그런 분이라면 한편으로 부담이 덜해질 수도 있겠지만, 마냥 기분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조금만 노력해 법률 정보나 지식을 알아보고, 조금만 냉정을 찾으면 충분히 승산 있는 소송에서 침착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부주의한 것은 결국 상대편만 이롭게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민사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답은 사실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 되는지, 소송에서 ‘승자 결정의 룰’은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숙지하고 그 룰을 따르면 됩니다.

▲증명책임 또는 입증책임은 민사소송의 원칙이다. 사진 = 서울중앙지법

민사소송에서는 어떤 사람이 승자로 판정받게 되는 것일까요? 그 핵심은 바로 증명책임(證明責任)에 있습니다. 증명책임 또는 입증책임이란 “기본적으로 어떤 사실을 주장하는 자에게 이를 입증할 책임이 있고 만약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그러한 사실이 증명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는 민사소송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주장한 모든 사실에 대해 증명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중에서 증명이 필요한 사실을 ‘요증사실(要證事實)’이라고 부릅니다. 결국 민사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증사실인지 인식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런데 이런 점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간과하고 요증사실이 아닌 것에 집착해 정작 요증사실에 대해서는 증명할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서 소송에 지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증명 필요한 ‘요증사실’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물론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자신이 주장하는 법률 효과가 발생하도록 하기 위해 증명이 필요한 사실, 즉 요증사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요증사실을 구별해 판단하는 데는 상당한 법률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알고 있는 법률 전문가와 상담해서 어떤 사실들을 입증해야 승소할 수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민사소송에서 이기는 첫 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증사실은 법률 규정을 분석해서 알 수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대여금 반환 청구의 경우>

대여원리금 반환 청구의 요건 사실은 ① 금전소비대차계약(대여일, 대여 금액, 이자, 변제기) 체결 사실 ② 금전 지급 사실 ③ 변제기 도과 사실입니다.

대여금 반환을 청구하는 사람은 위 세 가지를 모두 증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②번의 금전 지급 사실을 증명하려면 통장 거래 내역, 영수증, 입금 확인증 등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런 자료가 없다면 증인의 증언, 이메일 자료 등을 통해서도 증명이 가능하지만, 명확한 문서 자료가 있는 것에 비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증사실에 대한 증명은 증거를 통해 이뤄집니다. 증거는 어떤 형태라도 상관없습니다. 사람의 말을 녹음한 것이 될 수도 있고, 계약서와 같은 서면이나 사진도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기와 같이 스스로 작성한 서면도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담뱃갑에 써놓은 메모나 껌 종이에 적어놓은 것도 모두 가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소송 내용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것이라면 아무리 하찮고 사소해 보일지라도 ‘이게 설마 증거가 되겠어’ 하는 생각을 버리고 최대한 자료를 확보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소송은 억울한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증거가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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