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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법 이야기] 바람피운 쪽은 이혼청구 못해…“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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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0-451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5.10.05 10: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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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대법원은 9월 15일 이혼과 관련해 중요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바람피운 배우자는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다”입니다. 결혼생활이 깨지는 데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이혼 소송의 원고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피고가 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전원합의체 판결이었습니다. 대법원은 모든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사유가 있어야 전원합의체 판결을 합니다. 대부분의 대법원 사건들은 각 재판부에서 판결합니다.

이 사건의 경우 이혼에 관한 ‘유책주의’를 취하는 기존 판례의 변경이 문제 됐기 때문에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이른바 유책주의와 파탄주의가 주된 쟁점이었고,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공개변론까지 했습니다.

‘유책(有責)주의’는 결혼생활 파탄에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가 낸 이혼 청구는 법원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반면 ‘파탄(破綻)주의’는 결혼생활 자체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 난 경우라면 누구 잘못이 큰지를 따지지 않고 이혼을 허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법원은 1965년 “첩을 둔 남편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첫 판결 이후 계속해서 유책주의를 유지해왔습니다.

다만 유책주의를 취하면서도 “상대방 배우자가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표면적으로 이혼에 불응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혼인의 계속과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행위를 하는 등 이혼의 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 한해서만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해왔습니다.

이 유책주의는 과거 남녀관계가 상대적으로 불평등했던 시절에 남편이 부인을 일방적으로 축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이혼 판결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부가 다시 결합해 제대로 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결혼생활이 깨진 상태라면 법률로 두 사람을 묶어놓기보다는 다른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의 대립은 팽팽했습니다. 총 13명의 대법관 중 유책주의를 지지하는 대법관은 7명, 파탄주의를 지지하는 대법관은 6명으로, 간신히 유책주의를 취하는 대법원의 기존 입장이 유지되었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6월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 소송의 공개변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대법원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파탄주의에 따라 이혼을 허용할 경우 자녀나 상대방 배우자를 보호할 수 있는 아무런 법률 조항을 두고 있지 않은 상태라 당장 파탄주의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점이 유책주의를 유지하는 주요 논거로 제시됐습니다.

반면에 파탄주의를 지지하는 대법관 6명은 “실질적인 이혼상태에 있는 부부에게는 법률관계를 정리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일뿐만 아니라 유책 배우자에게는 재산 분할 등에서 충분히 불이익을 줄 수 있어 상대방 배우자도 보호할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다만 이전의 대법원 판결과 달라진 점은 유책 배우자가 이혼 청구할 수 있는 사유를 확대했다는 점입니다. 대법원은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그 이혼 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혼 소송서 여전히 유책주의 유지
단, 유책 배우자의 청구 사유는 확대

이에 따르면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충분히 이루어진 경우나 세월이 지나면서 유책 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돼 쌍방의 책임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에는 이혼 청구가 가능해졌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판례가 변경돼 파탄주의가 도입될 것으로 봤습니다. 파탄주의가 도입되더라도 소송 과정에서 필요한 사항을 정하고, 자녀와 상대방 배우자를 보호할 여러 가지 제도가 도입된다면 합리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아직 “파탄주의에 따라 이혼을 허용할 경우 자녀나 상대방 배우자를 보호할 수 있는 아무런 법률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마련된 이후라면 대법원 판결은 변경될 것으로 보입니다.

유책주의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도 ‘간통죄’에 대한 위헌 판결과 같이 언젠가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파탄주의로 가기 위한 제도적인 정비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파탄주의로 판례가 변경됐다면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발 빠르게 제도적 정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유책주의가 유지된 이상, 파탄주의로 가기 위해 제도적인 정비를 시작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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