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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법 이야기] 국회 선진화법과 필리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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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8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6.02.04 08: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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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올해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은 지난 임기를 마감하는 한편, 새로운 선거를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최근 국회와 관련해 언론에 가장 많이 언급된 것들 중 하나가 국회 선진화법일 것입니다.

여당에서는 ‘식물국회’란 표현을 써가면서 국회 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여당 소속 국회의장까지도 여당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자신이 국회 선진화법 중재안을 발의하기까지 합니다.

국회 선진화법(國會 先進化法)은 한자 그대로 국회를 앞서 나가게 하는 법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법제처에서 운영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가서 이 국회 선진화법을 검색하면 없는 법령이라고 나옵니다.

왜냐하면 국회법의 일부 규정을 개정하면서 이것을 ‘국회 선진화’란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언론에서 듣는 ‘사랑이법’ ‘최진실법’ 등의 용어는 실제 법률에 사용되는 용어가 아닙니다. 언론이나 이 법령을 발의한 국회의원이 좀 더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든 단어입니다.

왜 국회를 앞서 나가게 하는 법을 만든 후에 다시 개정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당이 지난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지만, 전체 국회의원 정원의 5분의 3인 180석 이상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회 선진화법의 입법 취지는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2012년 18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 입법, 19대 국회에서 처음 적용됐습니다.

이 법은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 상정과 밀접한 연관을 가집니다. ‘국회의장 직권 상정’이란, 국회법 제85조에 규정된 국회의장이 법안을 심사 기간을 정해 소관 위원회에 회부하고, 위원회가 이유 없이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은 경우 바로 본회의에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합니다.

이 직권 상정은 과거 여당과 야당의 법안 합의가 어려울 경우 다수당에 의해 종종 사용돼 왔는데, 다수당의 횡포라는 주장과 다수결 원칙에 적합하다는 의견이 팽팽했습니다.

국회 선진화법의 두 가지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등 국가 비상사태의 경우가 아니거나 교섭단체 대표와의 합의가 없을 경우 국회의장이 법률안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 수 없습니다. 둘째, 예산안의 경우 매년 11월 30일까지 위원회가 심사를 마치지 못한 경우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봅니다. 즉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은 원칙적으로 국회의장의 ‘직권 본회의 상정’이 금지되는 것입니다.

국회 선진화법과 연관된 단어로 ‘필리버스터(filibuster)’에 대한 설명도 필요합니다. 필리버스터는 국회에서 주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거나 의사 진행을 저지하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의사 진행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국회 선진화법 개정안 문제로 국회가 시끄러운 가운데 26일 국회의사당을 찾은 학생들이 국회 발전상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구체적으로는 장시간 연설, 규칙 발언 연발, 의사 진행 발언 남발, 형식적 절차의 철저한 이행, 각종 동의안과 수정안의 연속적인 제의, 출석 거부, 총퇴장 등을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료 의원의 구속을 막기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5시간 19분 동안 국회에서 연설한 것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필리버스터는 물론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기 때문에, 발언 시간이나 토론을 제한하는 형태로 입법한 국가도 많습니다.

직권 상정 제한+필리버스터 = 국회 선진화법

이 필리버스터가 국회 선진화법과 함께 도입됐습니다.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 찬성이 있으면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고,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중단 결의가 없는 한 회기 종료 때까지 토론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 필리버스터 조항과 국회의장 직권 상정 제한 조항을 합쳐 국회 선진화법이라고 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필리버스터와 국회 선진화법 조항으로 국회 내 다수당이라 하더라도 의석수가 180석에 미치지 못하면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의 강행 처리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번 총선 때 여당에서 180석을 획득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온 것도, 이 법과 매우 관련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여당은 국회 선진화법의 직권 상정 금지 조항이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의결권을 침해한다면서 국회의장 등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권한쟁의 심판은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 벌어진 권한 다툼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심판하는 제도입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도 예외적으로 공개변론까지 열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어떤 법이든 제도적 취지가 좋지 않은 법은 없습니다. 다만 운영을 하다보면 좋은 법인지 잘못 만들어진 법인지가 판명이 됩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국회 선진화법이 말 그대로 ‘선진(先進)’ 정치의 밑거름이 될 계기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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