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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아트스펙트럼 ⑧ 제인 진 카이젠] 역사적 기억의 소리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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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5호 윤하나⁄ 2016.08.05 16:28:41

▲제이 진 카이젠, ‘거듭되는 항거’의 리움 설치 전경.(사진 = 리움)

  

개인의 트라우마는 집단적 트라우마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제주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은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잊히거나 침묵당하는 소리에 귀기울여왔다. 개인적인 경험에 한정짓지 않고 자신의 개인사와 관련된 역사를 연구하며 경계를 확장하는 카이젠의 작업을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개인적이고도 집단적인 좌절을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우선 리움 아트스펙트럼에 출품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가 지속해 온 작업을 짚어보자. 현재 덴마크에 살고 있는 작가 카이젠과의 서면 인터뷰도 이어진다.

   

▲제인 진 카이젠, ‘거듭되는 항거’. 8채널 영상 설치, 77분 26초, 컬러/흑백, 영상 스틸. 2011~2016. (사진 = 윤하나 기자)

 

거듭된 항거

제주 4.3항쟁을 둘러싼 일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해 발언해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영상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제주의 자연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무속인의 읊조림에서, 4.3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동분서주하는 활동가들의 발걸음에서 억눌린 기억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이를 담담한 시선으로 영상에 옮겼다. ‘거듭된 항거는 작가가 입양이란 트라우마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이 떠난 고향 제주를 새로운 고향으로 맞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8편의 영상 중 2016년 마지막으로 제작된 물결들은 거듭되는 항거의 제작 과정에서 작가가 제주에서 보고 느낀 과정의 소회를 자신의 목소리로 읊조린다.

 

구경/망령/균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5, 덴마크인 기자 케이트 플레론이 국제 파견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해 당시의 북한 민간인을 취재했다. 20155, 한국 분단 70주년이 되던 해 카이젠도 국제 파견단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는데, 덴마크로 돌아온 후 케이트 플레론의 책을 발견했다

이 작품은 플레론의 책 속의 사진과 자신이 방북 중 촬영한 사진을 붉은 색 라이트박스 위에 병치한 사진 설치 작업이다라이트박스의 붉은 빛은 병치된 사진은 물론이고, 전시 공간과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까지 빨갛게 비춘다. 카이젠과 플레론이 촬영한 북한의 이미지를 들여다보기 이전부터 이미 설치된 붉은 조명에 의해 어느새 모든 이미지는 '적화(赤化)'된 상태다. 필터로 작용하는 강렬한 붉은 색의 의미는 다음 빨강의 색조를 본다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빨강의 색조를 본다는 것

붉은 빛을 발하는 라이트박스 옆에 카이젠의 시가 인쇄된 붉은 종이 포스터 빨강의 색조를 본다는 것이 쌓여있다. 카이젠은 이 두 작품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는 북한의 이미지는 붉은 필터를 통해 본 모습임을 암시한다. 여기서 본다는 행위는 보는 이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는 일종의 번역이다. 작가는 재현된 이미지와 보는 이 사이에 언제나 위치하는 일종의 필터에 관심을 갖고 이 작업을 시작했다. 전시장을 찾는다면 카이젠의 붉은 색조가 인상적인 포스터 속 시를 읽어보길 권한다.

   

▲제이 진 카이젠, ‘구경(口徑)/망령/균열’의 설치 디테일. (사진 = 리움)



"탈식민성, 환영 그리고 보는 것의 기술" 

제인 진 카이젠과의 서면 인터뷰 


- 당신은 당신과 같은 입양아를 젊은 이산자라 언급한 바 있다. 그러면서 개인의 문제보다 이주와 젠더의 문화-역사적 사건들로 작업을 확장해나갔다. 어떤 계기로 자기 경험을 집단적 기억과 연결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입양아들은 아주 어릴 때 해외로 보내지기 때문에 젊은 이산자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은 대개 입양 전의 기억이 없는 상태로 백인중심 사회에서 자라면서 고립을 경험한다. 나는 200121살 때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내 경험이 고립된 개인사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과거 없는 입양아란 개념과 서양의 구제 내러티브가 덧씌워진, 특정한 문화-역사-이데올로기적 상황이 촉진시킨 초국가적 입양이란 거대 현상의 한 부분이었다.

 

남한과 서양의 대중매체는 입양아의 가족 재회 혹은 개인적인 결핍에 집중하기 위해 입양아의 귀환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국발 초국적 입양이 사업화된 이유와 그것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유에 집중하기보다 개인적 경험의 영역으로 입양아들을 고립시킨다.

 

2000년대 초반 한국과 그 외 지역의 초국적 입양아들과 연락하면서, 초국적 입양을 집합적 과정으로 탐색하게 됐다. 절친한 친구와 개인적 경험들과 기억들은 언제나 집합적 과정과 트라우마와 뒤얽혀 있었다. 작업 내에서 이 연결점들을 발견하면서, 초국적 입양, 식민주의와 전쟁, 군국주의와 연관된 역사적 주변화를 탐색하는 것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됐다. "


▲제인 진 카이젠, ‘거듭되는 항거’. 8채널 영상 설치, 77분 26초, 컬러/흑백, 영상 스틸. 2011/2016. (사진 = 윤하나 기자)

 

- 당신의 작업에서 번역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업을 위한 기술이 되기도 하고, 개인들의 트라우마와 역사적 문맥을 읽어나가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당신에게 번역은 어떤 의미인가?

 

번역은 어원적으로 건너편으로 옮기다란 뜻을 가졌다. 통상적으로는 번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중성적인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후기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내게 번역은 묘사와 권력 그리고 문자적 이해 너머의 역사성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기 위한 현장이다. 번역은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무엇이고, 어떤 문맥에서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비대칭성을 드러내는 협상의 장을 암시한다. 내게 작업은 심미적이거나 산만한 표현이 아닌 번역을 위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 ‘물결들빨강의 색조를 본다는 것 작업의 시가 무척 인상적이다. 특히 '빨강의 색조를 본다는 것'의 경우 시가 인쇄된 포스터의 빨간색 뉘앙스로 인해 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물결들'에서도 마찬가지로 파도가 밀려오고 나가는 과정이 시와 함께 공명하는 듯했다. 당신이 해온 텍스트와 이미지의 번역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포스터 작업 빨강의 색조를 본다는 것에서는 DMZ와 연관된 빨강의 상징성과 이미지의 속성을 시적으로 반영했다. 이미지와 내러티브 혹은 텍스트가 교차하는 번역적인 공간에 관심이 많다. 이 교차점은 텍스트/담론의 결합 속 이미지/재현의 총합을 말하기보다 또 다른, 더 많은 무언가가 될 부가적인 시적 공간이 된다. ‘물결들2001년부터 작업하기 시작한 제주 4.3사건의 기억들을 다룬 거듭되는 항거을 완성하는 마지막 영상이다. ‘물결들을 제외한 나머지 설치 영상들이 다른 이의 이야기와 기억에 집중했다면, 물결들은 내가 여러 번 방문한 제주라는 공간과 사건의 개인적인 연결점을 반영한다. 시적인 내레이션과 이미지의 교차점에서 생성된 간극을 통해 물결들은 다른 영상들과 다르게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상태를 일깨우며, 시간과 기억의 감각을 복합적으로 오버랩 시킨다.”

   

▲제이 진 카이젠, ‘구경(口徑)/망령/균열’ 설치 모습. (사진 = 리움)

 

-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

아트 스펙트럼을 위해 거듭되는 항거’를 완성하면서 구경(口徑)/망령/균열빨강의 색조를 본다는 것도 함께 작업했다. 이 작업들로 인해 이전까지 내가 주로 하던 비디오 설치와 영화에 이어 빛과 스틸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에도 접근하게 됐다. 나는 한국뿐 아니라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유럽의 난민 사태와 그곳의 이주에 관한 정치적 긴장을 지켜보면서, 디아스포라적 시선에서 경계와 분리 그리고 분단의 측면을 탐색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한 목소리와 번역의 미학-정치학과 연관된 집단적 읽기와 퍼포먼스와 관련한 실험을 시작했다. 이는 개인적이면서 집단적인 교차점에 관한 내 흥미에서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직접 참여해 역사, 기억 그리고 체화된 경험에 관해 다양한 관계성을 토론할 수 있는 효과적인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실험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는 탈식민성, 환영 그리고 보는 것의 기술에 대한 질문에 관해 지속적으로 작업할 것이다.”

 

▲제인 진 카이젠, ‘거듭되는 항거’. 8채널 영상 설치, 77:26, 컬러/흑백, 영상 스틸. 2011/2016. (사진 = 리움)


알림: CNB저널은 지난 달 간 리움 아트스펙트럼 2016’ 시리즈의 8편 기사를 통해 참여 작가 10()을 만났습니다. 이번 호의 제인 진 카이젠 작가를 마지막으로 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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