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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작가 - 이환권] “이미지 왜곡이라고? 왜곡된 현실은 괜찮고?”

예화랑서 일상 속 숨은 긴장을 작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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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1호 김금영⁄ 2017.06.23 09:23:21

▲이환권 작가가 자신의 작업 '버스정류장'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처음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본 줄 알고 눈을 비빈다. 기자 또한 그랬다. 파일 이미지로 작품을 먼저 접했을 때 컴퓨터에 오류가 난 줄 알고 다시 이미지를 클릭했다. 그런데 결코 손상된 이미지가 아니었다.


직접 마주한 작품은 더욱 놀라웠다. 작품 속 인물들은 매우 특이한 행동, 또는 복장을 하고 있지는 않다. 달리거나, 운전을 하거나, 버스를 기다리거나, 그냥 서 있는 등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영위 중이다. 그런데 형태가 남다르다. 마치 양쪽에서 눌린 듯 납작한 형태부터, 한쪽이 높게 치솟거나, 넓게 펴진 면적 등이 눈길을 끈다. 영화 ‘판타스틱4’에 자유자재로 몸을 늘리는 초능력을 지닌 인물이 나오는데, 이 인물이 현실에 등장한 것 같다.


이 작품들은 모두 이환권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작가는 이미지 왜곡을 통해 현실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알려졌다. 예화랑에서의 개인전 ‘예기치 않은 만남’을 통해 그간의 작업을 총망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환권, '교통체증(Traffic Jam)'. F.R.P, 아크릴릭 핸드 피그먼트, 2150(w) x 540(d) x 1010(h)cm. 2014.

전시장 입구부터 1층까지는 작가의 초기 작업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일단 입구에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 등장하는 여동생과 오빠를 형상화한 작업이 보인다. 신발을 잃어버려 서로 신발을 바꿔신으며 등교해야 하므로 빠르게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겼다. 작가는 이 영화뿐 아니라 ‘록키’ 등 다양한 영화의 인물 이미지를 왜곡하는 작업을 초창기에 활발히 펼쳐 주목받았다. 왜 영화의 이미지를 따왔을까? 작가 작업의 시작이 거기에 있다.


“영화 시리즈는 제가 왜곡된 이미지를 작업하게 된 계기이기도 해요. 지금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해 와이드 스크린 영화가 많이 제작되지만, 예전엔 TV속 인물이 가끔 상하로 길게 늘어진 모습으로 보일 때도 있었고, 화면의 위아래가 잘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저는 그렇게 잘리는 이미지에 관심이 가기도 했고, 화면 속에 들어가보고 싶다는 상상도 했어요. 화면 자체는 2D였지만, 제 머리는 그 화면을 3차원으로 인식한 거죠. 거기서 이미지 왜곡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화면에 들어가보고 싶은 욕구, 차원을 넘나들고 싶은 욕구를 작업으로 풀게 됐어요.”


▲이환권, '에티켓 클래스(Etiquette Class)'. F.R.P, 아크릴릭 핸드 피그먼트, 493(w) x 516(d) x 342(h)cm. 2017.

처음엔 영화 속 캐릭터가 주요 작업이었지만, 이후엔 보다 가까운 일상으로 대상을 옮겼다. 영화 시리즈에서 동떨어진 가상의 캐릭터를 만나는 것도 즐거웠지만, 진짜 현실로 다가오는 삶의 이야기도 다루고 싶었서였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주변 인물들을 섭외해 작업에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이를 편집해 왜곡된 이미지로 만든 뒤 조각 작업에 들어갔다. 1층에 전시된 ‘버스정류장’은 2005년 작가가 마주한 사람들의 풍경을 작업한 것이다.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겼다. 어떤 사람은 잡지를 보고, 어떤 사람은 통화 중이며, 서 있기 힘들어 앉아 있는 사람도 있다. 다 작가의 과거 지인들이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 사람들이 작가의 작업에 모두 모였다.


‘공감’ 키워드로 풀어낸 이야기들
백조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수면 아래는 치열하다


▲이환권, '랜턴 맨(Lantern man)'. F.R.P, LED, 210(w) x 210(d) x 1360(h)cm. 2012.

“작업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공감이에요. 혼자서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소통하고 여기서 공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때 나온 작업이 ‘버스정류장’이에요.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요. 퇴근길 버스, 약속 시간에 늦은 친구, 좋은 직장, 새로 살 집 등 수많은 것들을 기다리죠. 그리고 이건 더 나은 삶을 기다리고 꿈꾸는 것과도 맞닿아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 기다림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버스정류장’에 표현했어요.”


2~3층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2층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교통체증’ 그리고 ‘물웅덩이’다. 교통체증은 작가의 친구가 모델이다. 이 작품이 주는 공감은 바로 치열한 삶이다. 미술을 전공한 친구는 본래 작품의 꿈을 꿨지만,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어 직장인이 됐다. 퇴근길이면 늘 주차장처럼 빽빽한 도로의 교통체증에 시달렸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현 시대의 대표적인 키워드다. 그리고 왜곡된 이미지는 이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쪽 팔은 창문에 걸친 모습은 그냥 봐서는 여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겉만 봐서는 그 사람의 속사정을 알 수 없다. 물 위의 백조가 그냥 보면 평화로워 보이지만, 수면 아래로는 열심히 발을 휘젓듯이 사람들은 나름의 치열한 삶을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이 지점을 본래의 이미지가 아닌, 왜곡된 이미지로 표현하며 잡아냈다.


▲이환권, '물웅덩이(A Puddle)'. 시멘트 스틸, 1020(w) x 564(d) x 424(h)cm. 2014.

‘물웅덩이’는 작가가 가장 힘들게 작업했고, 또 아끼는 작업이기도 하다. 작업을 이어오던 작가에게도 슬럼프가 왔다. 아무 것도 하기 싫었던 그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다가 나온 작품이다. 비가 막 쏟아질 때는 볼 수 없지만, 비가 그치고 나면 고인 물웅덩이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그런데 물에 비춰진 모습은 더 키가 작게 보이거나 옆으로 더 퍼져 보이는  등 본연의 모습을 온전히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모습 또한 자신에서 비롯됐음은 분명하다. 물에 비친 이 모습을 작업에 담았다.


“물 아래 비친 모습이 꼭 그 사람의 방황, 즉 혼란스러운 마음을 보여주는 투영물로 느껴졌어요. 어디로 가야할지 작업 방향을 찾지 못해 방황한 제 마음 속에 깊이 들어왔죠. 이때 콘크리트 작업도 처음 했어요. 새로 도전해본 재료였는데, 슬럼프를 겪었던 제게 새로운 활력을 줬습니다. 해외 전시에서는 이 작품을 선보였었는데, 국내에서 정식 전시로는 이번이 첫 공개예요. 제가 이 작업을 통해 제 마음을 돌아봤듯이, 사람들 또한 위로를 받기를 바라요.”


이 마음의 연장선상에서 또한 작가는 조각가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작가는 공공 프로젝트 작업에 꾸준히 참여해 왔다. ‘통일’이 그 대표작이다. 국제이주기구(IOM)와의 협업으로 이뤄진 작업은, 탈북 남성과 대한민국의 여성이 만나 결혼한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 당사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이들이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통일’에 담겼다.


▲이환권, '통일(Unification)'. F.R.P, 연필, 핸드 페인트, 272(h) x 271(d) x 496(h)cm. 2017.

시청에 전시됐던 ‘삼남매’도 IOM을 통해 작업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던 한 남성이 아프리카 가나의 한 여성과 결혼해 세 아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한국에 남은 아이들은 한 목사의 도움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삼남매’는 이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작가들은 이 아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주민 이야기는 현 사회에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예요. 과거엔 이주민을 배척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의 이웃이죠. 그리고 이주민이 많아지면서 이웃의 형태도 변해갔어요. 검은 피부 또는 푸른 눈의 이웃이 존재하죠. 탈북자 또한 우리의 이주민이고요. 이 이야기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현장에 거부감을 갖지 않고 보다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중요해요. 그래서 작가가 공공 작업에 참여할 때는 무엇보다 이해가 필요하죠. 그리고 작가가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이 중요하고요.”


결국 처음에 독특한 형태로 환상 속 이미지일줄 알았던 작가의 이미지는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을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담아내고 있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더 다양한 형태로 풀어내고 싶은 계획이다. “게릴라처럼 갑자기 어떤 장소에 나타나는 방식 등으로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 보고도 싶다”고 말했다. 작가의 작업을 보다 더 많은 곳에서 반갑게 마주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전시는 예화랑에서 7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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