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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타인은 지옥이다’와 ‘SKY캐슬’에 열광하는 현대인

배려가 오지랖으로 불편하게 느껴지는 현 시대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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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9.01.03 16:47:25

JTBC ‘SKY캐슬’의 한 장면. 극 중 이수임(왼쪽, 이태란 분)과 한서진(염정아 분)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끊임없이 대립한다.(사진=JTBC)

JTBC 드라마 ‘SKY캐슬’과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는 요즘 대표적으로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다. ‘SKY캐슬’ 12회 방송은 JTBC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타인은 지옥이다’는 네이버 목요 웹툰에서 굳건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내년엔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내용은 아주 다르다. ‘SKY캐슬’은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안에서 자식을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불사하는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욕망을 다룬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고시원에 입주한 한 청년이 함께 고시원에 살고 있는 수상한 사람들로 인해 점점 불안에 떨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처럼 내용은 다르지만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람들의 반응.

‘SKY캐슬’에서는 배우 이태란의 극 중 캐릭터인 이수임에 대해 “불편하다”는 댓글이 흔히 보인다. 이수임은 SKY캐슬의 여타 사모님들과는 달리 과도한 사교육 문화에 맞서며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반면 신분세탁까지 하는 등 거짓말을 일삼은 한서진(염정아 분)에 대해서는 연민의 시선이 쏟아진다.

‘타인은 지옥이다’에서는 고시원 사람들로 인해 점점 미쳐가는 주인공을 염려하는 회사 상사의 잔소리가 쏟아지는 에피소드에 “괜한 오지랖”이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반면 주인공이 고시원 사람들에 대항하며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에피소드엔 “고구마였다가 이젠 완전 사이다”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주인공은 처음엔 다른 사람들을 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나중엔 타인을 멀리 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까지 느끼는 등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다. 하지만 이 변화엔 “저래선 안 된다”보다 “나라도 저럴 것”이라는 공감의 댓글이 압도적으로 쏟아졌다. 이 웹툰에서 대표적인 인기 캐릭터는 이른바 ‘왕눈이’라고 불리는 무차별적 살인을 저지르는, 즉 가장 비정상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즉 사람들은 타인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우려 하는 인물들이 불편하고,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인물에게 응징이 벌어지는 이야기에 통쾌함을 느끼고 있다.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에서 어쭙잖은 배려와 이득 없는 관계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SKY캐슬’에서만 봐도 학교에서 한서진의 딸 강예서(김혜윤 분)는 친구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 다 밟고 넘어서야 할 경쟁자이기 때문. 따라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못한다고 느껴지는 자에게는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이수임에게 그랬듯이.


이 가운데 이수임은 매우 이상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혼자 극 중에서 매우 튀기도 한다. 강예서의 동생 강예빈(이지원 분)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걸 발견했을 때 이를 “스트레스를 풀려는 행동”이라며 덮으려는 한서진과 달리 따끔하게 혼내고 왜 그랬는지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지나친 입시 경쟁에 희생돼 가는 아이들을 위한, SKY캐슬의 비극을 폭로하는 소설을 쓰려고도 한다.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의 한 장면. 주인공(오른쪽)은 처음엔 타인을 배려하고 염려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점차 배타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사진=네이버 웹툰)

하지만 이 모습에 사람들은 “오지랖”이라며 불편함을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수임의 행동은 현실에서는 행하기 힘든,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현실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는 철부지 행동처럼 느껴지기 때문. 실제로 행했다가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매장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고 낯설게 느껴진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댓글이 쏟아지는 이유다. 오히려 사람들은 하루하루 치열한 경쟁 속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를 벌이는 한서진에 공감한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이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웹툰 제목에 여실히 드러난다고 느껴진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서 타인을 지옥이라 느끼는 사람들은 점점 타인에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타인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이 격해지고 있다. 엮여서 괜히 좋을 것 없다는 것.

“쳐다보는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다” “가방이 내 몸에 부딪혔다” 등의 이유로 폭행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무고한 이들을 상대로 ‘묻지마 범죄’가 벌어지는 게 현실이고, 영화 ‘목격자’는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도 이를 외면하며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의 실화를 다뤘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것 중 가장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게 실감되는 세상이다. ‘타인은 지옥이다’의 인기는 점점 타인을 멀리하고픈, 그리고 타인에 대한 현대인의 날선 공격 본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통쾌함을 준다는 점에도 있다고 느껴져 오싹하면서도 또 납득이 가 서글프다.

이 가운데 마음에 닿은 글들이 있었다. “이수임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 사회가 슬프다”는 것, 그리고 한 전시에서 본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 우리는 개인주의를 외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다르다. 타인을 무시하고 짓밟으며 자신이 일어서려는 것은 개인주의가 아닌 이기주의다. 이 이기주의가 타인의 배려를 묵살하고, 자신밖에 보지 못하게 만들며 혐오를 낳는다.

과도한 오지랖은 오히려 관계를 망칠 수도,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본인 또한 그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건 아니다. ‘SKY캐슬’에서 이수임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배려, 그리고 존중의 힘을 믿어보려고 조금이나마 노력해보고 싶은 새해다. 불편한 용기가 없으면 세상은 계속 그대로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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