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 한남은 일본 작가 요리코 타카바타케의 첫 국내 개인전을 4월 3~28일 연다. 이번 ‘비너스(Venus)’전에서 선보이는 신작은 물, 불, 바람 등의 통제 불가능한 요소와 회화 매체 간의 결합을 특징으로 구성됐다. 수면에 물감을 흘려 패널에 옮기거나 회화 표면에 불을 가해 물감을 녹여내는 등 실험적인 제작 방식이 만들어낸 강렬하고 역동적인 화면의 회화를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타카바타케는 이우환 작가가 교수로 재임했던 타마 예술대학교에서 회화 학사학위를 마치고 데미안 허스트가 ‘센세이션(Sensation)’을 기획했던 영국왕립 미술원에서 공부했다. 그 후 도쿄예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회화의 폭을 넓혀 나갔다. 2013년 마루노우치상을 수상했고 도쿄 오페라시티 아트갤러리, 슈고 아트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캔버스를 사람의 몸처럼 생각하고 그 위에 물감 즉 옷을 입혀가는 방식에서 그의 작업은 시작된다. 유화 도구를 실처럼 가늘고 짜내는 방법을 고안해 캔버스라는 몸에 옷을 걸치도록 실을 뽑아내 작품을 구축한다. 물감의 실은 가로, 세로 또는 대각선으로 정렬되며 실제로 뜨개질을 한 듯 보인다.
물감을 실처럼 짜내서 자신의 수작업으로 생성된 작품에 그때의 빛, 바람, 공기 등의 요소가 함께 채워진다. 입체적으로 겹치는 레이아웃과 컬러감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 도쿄 오페라 시티 아트갤러리 디렉터 호리 모토아키는 “마치 직물을 연상시키는 듯한 이런 구성은 여성적인 섬세함을 느끼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지극히 절제된 작업 방식에 쏟은 작가의 시간과 인내, 그리고 오로지 수많은 물감 가닥들을 끊임없이 짜는 일에 몰두한 그녀의 집중력을 더욱 상기시킨다”고 타카바타케의 작품을 설명했다.
이번 ‘비너스’ 신작에서는 더 나아가 물과 불을 사용해 끊임없이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작가의 시도가 읽힌다. 방수 처리를 한 작은 수조를 제작해 물을 담고 그 수면에 다양한 물감 가닥들을 흘려낸다. 수면 위의 물감은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서서히 가라앉아 패널 혹은 종이에 자리 잡는다. 물의 흐름, 수압 그리고 중력과 같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순간적으로 부양하는 듯한 분위기가 작품에 감돈다. 수면 위에 그려진 회화라고도 할 수 있다.
불은 작은 수조를 가열해서 물감을 더 자유로운 형태로 변형시키는 역할을 하고, 패널에 직접 불을 가열해 마그마가 녹아내리는 형상을 표현하기도 한다. 물과 불의 요소를 활용함으로써 물감이 떠다니는 듯한 느낌의 질감을 표현한다.
초기엔 그의 수작업으로 형성된 작품들이 물감을 통제하는 느낌이 강했다면(수공예 방식),이번 신작은 물감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형태를 표현한다. 즉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사이에 존재한다. 통제 불가능한 운의 요소를 의도적으로 작업과정에 포함시킴으로써 새로운 작품 세계를 창조하는 것.
또한 타카바타케는 한국 단색화의 제작 방식과 작품의 표현 자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단색화는 최소한의 요소로 작품의 표현을 극대화시키려는 작업 방식으로 이뤄져 있고,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촉각성이다. 그의 작업 역시 회화도구의 물성을 패브릭처럼 레이아웃 처리해 작품을 이루고, 물감이 겹겹이 쌓여서 이뤄진 촉각 중심적인 세계를 그려 나간다.
가나아트 측은 “요리코 타카바타케는 지속적으로 차별화된 표현법을 연구하는데 전념하고 도전하기를 반복한다”며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한 물방울의 점과 작은 세포들이 연결된 그물 모양과 같이 타카바타케 역시 그만의 독창적인 색깔을 찾아가는 중이다.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전할지 기대되는 작가”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