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0호 옥송이⁄ 2020.12.09 15:48:16
탄소 중립이 세계 경제의 메가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탄소 중립은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의미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핵심으로도 떠오를 전망이다. 이미 여러 국가가 동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대표 공약 중 하나로 꼽힌다.
탄소 중립 시계가 점차 빨라지는 가운데 EU는 오는 2023년 ‘탄소 국경세’ 도입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는 기후문제가 새로운 무역 장벽이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탄소 최소화, 친환경 경영은 국내기업에도 중요 과제로 떠올랐다. 2편은 한국 기업 가운데 최초로 RE100에 가입한 SK그룹을 다룬다.
[관련 기사]
[탄소 없애는 기업 ①] 태양광 에너지가 빚는 오비맥주 맛은 어떨까
SK그룹, RE100 가입 확정
SK그룹이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에 가입했다.
글로벌 RE100을 주관하는 다국적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은 지난 4일 SK그룹 6개사가 한국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RE100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SK그룹이 RE100 신청을 밝힌 지 한 달 만이다.
RE100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신재생 에너지로 대체하자는 취지의 글로벌 캠페인으로, 최소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전력 전환을 완료해야 한다.
이번에 가입 절차를 마친 6개사는 SK홀딩스, SK하이닉스,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SKC,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포함)이다. 이들의 산업 분야는 제조·화학·바이오·통신으로, 더 클라이밋 그룹에 따르면 해당 기업들의 연간 전력 수요는 31테라와트(TW)에 달한다. 이는 한국 전력 사용량의 5% 수준이다.
SK홀딩스는 2030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할 계획이다. 나머지 관계사는 2050년을 목표로 한다. SK그룹 관계자는 “기업들에 있어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SK 역시 준비해왔다”며 “2030년을 최종 목표로 하는 SK홀딩스를 비롯해 SK 관계사들은 최대한 빨리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클라이밋 그룹의 샘 키민스 RE100 대표는 “SK그룹의 6개 기업이 RE100에 참여해 기쁘다”며 “한국 시장에 기대하고 있다. 더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SK SUPEX추구협의회 이형희 SV위원장은 “이상기후 등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 발생량을 줄이자는 친환경 흐름에 한국 기업 또한 본격 참여하게 돼 의미가 깊다”며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 확대와 에너지 솔루션 등 신성장 산업 육성에도 작은 토대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SK회장,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조
RE100 가입을 마친 SK그룹은 1년 안에 이행계획을 제출해야 하며, 더 클라이밋 그룹은 매년 이행상황을 점검하게 된다.
SK그룹은 “RE100 가입으로 ‘글로벌 최고 수준의 ESG 실천 기업’이라는 신뢰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미국·유럽 등 글로벌기업들의 공급망 관리 강화에 대응하는 측면에서도 한발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SK의 이번 RE100 가입은 최태원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최 회장은 그룹의 사업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요소 중 하나로 ESG를 강조해왔다. 지난 10월 CEO 세미나에서도 관계사마다 사업에 맞는 친환경 실행 가속화를 주문했다.
SK그룹은 친환경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SK E&S는 지난 9월 새만금 간척지에 여의도 크기(264만㎡·80만 평)의 태양광발전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자로 선정됐다. 발전 규모는 200메가와트(MW)로, SK E&S는 2030년까지 국내외 재생에너지 발전 규모를 10기가와트(GW)까지 늘릴 계획이다.
SK텔레콤은 BEMS(빌딩에너지 관리시스템ᆞ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 및 AI, Cloud 등 New ICT 기술을 활용해 소모 전력을 절감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가 가능한 전국의 사옥 및 교환국사 옥상을 활용해 재생에너지 발전도 추진할 예정이다. SK건설은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경기 화성과 파주에 준공해 가동 중이다.
IEA·더 클라이밋 그룹 “韓, 에너지 시장 개방 및 PPA 도입해야”
SK가 출발선을 끊으면서, 기업들의 RE100 참여가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에너지 정책 및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 전력사업은 생산, 수송(송·배전), 판매 등 전 부문을 사실상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다. 게다가 PPA(전력구매계약)가 허용되지 않아 기업들의 RE100 이행 걸림돌로 지적됐다. PPA는 기업이 발전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로, RE100에 참여하는 해외 기업들은 PPA를 통해 제품 생산 시 재생에너지를 차질없이 공급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1월 “한국의 전력 부문은 단일 구매자로 구성된 의무적 풀로 운영되고, 도소매 가격은 시장이 아닌 정부가 설정한다”며 “전력 부문을 개방해 전체 가치사슬에서 진정한 경쟁과 독립적 규제기관을 도입하지 못한 점은 한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RE100 주관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도 한국의 PPA 도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내 PPA법(전기사업법 개정안)은 지지부진하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PPA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지난달 26일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 야당 반발로 통과되지 못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EU가 탄소국경세를 검토하는 등 국제사회의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며 “한국은 해외무역 의존도가 높다 보니, 기업들의 저탄소·친환경 경영이 필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서포트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해외의 경우 기업들이 PPA를 활용해 100% 재생에너지로 제품을 생산하지만, 국내는 PPA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세계적인 탄소 규제가 눈앞에 있는 만큼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