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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만 모은 ‘수채: 물을 그리다’ 展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숨겨진 보물 또 있다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 등 수채화 단독 장르 전시의 매력… 직접 볼 수 있는 개방 수장고에 보관된 희귀한 작품들은 또 하나의 진귀한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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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안용호⁄ 2025.03.21 19:48:05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봄 눈이 예쁘게 왔던 지난 3월 18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 왔다. 이 자리는 원래 옛 담배인삼공사의 연초제조창이었다. 1946년 문을 연 청주연초제조창은 1999년에 문을 닫았고 폐공장으로 남겨졌다.

이 자리를 문화 관련 시설로 묶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를 메인으로 한 문화제조창이라는 이름으로 개발해, 지역의 소중한 문화 공간으로 탄생시켰다.

1층 개방 수장고.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1층은 개방 수장고가 있는데, 천정고가 높고 앞과 옆이 유리창으로 되어 안쪽 공간을 볼 수 있어 수장고로 안성맞춤이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운영부 부장은 “온도·습도 등 외기의 영향을 덜 받는 조각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전시 작품이 고정된 것은 아니다. 작가와 시기에 따라 조금씩 전시 작품들이 바뀌고 다른 전시로 작품들이 나가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신현중 작가 ‘뿔있는 우제류를 위하여’.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먼저 신현중 작가의 ‘뿔있는 우제류를 위하여’ 가 눈에 띈다. 우제류란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동물을 일컫는데, 인류 문명의 원형에 대한 탐구를 우제류 연작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는 인류가 살기 좋은 조건이 되게끔 인간에게 고기와 젖, 뿔과 털 그리고 노동력까지 제공해 온 우제류 동물을 주제로 해 동물들의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작된 것이다. 2년여에 걸쳐 나무로 원형을 만든 후 청동 주물로 뜨고 군집 형태로 설치했다.

니키드 생발 '검은 나나'(왼쪽), 장 뒤뷔페 ‘집지키는 개’(오른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입구 왼쪽으로는 해외 작품들이 많은데 상당수는 올 하반기에 과천에서 개최될 국제현대미술전시회에 출품될 예정이다. 특히 니키드 생발의 ‘검은 나나’와 장 뒤뷔페의 ‘집지키는 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오랫동안 전시되던 작품들인데 현재 청주에 보관되어 있다. 이 중 장 뒤뷔페의 <집지키는 개>는 개의 모습을 선과 면으로 처리했는데 흑백이지만 즉흥적이고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우리가 아는 개의 형상은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회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지닌 작가의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숙 작가 '엄마와 아기'(가운데).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김종영, 김영중, 권진규 작가의 석고 작품도 있다. 김정숙 작가, 송명수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김정숙 작가의 ‘엄마와 아기’는 엄마와 아기가 얼굴을 맞댄 채 안정감 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다. 작가는 사랑과 생명을 주제로 형태를 단순화하여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1층에서부터 보물을 만나다…개방 수장고엔 무엇이?

탈 스트리터 ‘용계단’.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탈 스트리터 ‘용계단’은 미니멀리즘 경향의 작품으로서 붉은 색채의 계단 형상이 반복되면서 단순하고 간결한 느낌을 주며, 순수한 형태와 감정의 일치로 작품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토니 크랙의 ‘분비물’은 작가가 주사위를 던져 우연히 나온 결과를 그대로 표면에 붙여 제작한 작품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현대조각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권오상 작가 '트리'.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출구 쪽에서는 만나는 권오상 작가는 사진을 오려 붙여 조각을 만드는 경향을 추구하고 있는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 전시된 ‘트리’는 이러한 소조와 덩어리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반영된 작품이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소재로 하여 전등, 공, 장식품, 종 등 많은 소품을 갖다 붙였는데 그중에는 예전 작업에 등장했던 물건과 사람도 있다. 작가는 로댕의 <지옥의 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전현선 ‘나란히 걷는 낮과 밤’.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2층에는 또 하나의 개방 수장고가 있는데 전현선 작가의 ‘나란히 걷는 낮과 밤’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는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추상적인 조형 요소와 함께 수채 물감으로 자유롭게 그린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이들의 세계는 마치 동화적이기도 하고, 영화 같기도 하다. 전현선 작가의 작품은 여러 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여 하나의 큰 장면을 만들어 내는데, 각각의 캔버스는 마치 영화의 시퀀스처럼 각각 다른 시점과 각각 다른 시대의 표상들을 마주하게 한다. 총 15개 캔버스가 이어진 작가의 대형 작품은 흐르고 흡수되는 수채화의 기법으로 화면을 이어 나가며 다양한 서사를 만들어 낸다. ‘나란히 걷는 낮과 밤’이라는 제목처럼 서로 다른 두 대상이 한 장면에 거주하는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수채화로 오늘의 주인공 5층 전시의 연장선이다.

 

수채화만 모아 단독 장르로 구성한 전시…이중섭, 장욱진, 박수근도 만날 수 있어

 ‘수채: 물을 그리다' 전시 현장.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이제 메인 전시인 ‘수채: 물을 그리다’를 만날 시간이다. 전시를 관람하는 취재진을 위해 정재임 학예연구사가 전시 기획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수채화만 모아 단독 장르로 구성한 이 전시는 대중에게 친숙한 장르인 수채화가 여전히 습작이나 드로잉과 같이 유화 작품을 위한 전 단계이거나 아직 숙련되지 않은 시기의 창작물로 여겨져 왔음에 주목했다. 이에 이번 전시는 수채화만이 지닌 특성을 조망하여 독립적이고 완전성 있는 장르로서 정립하고자 마련됐다.

 

이번 전시는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 등 총 34인의 작가와 100여 종의 작품이 출품됐다. 수채화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세계를 보여준 이인성, 서동진, 서진달, 배동신의 작품도 소개된다. 아울러 수채화를 방법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주력 매체적 특성을 그대로 발현하고 있는 류인, 문신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수채화만이 갖는 물리적 속성인 스며들기나 번지기, 투명성, 즉각성과 같은 특성에 주목하고 이러한 성질이 1920년대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떻게 시도되고 실험되어 왔는지 살펴본다.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먼저 수채화가 도입되었던 시기에 신문물로서 작가들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살펴보고 풍경이나 인물이 드러나는 작품들로 구성했다. 수채화는 근대기 초 서양화의 도입으로부터 그 출발을 알렸고, 새로운 매체와 함께 새로운 시각성의 도입이 발현되었다. 하지만 수채화를 구성하는 종이, 붓, 물이라는 재료의 친연성은 수묵화의 전통과 직간접적인 영향 안에서 활발하게 꽃피우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수채화의 1세대로 일컬어지는 대표 작가들과 그 전통을 이어 온 근대기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박수근 '오리 한 쌍'_MMCA 이건희컬렉션. 사진 제공=MMCA
이중섭 '토끼풀과 새가 있는 바닷가'_MMCA 이건희컬렉션. 사진 제공=MMCA
이중섭의 엽서화가 전시되어 있다. 왼쪽부터 '짐승을 부리는 사람들', '꽃 나무와 아이들', '나뭇잎을 따는 사람'.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특히 상상 속 이상향으로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냈던 이중섭의 작품은 불투명 수채화 기법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채화 표현 방식을 지속적으로 실험했음을 보여준다. 정재임 학예연구사는 “이중섭 작가야말로 수채 물감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림을 그린 작가라고 생각한다”라고 개인적인 견해를 전하기도 했다. 또한 최초의 수채화 전시를 열었던 서동진 작가는 발달한 대구 시가지를 그리며, 신식 건물이 늘어선 거리와 골목 풍경을 통해 대구의 근대상과 서민의 일상을 수채화에 담았고, 자화상을 비롯한 지인의 인물화를 그렸다.

이경희 '실내(다방)'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제공=MMCA 

둘째, 이번 전시는 다양한 형태의 발현을 보여준다. 당시 해외로부터 소개되었던 다양한 미술사적 경향의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사실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같은 경향이 수채화 작가들에게서 잘 드러난다. 자연환경의 묘사뿐만 아니라 내적 성찰과 정신적 상태를 표현하는 형식으로 수채화 매체를 사용한 작가들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강연균 작가의 사실주의적 풍경과 배동신의 표현주의적 작품, 강력한 색채로 실존을 다루는 류인과 김명숙의 작품, 김종하·정기호 작가의 과감하고 리듬감 있는 작품은 상징적 색채로 초현실주의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구본웅 '아이와 염소'_MMCA 이건희컬렉션. 사진 제공=MMCA

셋째, 이번 전시는 다양한 매체의 실험에 존재하는 추상 미술의 새로운 방식에 주목했다. 한국 현대미술의 가장 일찍 자리한 단색화 개념은 국내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등장한 추상 미술을 말하는 국내에서 매체와 질료의 실험으로 더 부각되어 나타나는데, 유럽의 앵포르멜과 같은 비구상 작품과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 일본의 모노화와 연관된 한국의 추상 미술들을 볼 수 있다.

‘수채: 물을 그리다’ 전시 현장. 1970년대 중반부터 종이의 앞 뒷면에 타원형의 점을 무수히 중첩시키는 추상적 회화를 선보였던 곽인식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물감이 번지는 방법을 통해 화면 전체를 색 면으로 채운 김정자 작가의 작품은 우연히 두 겹으로 놓인 한지 위에 작업하다 아래쪽 종이의 번진 느낌이 더 맘에 들어 계속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왔다고 한다. 작가는 우연적 요소와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부드러움의 속성을 작품의 주요 특성으로 가져가고 있다. 곽인식의 작품은 비치는 종이의 양면을 사용해 겹친 꽃잎을 표현했다. 또한 긁고 미는 방식으로 매질의 물성을 극대화한 박서보의 작품이 눈에 띈다.

윤종숙 작가 '아산'.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전시가 끝나면 소멸하는 벽화… 환경 문제에 대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식 보여줘
마지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환경 문제에 대한 적극적 인식과 해결 노력을 기존 전시의 벽과 가구를 그대로 사용해 전시 연출로 보여줬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예쁜 색물을 뿌려놓은 듯한 벽화가 기다리고 있다. 윤종숙 작가의 ‘아산’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의 고향 충청남도 아산의 풍경을 벽화로 표현한 작가는 캔버스 위 또는 벽에 직접 마음의 풍경을 그려내며 수채화의 즉시성이 두드러져 전시장 앞에서 압도적인 풍경을 이룬다. 이 작품은 환경과 재생에 대한 미술관의 역할을 재고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전시가 종료되면 소멸하는 방식으로 작품과 환경의 생애주기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다는 정재임 학예사는 “1990년대 이후 많은 작가들이 아크릴 물감과 수채 물감을 구분하지 않고 혼합매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복합매체라도 아카이브에서 수채라고 설명했을 경우에만, 수채 작품으로 반영하여 이번 전시에 소개했다”라고 덧붙였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한편,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직접 청주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이번 전시는 우리 미술관이 최초로 수채화 장르만으로 단독 구성한 전시이다. 수채화만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전시가 기획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다. 동양화의 지필묵 전통과 맞닿아있는 수채화는 연속성을 갖고 이어져 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수채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감성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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