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04.18 10:58:05
한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오는 4월 25일부터 6월 8일까지 울산 장생포 문화창고에서는 한국 근현대미술 선구자들의 작품을 조명하는 ‘추상에 홀리고 색채에 빠지다’ 전이 열린다.
이 전시에서는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논할 때 첫머리에 등장할 정도로 강렬한 족적을 남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부터 ‘오리와 개구리’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공예가 곽계정까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50여 명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의 뒤를 이을 만한 중진 작가들 10명의 대형 회화와 조각 작품, 국내외 아트페어 및 각종 미술전시에서 ‘블루칩’ 작가로 통하는 33명의 소품 100여 점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정체성과 민족 자긍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기념 트로피도 함께 전시된다. 공식인증은 없지만 소장자가 독일 경매에서 구입한 이 트로피는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성과 더불어, 당시 예술가들이 겪었던 역사적 현실과도 맞닿아 있어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손기정의 청동투구는 공개되었지만 우승 기념트로피의 국내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 대해 고래문화재단 서동욱 이사장(서동욱 남구청장)은 “한국의 미술시장은 과거에 비해 양적인 면의 성장은 물론 내용 면에서도 훨씬 풍요롭고 두터워졌다”라며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한국 미술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기까지 한국의 근 현대 미술 초창기 역사를 써내려 온 ‘선구자’들의 지난한 노력이 겹겹이 쌓이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성취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전시는 그들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고 현재의 한국 미술계의 현주소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획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넓이와 깊이를 감당한 작가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작품 속에 투영된 인간과 사회 그리고 그들이 그리고자 한 세계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 개척자인 김환기를 비롯하여 ‘통영의 피카소’로 알려진 전혁림, 한국 도예계의 거목 권순형, 수묵 추상화의 거장 서세옥, 가장 한국적인 현대화가 중 한 명인 이만익, ‘산의 화가’로 통하는 박고석, 채색 한국화의 대가로 불리는 민경갑, 사실주의 구상 계열 풍경화를 주로 그린 천칠봉, 전통 문인화 화법을 현대적 감각으로 변용,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연 장우성, 인간을 주제로 독보적인 추상화의 영역을 개척한 황용엽 등 50여 명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화려하게 수 놓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세계적인 만능 아티스트 곽계정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지방 도시에서는 최초로 대거 선을 보이는 세계적인 공예가인 곽계정의 다양한 작품들이다. 회화, 목공예, 왕골 공예, 가구, 판화 등 곽계정의 수십 년 화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작품들은 이번 전시의 색다른 묘미이다.
곽계정은 한국 미술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주로 국제 무대에서 활동한 작가이다. 그는 일찍부터 미국과 일본,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인도, 소련,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활약했다. 그의 넓은 활동 무대만큼이나 그의 조형세계 역시 다채롭다. 회화에서 각종 공예와 염색, 동벽화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전방위에서 열정적인 창조력을 발휘, 국제적 명성을 드높였다.
그의 미술 작업에는 나무나 구리, 유리, 종이, 세라믹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들이 동원되었다. 그는 이러한 소재들을 독특한 콜라주와 핸드 페인팅, 판화나 조각, 회화 등의 기법들을 통해 감각적으로 살려냈다. 또한 호랑이나 토끼처럼 우리의 토속적 동물들을 우화적 방식으로 변용, 창의적 디자인으로 진일보시켰다.
곽계정은 오리와 개구리의 작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에 투여된 이러한 상징과 이미지는 한국적이면서 지극히 고전적이다. 아울러 어린아이의 순수한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듯하고, 민화에 나타난 우화에 가까운 그녀만의 묵직한 세월의 깊이와 무게를 느낄 수 있기에 꿈과 자연과 역사의 흔적이 혼재된 그녀만의 예술세계를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한국의 산을 배경으로 담배 피는 호랑이, 달항아리에서 방아 찧는 산토끼, 풀잎의 메뚜기, 한국 고유의 문틀 격자무늬 등등의 디자인은 마치 동심을 담은 자연의 꿈과 과거의 추억을 동시에 현대예술이라는 무대에 등장시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는 왕골 공예와 실크스크린을 이용한 판화기법으로 일상에 한국적 디자인을 접목한 최초의 여류 공예가이기도 하다. ‘한국의 코코 샤넬’이라는 별칭이 그의 이름 앞에 붙어 있으며, 그의 타고난 예술적 재능과 더불어 작가로서의 성취도가 새롭게 부각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특별관엔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크리스털 트로피
손기정의 크리스털 트로피는 18면으로 깎은 크리스털 컵 전면에 '결승선의 주자(Runner at the Finishing Line)'라는 주제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미술 부문 수상작인 '루돌프 아이젠멩거(Rudolf Eisenmenger)의 그림 형상을 조각해 놓았고, '명예상- 일본 챔피언 '키테이 손(손기정의 일본 이름) 올림픽 마라톤 신기록 2:29:19.2’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후면에는 '독일 제국 11 올림픽 독일 베를린(German Reich 11 Olympic German Bein)'의 글자가 있으며, 올림픽 종의 가장자리 아래에는 올림픽 고리를 딛고 있는 독수리가 새겨져 있다. 바닥에는 세계적인 유리 제조 회사의 창립자 칼스바드(the Karsbad)의 '루드비히 모저 (Ludvich Moser) '의 이름인 '모저(Moser)'의 사인이 새겨져 있다.
김환기·곽계정 뒤 잇는 중진 작가 10명, 블루칩 작가 33명 작품 동시 감상
한편, 이번 전시는 중진 작가 특별전 한국 근현대 미술의 선구자들의 뒤를 이을 만한 중진 작가 10명의 작품을 통해서 한국 미술의 현주소를 간접적으로나마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다년간 해외에 체류하며 작품활동을 하거나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하게 전시하는 작가들이다.
모던클래식 핑거 페인팅 아티스트로 이름난 구구킴(GuGu Kim)의 가로 9m x 세로 2m 80 크기의 대형 회화, 재불화가 정택영의 '빛의 언어' 시리즈, ‘철의 사나이’ 조각가 우징, 고래 형상을 작품의 소재로 삼은 조각가 박경석 등 현재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10명 작가의 최근작 40여 점을 만나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블루칩’ 작가 33명의 소품전에는 곽연주, 박시현, 변진미, 류동필, 권지현, 황현숙, 이미원,김교생, 이소라, 조문호, 오효석, 권명숙, 김윤환, 박인숙, 양혜언, 김수선, 차현희, 박오서, 이항재, 이연호, 박광숙, 강재연, 찬희, 구연주, 이병옥, 서정희, 별 빛, 이현주, 신은영, 박다영, 유경순, D.Kim, 김영아 작가가 이번 전시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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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