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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어른’이 없는 세상

“박정희 시대에도 이처럼 처참하게 지지는 않았다. 민주주의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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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호 ⁄ 2008.01.07 16:10:34

“박정희 시대에도 이처럼 처참하게 지지는 않았다. 민주주의의 위기다.” 신년 벽두에 DJ가 동교동을 인사차 찾은 대통합민주신당 지도부에게 던진 말이다. 대선 패배에 대한 뼈아픈 회한과 함께, 대선을 훈수한 정치 9단으로서 신당에 책임을 묻는 질책이 신랄하다.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YS가 토로한 새해 아침의 소회이다. 그가 지지한 한나라당이 대선에 이겨 무거운 짐을 홀가분하게 덜었노라는 안도감이 절절이 배어나는 한편으로, DJ를 향한 냉소가 서릿발보다 더 차갑게 느껴진다. 등을 돌린 채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두 전직 대통령의 상반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웃음과 덕담이 만발하면 좋을 자리에서 나온 말이라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DJ와 YS는 연륜으로나 정치 경력으로나 어른 행세를 할 만도 하다. 또한 마땅히 경륜에 걸맞는 대접을 받을 만하다. 그래서 신년을 맞아 정치 후배들이 존경하는 그 어른들을 찾아뵙고 하례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워야 할 정경을 노회한 두 어른의 위와 같은 한마디가 단번에 깨버리고 말았다. “그 동안 고생들 많았소. 이제 한바탕 잔치는 끝났으니,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 화합의 한마당을 준비합시다.” 만약, 두 전직 대통령이 찾아온 후배들의 손을 잡고 이렇게 격려했다면, 그날의 분위기가 어떠했을까? 또한 그 훈훈한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흐뭇했을까? “어른이 없다.” 언제부턴가 주변에서 흔히 듣게 된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진정 어른은 없는가? 생리적 나이로만 치자면야 고령화 사회에서 나이 든 어른들은 오히려 늘어만 간다. 그런데, 그러한 생리적 어른이 아니라,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할 '존경하는 어른'의 모습이 안 보인다는 데에 우리의 고뇌가 있다. 집안에도, 마을에도, 사회에도, 나라에도, 어디에도 우리가 모시고 따라야 할 어른의 자취는 보이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처럼 지도자다운 지도자, 어른다운 어른이 기라성처럼 많았던 나라도 없었다. 그 지도자, 그 어른들의 뒤를 따라 우리 민족은 고난의 세월을 꿋꿋하게 헤치고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전날 우리에게 훌륭한 지도자가 없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번영의 역사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 기나긴 고난의 역정을 헤치면서도 믿고 따를 지도자가 있었기에 고통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오히려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모두 어른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그러나 지도자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정의롭고, 정직하고, 신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지도자는 그 속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자면 우리 모두 마땅히 가면과 가식을 벗어 던지고 정직하고 순결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처럼 정직하고 성실하게 지도자를 기다리다 마침내 자신이 지도자로 추앙받는 감동 스토리는 픽션이 아닌 진실일 수 있다. 무자(戊子)년에는 우리 모두 정직한 사람이 되자. <글 ·발행인 최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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