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준(화가·교수) 사실 회화는 하나이지만 “아” 다르고 “어”다르다고 구분은 확실히 짓고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재료는 시대와 지역적 특성에 따라 바뀌고 어떤 재료를 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진실한 마음과 그것을 싸고 있는 토속적 감성, 그리고 역사가 서린 전통성에 있다. 한국화가가 서양에 여행 가서 재료가 떨어질 경우 양지에 수채 물감을 썼다고 해도 그림의 몸은 서양이지만 정신과 본체는 한국 것이다. 재료나 기법이 좋으면 나쁠 건 없지만 그것만으로 자신의 작품을 뽐낸다면 졸부가 옷 자랑을 하는 것과 다를 것 없다. 중국화의 발묵, 파묵 이론이나 한지의 우수성은 인정하나 이를 한국화의 근간인양 운운함이 대표적 예다. 서양인이 한국에 와서 스케치 한 것이나 한국인이 프랑스에 가서 인상주의나 모더니즘을 그려도 한국화인가? 전국의 미술대학에 90년대 초까지는 한국화과가 없었고 동양화과만 있었다. 이는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이론에 따른 학과 체계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몇 개의 대학이 동양화과를 한국화과로 개명했으나 가르치는 교수나 커리큘럼은 변하지 않고 이름만 바뀐 형식이 되어버렸다. 대학의 한국화과 교육은 동양화과의 구분이 전혀 없으며 80년대 민중미술 또한 서양, 중국식의 급조된 화풍일 뿐이다. 미대를 졸업한 화우님들도 동양화나 한국화나 같은 것 아니냐?라고 대부분 얘기한다. 이는 이 시대 미술대학 교육의 현실이며 여기서 나는 ‘headless man(머리없는 사람)’이란 단어가 연상된다. 자기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
한국의 한국화가 그러하듯 전통이 깊은 나라들은 그 나라만의 전통과 역사 문화를 담은 의복, 언어, 글, 그림의 독특한 양식이 있다. 서양은 면을 위주로 하기에 평붓을 주로 쓰며 신의 세계를 그리는 예수교적 종교화나, 그리스 신화적 미술, 인본주의적(소피스트) 사상에 입각한 직설적 사실적 표현에 근거하고 있다. 반면 동양은 면의 근원인 선을 위주로 자연주의(노장, 천부경)적 해석과 직관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해 왔다. 기록상으로 중국 최초의 고대 국가인 은허도 동이족이 세운 국가이고 공자, 맹자, 노자, 요순까지도 동이족이었다. 따지고 보면 사실 중국 한족의 문화는 동이족 문화의 변방이었다. 그러나 지역적 특성상 동이 문화의 메카였던 고대 만주, 바이칼, 한반도의 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전통은 우리 배달족으로 이어져 왔다. 한국화의 특성은 도덕경에 보이듯 어린이의 심성을 닮은 우리만의 독특한 해학과 선을 위주로 하여 면을 취하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고구려 벽화의 물결치는 듯한 산맥의 표현은 조선 민화에서도 그 전통의 맥을 볼 수 있다. 이미 반구상적, 입체적, 기하학적 기법조차도 소화해내고 있었고 고구려 회화의 맥을 이은조선의 프로 한국화가들은 중국의 왕권에 대한 충성이 담긴 4군자 그림 형식이나, 신에 대한 복종 의식이 담긴 서양의 성화(聖畵)도 아닌 인간을 위한 사랑과 행복을 기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