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새 장편소설 <불멸>은 기울어져가는 조국의 운명을 안고 고뇌하다 마침내 만주의 찬바람 속에서 불꽃처럼 타올라 30년 6개월 남짓의 짧은 생애를 마친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다룬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일본군에 의해 뤼순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100주기가 되는 해다. 단호하고 명확한 길을 한 번 주저 없이 달려간 안중근 의사의 불꽃 같은 삶, 겨레에 대한 사랑에서 싹튼 인간애와 그 실천을 향해 외곬으로 정진한 그의 정신이 소설 <불멸>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문열은 “안중근의 생애와 동양 평화의 큰 뜻을 21세기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때로는 테러로 폄하되기도 하는 하얼빈 의거의 정당한 의미를 돌이켜 보기 위해 <불멸>을 썼다”고 밝혔다. 늘 큰 가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질 곳을 찾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기다렸던 인간 안중근을 작가는 장중한 문체와 철저한 고증으로 형상화해냈다. 2월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벨라지오에서 열린 <불멸>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작가는 이날 새벽 5시에 <불멸> 2권을 탈고했다면서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질의에 답했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불멸>은 어떤 작품입니까?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여 쓴 전기소설입니다. 전기소설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요. 저는 그 중에서도 로멩 롤랑(Romain Rolland, 프랑스 소설가)이 쓴 것처럼, 최소한의 원형만 남기고 안중근의 특징을 잡아서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집필하다 보니, 안중근이 시간상으로 근접한 분인데다 함부로 주관화하고 소설화하기에는 좋지 않아, 결과적으로 평전에 가까운 형태가 됐죠.” -서문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찍힌 ‘봉인’에 대해 언급했는데요. 그중 가장 심각하게 느낀 봉인은 무엇인가요? “일제의 봉인이 가장 심각하죠. 그중에서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일이 큰 상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인들의 기록하는 습관으로 봐서는 분명히 그의 유해가 있을 텐데 말이죠. 취재 때문에 지난해에 안 의사의 공동묘지 터에 가봤는데, 아파트로 개발 중이더군요.” -한국 사회에서 안 의사와 관련해 가장 왜곡된 부분은 무엇인가요? “일본인들의 왜곡에서 영향을 받았겠지만, 은연중에 안 의사를 ‘건달기’가 있는 테러리스트로 보려는 경향도 있어요. 무장 투쟁에 대해 백안시하는 부분도 그런 경향 때문에 작용했을 것이며, 애국 계몽 운동에 대한 이해 부족 탓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안 의사에 대한 이미지는 ‘하얼빈에서 저격하는 모습’으로 고착화돼 있는데, 이는 나라의 봉인일 수도, 왜곡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불멸>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안중근 의사는 언젠가 시간이 주어진다면 소설화해보고 싶었던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집필을 준비하기 시작한 계기는 2005년에 모 제작사로부터 <영웅>이라는 뮤지컬 대본을 의뢰받으면서입니다. 그전에 쓴 뮤지컬 <명성황후>가 그 제작사의 레퍼토리였는데, 15년이 넘으니까 관객이 떨어진다며 새로운 레퍼토리를 만들자고 내민 것이 <영웅>이었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귀찮아서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이었는데다, 몇 달 자료를 검토해봤지만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뮤지컬로 올릴 만한 드라마틱한 부분을 느끼지 못해 대본 집필을 사양했죠. 그런데 2008년에 귀국해서 갑작스럽게 <조선일보>로부터 이 작품을 의뢰받았어요. 그때 문득 생각하니, 뮤지컬로는 자신이 없지만 산문이라면 차분하게 풀어 나가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황급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년 전만 해도 구하기 힘들었던 자료들을 구하게 되면서 보다 의욕적으로 집필에 임하게 됐고요. 최근 30년 동안의 기하급수적인 연구 성과가 이번 작업을 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중에는 지나치게 방대한 자료가 취사선택에 어려움을 줄 정도였지만요.” -취재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1909년의 자료부터 모아야 하는데 역순으로 모은 일입니다. 당시의 자료는 나중에 모으게 됐죠. 그런데 오래된 자료들은 대개 제대로 된 책자가 아니라 기사나 사진 같은 것들로 돼 있어서 판독이 힘들고 문장이나 문체가 읽기에 나빴어요. 오래된 것들이라 설화적인 이야기가 많아 선입견도 있었고요. 그런데 집필이 끝나갈 무렵에 오히려 초기의 기록들이 신빙성을 갖고 다가왔습니다.” -<불멸>에 녹인 안중근 의사의 성격을 간략하게 묘사해주세요. “저는 제목을 정하지 않으면 작품을 집필하지 못합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기존 이미지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일반적인 의미의 자객이나 테러리스트 같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으나 국가적 경계 안에서 장군, 군사적 영웅과 같은 느낌,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신화적 영웅과 같은 초상입니다. 그 세 가지 모두 어느 하나로 안중근 의사를 그려내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어서 <불멸>이라는 제목을 정하게 됐습니다. 안 의사의 삶을 볼 때, 인생의 목표를 정하면 앞과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고귀한 가치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죠. ‘불멸’이라는 개념은 마지막 순간에 그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드러난 조국 사랑, 최고 과제로서의 민족애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장군이나 영웅이나 자객 등 ‘활동’에 집중한 인간상이 아닌, 자신의 실존으로 설정한 신념, 즉 ‘관념’에 헌신한 인간으로 안중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글쓰기를 피 말리는 작업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아는데, 집필하면서 느낀 가장 큰 고통은 뭔가요? “피를 말리는 작업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마감이라든가 문학 외적인 이유 때문에 신체적으로 고단한 일은 생기지만요. 그러나 정신적으로 볼 때는, 글을 써 나가다 정체되거나 할 때 갈등과 압박은 있지만 그만큼 나를 풀어주고 위로하는 기능도 있기 때문에, 그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글쓰기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압박되고 엄청난 힘의 소모를 강요하지만, 또 하나는 그만큼 삶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내 삶이 위로받는 기분도 듭니다. 그 균형이 잘 맞는 작업이 글쓰기죠.” -표현 방법을 고민하다가 평전 형식을 취했다고 했는데요, <불멸>의 안중근은 실존 안중근의 모습에 어느 정도 근접합니까?
“저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했죠. 갑작스럽지만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는 안중근 의사가 너무 쪼개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기념사업회만 해도 작은 것까지 포함해 4개가 있다고 들었고, 그들이 저마다 말하는 안중근이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우리 안중근’이란 개념도 제각각 달랐고요. 저는 총체적인 안중근을 만드는 일을 집필의 기본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그 자료들끼리 충돌하고 그 안에서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를 고민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진실성에 의존하게 됐죠.” -안중근의 인간적·영웅적 면모 두 부분은 어떻게 균형을 맞췄나요? “인간적 면모라고 할 때는 일반적으로 로맨스나 사생활에 관련된 내용이 될 텐데요. 안중근 의사의 삶에 제가 1년 간 푹 빠졌다 나와 보니, 인간적 소재로는 이분을 설명하기가 어렵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 일화로, 안 의사가 젊은 시절에 기생들과 놀면서 ‘어째 현모양처로 살지 않고 웃음과 몸을 팔면서 짐승처럼 사느냐’고 나무랍니다. 기생들에게는 정말로 듣기 싫은 말일 테지만, 안중근은 그걸 모릅니다. 모르는 모습이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 사람은 이럴 수밖에 없구나’ 하고 느꼈어요. 로맨스를 한 번 만들어보려고도, 여자를 집어넣으려고도 고심했는데, 도저히 이 양반한텐 넣어선 안 된단 생각이 들어 포기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400매 가량의 수고(손수 쓴 원고)가 있는데, 열 줄을 제외하고는 부인에 대한 언급조차 찾아보기 어렵더군요. 이런 점으로 볼 때, 안 의사는 일탈을 찾아보기 힘든 순진한 인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 여가 시간은 어떻게 활용하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저는 취미가 많지 않은 사람입니다. 여가가 생기면 주로 술을 즐기지만, 너무 과하게 마셔 최근에는 조심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교류하는 문인들은 있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문인들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향후 계획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작업은 없지만, 둘 중에 어떤 걸 먼저 할까를 놓고 고민 중입니다. 하나는 우리 시대에 대한 이야기인데, 불가피하게 정치적인 논조가 들어갈 듯해서, 쓰고 싶긴 하지만 참고 있고요. 다른 하나는 쓰긴 쉽겠지만 쓸 기분이 내키지 않는 주제입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자신의 작품은 뭔가요? “모두 나의 정신적 자식이지만, 최근 <호모 엑세쿠탄스>를 생각하면 사고로 죽은 자식을 보는 것 같은 애틋함이 있고, 그것을 애정이라고 말하면 애정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최근에 누가 책을 보내줘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었는데, 읽으면서 더욱더 <호모 엑세쿠탄스>를 좋아하게 됐어요. 하루키는 행복한 나라에 사는 것 같습니다.” -이문열 작가는 시대와의 불화를 겪고 있습니까? “불화 정도가 아니고 왕따가 아닌가 싶어요(웃음).” -<1Q84>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맞춰보니 (하루키가 <1Q84>를 쓴 시기가) 제가 <호모 엑세쿠탄스>를 쓰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쓴 것 같은데, 선수들끼리만 알아보는 게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주기에 맞춰 책을 출간한 이유가 있습니까? “책의 서문에 ‘시의’라는 단어를 적었는데, 다음 달 26일이 안 의사의 순국 100주기입니다. 그전에 펴내서 안중근 의사의 순국 의의를 함께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안 의사에게서 민족주의를 빼면 남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의 삶을 논하는데 민족주의는 중요한 코드입니다. 그런데 어떤 논의에 따르면, 민족주의라는 것은 우리 시대에는 그 용도가 폐기된 의미이기도 하죠. 민족주의가 사라지면 안중근도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저는 안 의사를 돌아보는 일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멸’ 말고 다른 제목을 생각했을 때 ‘불멸’ 다음이 ‘이 사람을 보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