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제중원>의 주인공은 백정 출신의 의사 황정, 그리고 황정을 진정한 의사로 만드는 알렌이다. 황정과 경쟁하는 명문가 출신의 제중원 의생 백도양, 그리고 역관·무역상의 딸로 여자의사가 되는 석란도 있지만, 극적 재미를 위한 조역이라 볼 수 있다. 명의 알렌과 그 수제자 황정은 서로 협력하면서 기적 같은 의술을 베푸는 것으로 나오지만,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김상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알렌은 명의가 아니었고, ‘백정 출신 의사’는 알렌과 함께 치료를 베푼 적이 없다. 알렌은 의과대학을 졸업했지만, 의사로서 최고 수준은 아니었다. 중국에 ‘일반 선교사’로 파견됐지만, 치료하던 중국인 환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고생하던 알렌은 스스로 ‘조선으로 보내 달라’고 북장로회에 요구했고,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져 1884년 9월 조선에 왔다. 그는 청나라와 달리 외국인을 환영하는 조선의 분위기에 감격했다. 북장로회가 조선에 파견한 ‘의료 선교사’ 1호는 알렌보다 1년 늦게(1885년) 조선에 도착한 존 헤론이었다. 그는 테네시의과대학을 수석 졸업한 재원이었으며, 모교로부터 교수직을 제의받았지만 의료선교사가 되기 위해 이를 거절한 ‘진짜 의사’였다. ‘백정 출신 의사’ 박서양은 국내에서 배출된 첫 의사이면서 세브란스의전 교수로 활약하다 간도로 건너가 독립운동 펼친 실존 인물
드라마에서 ‘백정 의사’ 황정은 제중원 초기(1885년)에 알렌과 함께 일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황정의 모델이 된 박서양은 사실 제중원의 뒤를 이은 세브란스의학당의 1회 졸업생으로서 그가 세브란스의학당에서 배운 시기는 1904년, 즉 20년 뒤의 일이다. 극적 재미를 위해 극작가가 20년 뒤의 인물을 제중원 초창기로 ‘시간이동’시킨 결과다. 제중원 초창기에 알렌을 도운 인물로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약 처방을 할 수 있는 조선인’이 한 사람 있던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실존 인물 박서양은 백정 박성춘의 아들이다. 박성춘은 1893년 당시 제중원을 맡고 있던 에비슨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감화돼 기독교로 개종하고 교회를 다녔다. 당시 에비슨은 편지에서 “박성춘이 백정 친구를 교회로 많이 데려와 사람들이 ‘백정교회’라 부른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아버지 박성춘은 아들을 에비슨에게 부탁하고, 에비슨은 박서양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면서 인품을 본 뒤에야 세브란스 입학을 허락한다. 박서양은 1908년 세브란스의학당 1회 졸업생 중 한 명으로, 한국 최초로 의사 면허장을 받으며, 이어 모교에서 전임 교수로 화학·해부학을 가르치고 외과 환자를 진료하다가, 1918년 간도로 독립운동에 나선다. 백정에서 한국이 배출한 최초의 서양 의사를 거쳐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