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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과 한판 승부> 열두 번째 이야기

인류탄생설에 대한 群雄의 百家爭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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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5호 편집팀⁄ 2010.04.12 13:24:29

글·김윤식 이기하의 반문을 듣고,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더니 따져 물었다. “현재 파악된 지구의 지질구조는 오랫동안 과학자들이 탐구하고 분석하여 체계적으로 밝혀낸 과학적 결론입니다. 즉, 지구 전반에 걸쳐 생성된 균일한 지층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체계적인 생물화석, 그리고 오랜 세월이 아니면 결코 생성될 수 없는 석탄이나 석유 등을 미루어 볼 때, 겨우 6000년 전에 지구가 만들어졌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된다고 봅니까?” 이기하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연히 말이 된다고 봅니다. 1980년에 미국의 세인트 헬렌 산이 화산으로 폭발했습니다. 이때 5시간 동안 폭발하는 사이에 불과 3시간 만에 7.6미터의 퇴적물이 쌓여 엽층(葉層: 지층을 구성하는 얇은 퇴적물 층)이 형성된 사례가 있습니다. 때문에 저희 창조과학에서는 현재의 지질구조 역시 약 4000년 전에 있었던 ‘노아의 홍수’라는 전 지구적 대격변에 의해 일시에 생성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질문이 쏟아지고, 이에 대한 답변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로 얼굴까지 붉히는 격론으로 치닫게 되었다. 인류의 始原을 찾아서 내내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눌촌 거사가 나서서 격론을 자제시켰다. 그때를 틈타 왕문후가 담론의 주제를 바꾸는 질문으로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스스로 이승과 작별하려고 석양의 낭떠러지를 찾은 이들이건만, 어느새 열띤 담론에 빠져들어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사님!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지 궁금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정녕 인간의 정체는 무엇이옵니까?” “허허! 인간의 정체라……. 그러고 보면 우리는 분명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부닥치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지요. 사실, 철학자·종교가·고고인류학자·생물학자·뇌신경학자·동물행동학자·심리학자, 그리고 평범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정의에 대한 기준과 그 내용은 천차만별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고도로 발달된 문명의 기치 아래 인간에 대한 수많은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이란 정체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요. 하지만 어쩌면 그 해답이 우리 곁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가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말입니다. 우리들은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무런 부담일랑 갖지 말고 가볍게 얘기를 해봤으면 합니다.” 눌촌 거사가 이번에도 일행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다들 심각한 얼굴로 옆 사람과 속닥거리며 과연 마땅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다시 담론의 물꼬를 튼 사람은 빅뱅이론과 진화론에 조예가 깊은 양백승이었다. “인간이란 뭇 동물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고등동물’로서, 인간만의 고유하고 월등한 독보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지금까지 믿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진화인류학과 동물행동학에서는 대형 유인원들도 인간의 독보적 특성을 무력화시킬 정도의 우월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직립보행, 도구 사용, 정상체위 섹스, 사회생활, 사냥과 음식 공유, 정치와 도덕 그리고 거짓말, 공격과 화해, 상징적 의사소통, 전쟁, 웃음과 울음, 자의식’ 등이 침팬지나 보노보에게도 흔히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결국 인간은 진화라는 자연 선택에 의해 우연히 탄생된, 기껏해야 ‘조금 더 영리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고 봅니다. 흔히 인간에게는 특별히 영혼이라는 게 있어 동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지만, 뇌과학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영혼이란 뇌의 물질구조에 의해 작동되는 ‘의식활동의 일환 내지 연장선’이라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양백승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그의 주장에 언짢은 표정을 짓던 이기하가 벌떡 일어나 다시 의견을 펼치기 시작했다. “인간이란 하나님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유일무이의 존귀한 존재로서, 만물의 영장이고 이 지구의 주인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근거는 오로지 인간만이 감정과 이성, 마음과 생각, 탐색과 사고, 갈등과 번뇌, 성찰과 반성, 명상과 회의, 소명과 자의식 등을 발현하고 통제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혼은 인간의 모든 의식활동을 생성하고 조정하는 상위 기능체로서, 육체와는 분명히 분리되어 이원적으로 작동하는 비물질적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진화를 창조하는 존재’ 양백승과 이기하가 적극적으로 나서 소신껏 의견을 펼치자, 나머지 사람들도 용기가 생긴 듯 한 사람씩 일어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긴 나무 지팡이를 어깨에 비스듬히 걸친 눌촌 거사는 단정하게 정좌하고 앉아 이 광경을 담담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인간이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당장 눈앞에 닥치지도 않은 일을 굳이 챙겨 다루거나, 또는 앞일을 예측하여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미래를 설계하는 존재’라는 어느 철학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는 오로지 인간만이 미래의 삶의 꿈과 희망을 찾아 장기적 안목으로 인생의 비전과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지극히 미래지향적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인간이란 자신도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특별한 생명체로서, 상황에 따라 ‘스스로 죽음을 다스리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즉, 고통을 이기지 못해, 너무 억울해서, 자신의 신념에 투철하기 위해 자살을 하고, 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불사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술을 동원하여 벗어나는 등 죽음을 통제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만이 자연의 섭리에 도전하고, 자연질서를 파괴하고, 자연을 극복하는 가운데, 스스로 진화함으로써 ‘진화를 창조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즉, 총체적인 과학기술을 토대로 낙태, 안락사, 장기이식, 인공장기, 성형수술, 사이보그, 인간복제 등과 더불어, 댐 건설, 인공강우, 엘니뇨 현상의 인공적 통제, 환경오염 등에 이르기까지, 기존 자연질서와 정면으로 맞대응하면서 자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진화를 거듭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인간이란 욕망을 조절하고, 선악을 구별하고, 체면을 중시하고, 합리적 판단을 내리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줄 아는 ‘지혜로운 판단력과 도덕성을 가진 존재’라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욕망을 절제하는 이성, 선악을 고민하는 양심, 선과 정의를 추구하는 도덕, 예의염치를 가리는 교양, 사리 분별을 하는 지성, 따뜻한 인간애를 지향하는 감성 등이 어우러진 고귀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이란 자신의 경험과 흔적을 기록하여 역사와 자료로 남기고, 그것을 통해 지속적인 생존에 필요한 교훈과 지혜 그리고 수단을 얻는 ‘학습하는 존재’라 믿어집니다. 이는 인간만이 완벽한 발성기관에 의한 ‘폭넓은 말’과 이를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문자’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역사를 남기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란 시간에 대한 개념을 인식하고 시간을 체계적으로 다룰 줄 아는, 즉 ‘시간을 통제하는 존재’라는 점이 그 무엇보다 독특한 특성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말해, 시간의 개념을 통해 우주의 변화, 사람의 수명, 사건의 발생 시점을 인지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책력을 만들고 시계를 발명하기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여기에 과학기술이 접목되면서, 자연 속에서 수만 년이 걸렸던 시간을 짧게 압축하거나 뛰어넘기도 하는, 자연의 시간을 조작하는 존재가 된 것이죠.” “무릇 인간이란 스스로의 한계와 어리석음을 자각하는 한편,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을 찾아 헤매는 존재’라는 데에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엄청난 자연 재앙, 감당하기 어려운 환난, 예고 없이 닥치는 불운,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사를 신에 의지하여 풀고자 인간은 종교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때문에 인간은 세속을 떠나 수도자가 되기도 하고, 신앙생활을 통해 세상의 고통을 위로받거나 삶의 소망을 찾아 평안을 누리면서 신의 아들이라 자처하기도 하지요.” 일행의 의견 개진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눌촌 거사가 일단락을 지으려고 나섰다. 하지만 몇몇 사람이 자신에게도 발언 기회를 달라면서 항의하고 조르자, 거사는 어쩔 수 없이 허락해야만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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