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 대위 출신에, 한국 최초의 공기업 여성 임원에, 전국여성관리자네트워크 회장에…. 대단히 강하고 남성적일 것 같은 황춘자 본부장이지만 그녀라고 ‘애엄마 직장인’으로서의 아픔이 없었을 리 없다. 그녀에게는 미대에 다니는 딸이 하나 있다. 38살 때 낳은 딸이다. 군생활, 직장생활로 미루고 미루다 낳은 딸이다. 그녀의 본능은 자녀를 더 낳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하질 않았다. “일밖에 몰랐다”는 그녀지만 딸이 태어나자 사정이 달라졌다. 제일 힘들고 눈물겨울 때는 애가 아플 때였다. 밤새 보채는 아기를 둘러업고 병원에 가서 줄을 서야 하는데, 남자 직장 상사가 이런 ‘애엄마 여직원’을 곱게 봐줄 리 없었다. 결국 그녀가 택한 방법은 친척 집을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남들은 직장 근처로 이사 간다지만, 그녀는 출근 거리에 상관없이 아기를 봐줄 만한 친척 집 옆으로 다섯 번이나 이사를 했다. 애가 세 살이 된 뒤부터는 보육 시설에 맡기고 찾는 생활을 계속했다. 워낙 시간이 없어 돈이 들더라도 가사도우미의 힘을 빌렸다. 딸이 대학에 들어간 뒤에야 그녀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고 했다. 노동부 산하 단체로서 그녀가 회장으로 있는 전국여성관리자네트워크는 일하는 여성의 이런 고충을 해결해 달라고 노동부에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대답은 “직장에 육아시설을 만들 것을 의무화하면 기업에 너무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었다. 황 본부장은 “이런 문제 때문에 요즘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여자들에게 애를 안 낳는다고 지적할 게 아니라 애를 가진 엄마들이 맘놓고 일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무실 의자도 여자에게는 불편해 한국 직장이 얼마나 남성 중심인지는 그녀의 사무실 의자에서도 드러났다. 의자 머리받침대에 빨강색 알록달록한 장식이 달려 있어, ‘의의로 소녀 취향이 있으시네요’라고 농을 던지자, 그녀는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의자가 남성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의자를 뒤로 젖히고 쉬려 해도, 자신의 머리는 머리받침대가 아닌 등받이게 가 닿기 때문에 푹신한 장식품을 달아 놓은 것이라 했다. 여자가 편안히 일할 수 있는 한국 직장이 되기까지는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둘이 아니라는 또 하나의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