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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건강 칼럼]“나이 드셔서 그렇다”는 무례한 처방

노인도 사람이다…의사는 성실히 치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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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7호 박현준⁄ 2011.06.20 12:00:41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명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고 이제 남녀의 차이는 있지만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서고 있다. 의학의 발전도 한 요인이지만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어 몸 관리를 잘하고 있으며 건강진단을 통해 미리 질병을 발견하고 대처해 나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만갑’이라고 해서 40살을 넘어 사는 것을 기념했고, 70년대까지만 해도 환갑에는 잔치를 베풀어 축하했음을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20년 전쯤의 일이다. 사촌형님이 미국에서 나와 필자의 아버지께 “환갑이라서 나왔습니다”라고 하자 아버지께서 “이 친구야, 요새 환갑을 찾는 사람이 어디 있나. 어른들 앞에서 행여 그런 소리 말게”라고 면박을 주신 일이 생각난다. 갑작스런 수명의 증가는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수명은 늘지만 삶의 질이 따라가지 못하고, 노화에 따라 만성 생활습관병이 생기면서 심각한 병은 없을지라도 신체 각 부위에 통증을 느끼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통증 없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15%밖에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탓이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데도 의료계에는 이에 대한 대처가 부족하다. 고령자들이 통증이 있거나 소화가 안 돼 병원을 찾으면 거의 모든 의사들이 “나이가 드셔서 그렇다”는 인식을 갖고 대수롭지 않게 대처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이런 태도는 고령자들에게 불만과 허탈감을 안기면서 더욱 많은 건강 장애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정말 문제다. 지인 중 75세에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 부전을 가진 분이 있다. 이 분이 발에 상처가 생겨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당분간 움직이지 말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했다. 당뇨병엔 운동이 필수인데 움직이지 말라니! 물론 당뇨가 심한 환자는 발 관리를 잘해야 한다. 당뇨 환자의 발에 염증이 생기면 보통 사람과 달리 염증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간혹 발을 절단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지만 관리를 잘하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이 환자는 의사의 처방을 순진하게 따라 3, 4개월 정도 기동을 않고 집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그러자 가뜩이나 약했던 근력이 더 약해져 일어서는 일도 불가능해졌고 곧이어 이에 따라 우울증이 오고, 여기에 더해 부축해 일으키다가 어깨에 통증이 생기면서 식사도 혼자서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40대 후반 의사의 눈에는 고령 환자가 ‘이제 그만 활동해도 되는 나이’로 비쳤기 때문에 이렇게 엉터리 처방을 내렸을까? 의사 자신은 영원히 젊게 살 거라고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이 늙은이가 하는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이라고 한다. 말은 이렇게 해도 고령자의 마음도 젊은이와 다를 바 없고, 그래서 아무리 늙었어도 사랑 소재의 드라마를 보면 함께 울고 웃는 하는 것이다. 어느 60대 여배우가 그랬다지 않는가. “언제까지나 여자로서 늙어가고 싶다”고. 의사는 환자의 나이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의료계도 노인학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이를 전문화시키고 확대해 나가야 한다. 누구에게나 닥쳐올 노후 인생에서 질 높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려면. 인간의 생리적 수명 한계는 120세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금의 잣대로 말하는 것이지 ‘120세’가 절대적 한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중세 시대 30세 미만이었던 평균 수명이 21세기 들어 100세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구구팔팔이삼사’(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삼일만 앓다 숨을 거둔다)가 노인들의 희망이라는 말에서 고령자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나 멋진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운동’이라는 건강보험 들어 놓으셨나요? 영국인은 75세 때 가장 행복하다는데 우리는… 60세가 되는 한 여성은 결혼 뒤 지난 30여 년간 시집살이를 하며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았다며, 자식들은 다 결혼하고 남편과 둘이 남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또 직장을 이미 7년 전에 사직하고 후배의 회사에서 명칭만 전무로 있는 친구는 30대 중반 모 국회의장의 수행 비서를 할 때가 가장 행복했고 그립다고 했다. 나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을까? 인터넷에서 실시된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니 주로 젊은층이 대답해서 인지 답변이 다양했다. 유치원 때, 18세 때, 오래 살아 봐야 알 것 같다 등등. 영국의 유력지 텔리그라프는 영국인들이 75세 때가 가장 행복을 느끼는 나이라고 대답했다면서 이 나이는 경제적, 가정적 부담이 없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행복을 느끼는 나이는 국가 수준에 따라, 또 직종, 경제력에 따라 매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노후 보장 정책이 잘 돼 있는 나라에서는 부담이 없는 노년기가 직장이나 자식에 대한 부담을 모두 떨쳐버린 후라서 가장 행복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태까지 우리 부모들은 자식을 키우는 데 일생을 바쳤다. 학비를 대주는 것도 모자라 자식이 성인이 된 뒤에는 집까지 팔아 자식에게 올인했다. 의사 아들을 뒷바라지하고 노년기에 자식에게 버림받아 어렵고 외롭게 살아가는 분들도 적지 않다. 얼마나 영리하게 인생을 사냐에 따라 60세 이후 인생의 행복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나 이제는 부모들도 자신을 챙기는 방법을 알게 됐고 노후 준비들을 착실히 하고 있다. 지금 90세를 바라보는, 65세에 대학교수를 정년퇴직 한 분이 언젠가 통증 때문에 필자를 찾아와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나는 정년퇴직 뒤 나머지 인생은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경제적 여유도 있고…. 70을 넘기면서는 병치레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덤으로 산다던 세월이 벌써 25년이 지났습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열심히 건강도 챙기고 노년을 위해 운동이라는 보험도 들고 싶습니다. 나처럼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보면 겉만 멀쩡했지 신체의 부품들은 모두 고장 난 것이나 다름없어요. 온몸의 통증을 물론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생의 질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게 건강한 신체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 기준으로 볼 때 65세 사람이 90세까지 살 확률이 70%가 넘는다고 한다. 몸에 통증이 있는 것을 나이 탓으로 돌리고 살기에는 너무도 긴 세월이다. 우리의 신체는 노화의 길을 걷고 있지만 노구도 운동을 하면 노화가 늦춰지면서 나이보다 젊게 살 수 있다. 미국의 부상 방지 클리닉에서 만난 90, 85, 82, 80세 네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 번씩 골프를 치시는데, ‘무엇이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공을 칠 때 거리가 안 나가는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이 분들은 60세쯤부터 운동치료 클리닉과 골프 부상방지 클리닉에서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신 분들이었다. 골프장에서 나란히 티샷을 하고 전동 카트 없이 걸어가는 모습들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그래서, 필자 역시 이 글을 쓰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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