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드라마, 영화, 공연에서는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와 함께 ‘그 배우가 어떤 캐릭터를 맡느냐’도 관심사에 오른다. 멋있는 캐릭터, 악역, 비운의 주인공 등 캐릭터 종류 또한 다양하다. 그런데 이 다양한 캐릭터 중 오로지 한 캐릭터만 맡지 않고 여러 인물을 연기하는 경우들이 늘어 눈길을 끈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말할 것도 없이 유명한 사례다. ‘지킬앤하이드’는 유능한 의사이자 과학자인 헨리 지킬이 인간의 정신을 분리해 정신병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실험을 자신에게 가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정신이 선과 악으로 분열되고, 악으로만 가득 찬 제2의 인물 하이드가 지킬의 내면을 점점 차지해 간다. 선을 상징하는 지킬과 악을 나타내는 하이드가 벌이는 치열한 내면 대결은 흥미진진하다. 지킬의 모습으로 노래하다가 순간 하이드로 변모해 악의에 가득찬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은 경악을 준다. 9월 16일까지 대구 공연을 마친 뒤 대전, 부산, 수원, 성남, 인천, 진주, 고양에서 공연을 이어가는 ‘지킬앤하이드’에서 배우 윤영석과 양준모는 지킬과 하이드 역을 동시에 맡아 열연한다. 추격하는 적극녀가 가련한 여인으로 바뀌고 뮤지컬 ‘쌍화별곡’엔 요석공주와 선묘낭자를 동시에 연기하는 배우 정선아와 이진희가 있다. 쌍화별곡은 신라시대의 유명한 인물 원효와 의상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창작 뮤지컬이다.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인 원효와 의상에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쏠리지만 그에 못지않게 관객들을 사로잡는 이들이 요석공주와 선묘낭자다.
요석공주는 원효와 사랑에 빠지는 열정적인 여인, 선묘낭자는 의상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여인이다. 1막에서 요석공주로 등장하는 정선아와 이진희는 2막에선 선묘낭자로 등장해 색다른 매력을 드러낸다. 1인 2역을 동시에 연기하는 정선아는 “이번에 요석공주와 선묘낭자를 동시에 연기하면서 어떻게 연기해야 관객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데 둘 다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요석공주는 원효를 열심히 쫓아다니는 적극적인 여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놔줄 수 있는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인물이기도 하다. 선묘낭자는 청순하고 가련한 영혼이다. 요석공주가 파워풀하게 노래를 부른다면, 선묘낭자는 조용하고 청초하게 부르는 등 각각 개성이 뚜렷하다. 이 두 모습을 다 잘 표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쌍화별곡’은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9월 30일까지 공연된다. 꼭 1인 2역만 있는 건 아니다. 뮤지컬 ‘비지터’에서는 1인 3역까지 등장한다. ‘비지터’는 인적이 전혀 없는 산골의 외딴 집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늙은 부부와 절름발이 딸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느 날 산속에서 길을 잃은 사내가 돈 가방을 들고 하룻밤 묵기 위해 찾아오고 처음에 사내를 극진히 맞이하던 이들은 돈 가방을 부러워하며 자신들의 가난을 저주하다가 사내를 죽이고 만다. 하지만 돈 가방을 들고 도시로 도망치려고 하는 그들 앞에 사내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렌트’ ‘남한산성’ ‘스프링 어웨이크닝’ ‘넥스트 투 노멀’ 등에서 폭발적인 가창력과 훈훈한 외모로 많은 여성 팬들의 사랑을 받은 배우 최재림은 이 공연에서 1인 3역을 연기한다. 중후한 손님, 거친 사냥꾼은 물론이고 익살맞은 술집주인까지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 변신을 통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다소 정신없어 보일 수도 있는 1인 3역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비지터’는 9월 28일까지 아리랑아트홀에서 공연된다. 여자의 변신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에서도 배우들의 다양한 연기 변신을 빛을 발한다. ‘비지터’에서 남자 배우의 연기 변신이 부각된다면 ‘형제는 용감했다’는 히로인에 눈길이 쏠린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 난 형제 이석봉과 이주봉이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고향집 안동으로 내려온 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미모의 여인 오로라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여기서 주목되는 건 형제간의 싸움에 끼어들게 되는 두 여자 즉, 묘령의 여인 오로라와 석봉과 주봉의 어머니다. 1막에선 오로라가 우선 등장한다. 오로라는 두 형제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이면서도 다소 4차원적인 모습으로 표현돼 웃음을 자아낸다. 2막엔 석봉과 주봉 어머니의 따듯하고 훈훈한 사랑이 그려지며 감동을 전해준다. 이렇게 서로 색이 다른 두 캐릭터를 배우 이주원과 강지원이 넘나들며 연기해 색다른 반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코엑스아티움 현대아트홀에서 10월 1일까지 막을 올린다. 이제 한 가지 캐릭터 뿐 아니라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며 반전 매력을 주는 배우들의 연기가 더욱 공연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이 넓혀가는 연기의 영역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해본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