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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의사 자신이라면 받지 않을 항암 치료를 왜 환자에게 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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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3호 박현준⁄ 2012.09.24 11:39:50

최근 일본에서 한 의사가 “호흡기를 떼지 못할 정도로 심한 환자나, 의식이 없으면서 식사도 호스를 통해서 주입해야 하는 환자들을 편하게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호스로 주입하는 음식을 줄여 나가는 방법을 써서라도 일찍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 좋다는 내용을 실은 서적을 출간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책은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50만부가 팔려 나갔다고 한다. 그는 또 이 책에서 암 말기 환자에게 신체 통증을 막으려고 마약까지 써가면서 일시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화학 요법을 하는 것은 편안하게 죽을 권리를 빼앗는 것이라고 주장 하고 있다. 나도 이런 의견에 전반적으로 동의는 하나 일부러 음식까지 제한하면서 생명을 단축시키자는 데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보다는 효과 없이 고통만 가중시키는 치료를 재고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의학의 발전이 일부 암환자에게 크나큰 도움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진단 기술의 발달로 각종 암의 조기 발견이 가능해지면서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크게 줄였고, 과거에는 진단을 받으면 6개월 후 사망한다던 간암도 치료, 간 이식을 통해 10여년 이상 정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또 대장암, 유방암, 위암, 갑상선암 등의 예후도 놀랄 만큼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밖의 대부분의 암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나는 대학병원에 근무하면서 많은 암환자들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전에도 한 번 소개했지만 췌장암에 걸린 선배 의사가 있었다. 온갖 치료를 다 받다 돌아가셨는데 지금 같으면 그 분에게 그런 치료는 받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했을 것이다. 몇 개월 더 살 치료를 받다 몇 달 일찍 가다니… 나중에 그 선배의 담당의사에게 “만일 치료가 잘됐더라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몇 개월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수술 후유증으로 오히려 몇 달 일찍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도 않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했다니…. 물론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병마에서 벋어나려고 노력하며,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담당 의사는 필요 없이 고통만 주는 치료는 권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최근 폐암으로 두 차례에 걸쳐 화학 요법을 받았으나 별 차도가 없어서 3차 치료를 권유 받은 환자가 나에게 부탁해 왔다. 주치 의사에게 치료의 효과와 여부를 재확인 했는데 “치료를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된다”는 대답이었다. 이 말은 치료를 해도 별로 효과가 없다는 뜻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애초에 왜 의사는 환자에게 그 치료를 권했을까? 이와 같이 치료 효과를 거의 장담 못 하는데도 치료를 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면 고려해 볼만도 하지만 몇 개월을 더 살자고 그 어려운 화학 요법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몇 달 더 산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최선을 다 한다’와 ‘한번 해 본다’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환자가 고통 없이 더 살 수 있는가를 찾아보고 의사 자신이 당했을 때를 염두에 두면서 치료 방법과 여부를 권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의 ‘의사이시고 또 박사’에 미국인이 놀라는 이유 교수직이라 함은 전임 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까지 전임 직을 지칭하며, 각 단계를 거쳐서 정교수가 되면 정년 나이까지 교수직이 보장된다. 그러나 모두 정교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교육, 연구 그리고 의과대학에서는 (임상과의 경우) 진료에 대한 공헌도를 보고 다음 단계로의 진급 여부가 결정된다. 내가 전임강사로 교수직 생활을 시작할 때 우리 대학의 진급 규정은 대체로 전임강사 2년 이면 조교수로, 조교수 3년이면 부교수로 그 후 5년쯤 지나면 정교수가 되는 것이 상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진급하는 데 필수 조건은 박사학위였다. 아무리 다른 조건이 좋아도 박사 학위가 없다면 진급은 생각도 못했다. 우리나라는 “의사면 모두 박사님”이라고 불렸고 개원의가 박사라고 해야 병원도 잘되기 때문에 모두들 박사학위를 따곤 했다. 박사라는 말은 중국 진나라에서 처음 기술됐다고 하는데 사전에서 보면 그 정의가 두 가지로 나와 있다. 하나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규정된 절차를 통과한 자에게 수여하는 학위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일에 능숙하거나 숙달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박사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을 말하는 단어로 인식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박사는 극히 단편적인 것을 소재로 연구한 결과에 주어진 학위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기초 연구를 하는 의사가 아니면 박사 학위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임상적으로 환자를 보는 데 박사 학위가 필요 없다는 뜻이다, 내가 미국에 가서 명함을 내보이면 대부분의 미국 의사들은 놀란다. 내가 환자를 보는 의사인데 기초학 연구에도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의무 부총장이 바뀔 때마다 진급규정이 바뀌는데 한번은 외부병원에 나가서 일을 한 실적이 있으면 가산점을 주면서 또한 본원을 비운 경우에는 진급 심사에서 감점이 주어졌다. 본원을 비우지 않고 어떻게 다른 병원에서 파견 근무가 가능하단 말인가. 이런 규정으로 미운 사람에게는 감점을, 예쁜(?) 사람에게는 가산점을 주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환자를 보는 의사가 웬 박사학위? 그리고 내가 부교수로 진급할 시점이 됐을 때 5 대 5(전임강사, 조교수 대 부교수, 교수의 비례)라는 규정이 새로 생겼다. 시니어교수(부교수 이상)가 너무 많으니 시니어 교수가 조교수 이하보다 적어야 진급이 된다는 이론이었다. 문제는 편법이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는데 약삭빠른 사람은 강남으로 적을 옮겼다가 진급 후에 다시 본원으로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또한 대학의 직책을 맡았던 사람은 바로 진급이 됐으니 그야말로 웃지도 못할 해프닝(?)이었다. 우리 과는 시니어 교수가 많아서 나는 부교수로 진급하는 데 8년이나 걸렸다. 진급이 늦게 된다고 안타까울 것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 없이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 문제다. 열심히 일해온 의사들에게는 환자를 열심히 볼 의욕마저 잃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부교수가 된 뒤의 일인데 교수회의에서 진급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지금의 규정은 불합리하다. 우리 학교만 이런 제도를 둔다면 대외 활동에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여기 계신 선배 교수님 중 일부는 과거에 진급이 1년만 늦어도 학장에게 항의 하고 심지어는 병원에 나오지 않은 분도 계셨던 것으로 아는데 후배들에게 갑자기 이렇게 적용해도 되는가? 그것도 공평하지도 않게…”라며 공정한 규정의 마련을 요구했다. 이때 내 의견에 동조했던 우리 후배들이 이제 행정직을 맡고 있는데 지금도 완전히 공정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인사 위원회에 교수 평의원이 3명이나 참가해 때로는 투표로 결정하는 방법의 문제점, 과에 따라서는 꼭 필요하다고 볼 수 없는 박사 제도의 재고, 환자를 보는 기여도, 연구 논문에 관한 규정 등이 폭넓게 연구돼서 객관적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진급 규정이 마련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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