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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환, 우주의 심연을 생명의 노래로 담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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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4-295호 왕진오⁄ 2012.10.04 10:50:47

화면 가득 채워진 색상은 마치 저 깊은 바다 속을 여행하면서 채집한 듯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을 띠고 있다. 그렇지만 낯선 공간이 아니라 생명을 담고 있는 듯 따스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40여 년 여행의 궤적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그의 그림에는 별 빛도 들어 있고, 미지의 생명체도 흐드러져 있다. 우주의 생명을 담아놓은 것이다. 육안으로 본 대상은 아니지만, 허블 망원경이라는 기계적 장치를 통해 바라본 대기권 너머의 세상을 그만의 시각으로 그려냈다. 오경환의 화면에 담긴 하늘은 남미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보았던 생생한 별자리들의 집합체라고 한다. 수많은 화가들이 다양한 대상을 그리고 화면을 채우는 가운데 우주라는 대상을 40여 년간 그리고 있는 작가는 지구상에 오경환 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느 화가들이 소재로서 우주를 다루었지만, 이 심연의 우주를 주된 주제로 꾸준히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우주란 무엇일까. “예술가란 보이는 대상에 그 하나 이상을 보태야 하는 것 같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우주의 세상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특징으로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술이란 장르로 어느 누구를 속박하지 않고 우주적 존재로 보아야 한다며, 그래야 종교나 민족적 갈등도 없어지게 될 것 같다”는 말에 실마리가 있나?

화면에 담아낸 원시와 순수의 추상 물결 도교와 불교의 철학적 성찰에 조예가 깊은 그는 사람들이 무(無)로부터 왔고, 그들 스스로 이 행성에 ‘지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 속 어둡고 깊은 공간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인천에서 작업한 그의 우주 그림은 이전보다 경쾌하고 매력적이다. 형식에 있어서 굳이 추상성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형상과 상징들을 섞어가며, 자유로이 유희하듯 화면을 배치하거나 조합한다. 그 소소한 재미가 우주에 관한 보편적인 상상과 관념을 뛰어넘어 아이의 장난처럼 우리의 시지각을 자극한다. 어떤 분야에 연륜이 쌓인 자의 색다른 재치 같으며, 피카소의 늦은 조형적 장난 같은 재치들이다. 그 동안 그의 우주 그림은 매우 관념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무거웠고, 심각했고, 철학적이었다. 지금은 이러한 관념의 무게를 벗어버린 유희의 자유로운 본능 같은 것이 보인다. 오 작가는 “예술가의 창작, 상상력으로 다양한 실험을 한 괴테의 글 같은 것을 전시장에 선보이려 한다”며 “‘저 우주의 심연 속을 떠돌고 싶다’(괴테 중)던 철학자의 말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펼쳐놓는 작품들은 40여 년 동안 그가 걸어온 흔적을 한 자리에 조망하게 한다. 에로틱한 드로잉 작품과 문자 조형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려온 우주 그림을 함께 선을 보이기 때문이다. 오 작가는 “생명이란 본질을 갖고 작품에 담아내는 것”이라며 “본질적인 생명을 다루는 것이자, 무엇인지 잘 모르는 궁극의 본질적 통로로 귀결되는 것의 표현 같다”고 했다. 생명에 대한 외경의 감성으로 무생물에 대한 감성도 강렬히 그려보고 싶었다는 소리다. 그는 스스로 개척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칠순의 나이가 된 지금도 꾸준히 여행을 준비한다. 새로운 세상과 새로움에 대한 진정한 탐구자로 남고 싶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에게 여행의 중요성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에 미지의 여행, 우주 그 심연의 세계를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담아내려는 노력이다. 화가 오경환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마르세이유 미술대학을 수료했다. 동국대학교 교수와 예술대학장을 역임한 후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예술 종합학교 미술원 초대원장을 역임했다. 1962, 74년 국전 입선 및 특선을 수상하였고 1996년 대통령표창과 2006년 대한민국 황조근조 훈장을 수여 받았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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