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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Kim의 골프세상만사]골프 전야엔 구도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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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09호 박현준⁄ 2013.01.14 13:38:19

‘바다에 나갈 때는 한번 기도하고, 전쟁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정신무장부터 잘해야 한단 뜻이리라. 내가 바다에 나가거나 결혼을 했을 때, 기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라운드를 앞두고는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신부님이 미사집전에 앞서 제구를 정성스럽게 닦듯 우선 나도 칫솔과 카메라렌즈 세척용 융단으로 쇳덩이를 잘 닦는다. 이를테면 부족한 것을 쉽게 찾기 힘든 미모의 여배우가 무대나 카메라 앞에 나서기 전에 지극정성으로 얼굴 화장을 고치고 또 고치는 것과 같은 심정이 되는지도 모른다. 내게 라운드 전야는 늘 장비를 매만지는 점검과 함께 묘한 상념에 젖는 시간이 된다.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유난히 떠올리는 것이 골프 전야다. 1990년 초가을에 이른바 머리를 올렸는데, 그날 나는 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을 당황케 했다. ‘메기’ 이상운 등 개그맨들과의 동반이었기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라운드였지만, 난 18홀을 다 돈 후에 뻐꾸기와 다람쥐가 흉을 보건말건 나무 뒤에 기대고 기어이 눈물을 찔끔거렸던 것이다.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 떠난 형이 생각났던 것이다. 형은 가히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해본 탐험가에 모험가였다. ‘이 좋은 걸 못하고 서둘러 가다니! 아, 불쌍한 우리 형!’ 그 첫 라운드 전날 밤은 더했다. 거사를 앞둔 혁명가나 초야 맞는 옛날 새색시 이상으로 안절부절 하지 못한 채 밤을 꼬박 새웠던 걸로 기억된다. 머릿속에 뭔가 아주 중요한 생각들이 마구 들어왔다 나갔다 했고, 이런 저런 생각들이 무질서하게 섞이고, 부딪치고... 끝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빠진 품목이 없나 수도 없이 가방을 풀었다 쌌다 했더니 새벽이었다. 이미 20년도 더 된 세월이 흘렀다. 골프에 임하는 자세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 잠도 푹 자고 때로는 이글이나 프로들도 힘든 긴 ‘제주도 퍼팅’을 성공시키는 꿈까지 꾼다. 하지만 소풍 전날의 소년처럼 들뜨는 건 여전하다. 다만, 다른 일도 그렇듯 골프를 앞두고 허둥대지 않고 진정시킬 줄은 알게 되었다. 사람은 감정과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서 영험하다지 않은가. 그렇다면 적어도 골프 전날엔 해야 할 일과 지닐 기분을 다른 날과는 좀 다르게 가져야 그 중요한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릴 것이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주 골프라운드를 갖지 못할 것이다. 어쩌다가, 모처럼, 실로 어렵게 하는 이 ‘중요한 일’을 망쳐서야 되겠는가. 절대 진지한 기도가 필요하다. 술 마시고 교회나 절에 안 가는 것처럼 전날은 꼭 금주를 해야 할 일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은 라운드 뒤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 몸뿐만 아니라 머리도 가뿐하게 유지해야 한다. 왜 나쁜 스코어를 날씨, 장비, 동반자 심지어 캐디 탓으로 돌리는가. 전날 밤에 잘 치겠다는 정신수도가 덜 된 것은 왜 생각지 않는가 말이다. 한 때 국내선 적수가 없었던 최상호 선수는 대회 전날 밤에는 꼭 퍼터를 가슴에 안고 잠을 잤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탁월한 실력은 골프를 경건하게 대하는 구도자적 자세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요즘에도 골프 전야엔 7번 아이언 하나로 석 달씩이나 부지런히 연습을 하시고도 필드는 나가보지 못하신 채 인생을 마감하신 아버지를 생각하고 앞서의 형에 대한 추모를 다시 한다. 내게 골프는 효심과 가족애가 깊어지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이런 오묘한 걸 맘껏 할 수 있는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또 있을까? - 김재화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장 (골프작가·언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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