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미국의 골프전문잡지 <골프 다이제스트>가 홀인원의 확률을 발표한 적이 있다. 투어 대회에 출전하는 프로골퍼의 홀인원 확률은 3000분의1, 싱글핸디캡 골퍼는 5000분의1, 보통 골퍼는 1만2000분의1이었다. 그런 확률의 홀인원이 명절이나 생일, 그것도 아내의 생일이나 되어야 간신히 골프라운드를 하는 골퍼에게 일어났다. 그 골퍼가 본인 생일은 차치하고, 아내 생일에 꼭 골프라운드를 해야 하는 까닭은 골프광인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받고 싶은 최고의 생일선물을 ‘부부동반 골프라운드’로 치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골프로부터 멀어져 살았다. 한때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잔디를 밟아주던 싱글핸디캡 골퍼였으나, 골프 구력 20년을 넘기면서부터 골프채보다 카메라를 더 예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주변인들은 요즈음의 그에게 골퍼보다는 사진작가가 더 잘 어울린다고 한다. 정월 초하루, 속초에 있는 콘도로 향할 당시만 해도 골프라운드를 할 수 있을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기온은 영하 10도, 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여정에 놓인 산야는 두꺼운 잔설에 짓눌려 있었고, 페어웨이는 차라리 사진 찍기에 아주 적합한 아름다운 눈천지에다, 그린은 퍼트하기에 최악인 얼음천지겠지 했다. 클럽하우스에 도착했다. 물론 예약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티오프 시각을 받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앞과 뒤 조도 없다. 타인과 조인라운드를 예상했는데 아내와 둘 뿐이다. 날씨는 예상외로 너무 좋았다. 바람도 세지 않았고, 투명한 비닐로 포장을 쳐서 외기를 막은 카트 안에는 부탄가스로 피우는 조그만 난로까지 있어서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드디어 7번홀, 158미터, 설악산의 전경에 둘러싸여있는 홀이다. 제법 가파른 내리막에 좌측이 높은 그린이 보인다. 따라서 그린의 중앙보다는 좌측 공략이 현명할 듯 싶다. 그는 전 홀에서 눈 더미 속에 공을 처넣고 왔기에 아내의 공을 잠깐 빌렸다. 연습장에서 두어 번 드라이버와 어프로치 연습을 하고 그것도 몇 달 만에 라운드에 나섰으니, 공더러 멀리 반듯하게 날아가라고 욕심 사나운 명령을 내릴 수도 없다.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팔을 휘둘렀다. 파란 공이 날아간다. 그린에 못 미쳐서 낙하한다. 공은 그린에 뛰어올라 굴러간다. 그린을 벗어나 뒤편으로 넘어갈 것 같다. 어라, 그런데 홀컵에 꽂힌 깃대를 건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린 위를 굴러가던 공이 연기처럼 펑 꺼졌다. 이어 홀컵 바닥에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귓바퀴를 울렸다. 홀인원이다.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날이면 날마다 기도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늘 착한 일만 해왔고, 기도 또한 간절해서 하느님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한 달쯤 아니 더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이 들려왔다. “이 녀석아, 네가 복권 사는 날을 기다리다가 내가 늙어죽겠다. 복권을 사야 당첨을 시켜주든지 말든지 하지” 홀인원을 하면 3년 운수대통이라고 한다. 복권을 사고 당첨을 원해야 하듯이 라운드에 임해야 운수대통 홀인원을 만날 것 아닌가. 라운드 횟수만큼, 핸디캡 서열만큼 홀인원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프로골퍼의 3000분의1이란 확률은 1년에 200라운드를 하면 15년을 주기로 홀인원의 행운을 잡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주일에 두 번 라운드를 하는 보통 골퍼에게는 120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선물이 되고, 싱글핸디캡 골퍼가 일주일에 두 번씩 라운드를 하면 50년 만에 운수대통이 찾아온다. 하지만 사실은 그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사연이 있었다. 그의 홀인원을 간절하게 바랐던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였다. 그의 아내는 골프를 잊어버리고 황량한 광야를 헤매는 길 잃은 어린양을 ‘골프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해 날마다 하느님께 기도했다. 홀인원만이 그를 다시 골프의 세계로 돌아오게 한다고 믿었기에. - 김영두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