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여러 불편한 진실이 있다. 그 중 가장 마주하기 힘든 것이 성(性)과 관련된 것이다. 각종 성 범죄는 눈을 찌푸리게 만들고, 사람들의 비난을 격하게 받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쉬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 가운데 문화계가 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대놓고 꼬집기 시작했다. 영화 ‘노리개’와 뮤지컬 ‘드랙퀸’은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내며 부조리한 현실에 일침을 놓는다. ‘노리개’는 연예인 성 접대 문제를 다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0년 조사한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연기자의 45.3%가 술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었고, 60.2%는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 인사에 대한 성 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저런 추측과 루머만 무성할 뿐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연예인 성 접대 문제는 2009년 배우 장자연이 자살하면서 사회에 파장을 불러왔다. 당시 고인이 죽기 전 남긴 문건에 룸살롱 술 접대와 성 상납을 강요받은 내용이 담겨 있어 논란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장자연 사건은 조용히 묻혀 갔고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이런 가운데 3년이 지나고 모습을 드러낸 ‘노리개’는 장자연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알려져 개봉도 하기 전부터 화제를 불러 모았다. 또한 다시금 연예인 성 접대 문제에 대한 화두를 올려놓았다. ‘노리개’에서는 극 중 정지희라는 신인 여배우가 장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밝히겠다는 열정 하나로 검찰에서도 건드리지 못하는 사건을 파헤치는 열혈기자 이장호(마동석 분)는 신인 여배우 정지희(민지현 분)가 자살하기 전 소속사 대표에게 보낸 이메일 사본을 익명의 우편으로 받는다. 이장호는 정지희의 죽음에 성 접대 문제가 연관돼 있다는 것을 알고 진실을 밝히려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상대는 신문사 대표와 연예인 소속사 대표로 정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리하게 흘러간다. 나중에는 법정에서 판사까지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극 중 성 접대에 희생당하는 정지희를 연기하는 민지현은 “영화를 보고나서 마음이 너무 짠하고 아팠다. 특히 ‘정지희’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많이 아팠다”며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이제야 이런 사건에 대해 시나리오가 제대로 나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자신 또한 연예계에 종사하는 몸으로서 느낀 점에 대해서는 “장자연 사건이 일어나고 계속 이슈화가 될 때도 기사를 검색해보지 않았다. 연예계에 그런 사건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가슴 아픈 일인데 굳니 더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메가폰을 잡은 최승호 감독은 “이런 소재의 영화를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다가 시간이 갈수록 무게감이 커졌다”며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법 상식과 실제로 적용되는 법 사이의 괴리감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회의 부조리한 부분에 대해 다루고자 했다”고 영화를 만든 이유에 대해 밝혔다. 또한 “이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만난 많은 여자 연예인들은 실제로 이런 추악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했다. 누군가는 그녀들의 어두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아야만 했다”며 “이 영화를 통해 스포라이트 이면에 깊게 드리워진 연예계의 어두운 그림자를 인지시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리개’는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연예인 성 접대 문제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 ‘노리개’ ‘드랙퀸’은 성 소수자들 이야기를 풀어내 ‘드랙퀸’은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뮤지컬이다. 드랙퀸은 화려한 여성복장을 하고 음악과 댄스, 립싱크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로, 현재는 유미주의(아름다움을 예술의 근원으로 삼는 것)를 지향하는 성전환 이전의 남자 성소수자들을 의미하는 단어다.
몸은 남자이지만 여자의 마음을 지닌 ‘드랙퀸 시스터즈’ 멤버들. 클럽의 사장이자 우아하면서 지성미를 겸비한 프로 드랙퀸 오마담과 클럽 클랙로즈의 에이스 지화자, 최고의 퀸카 소희 그리고 4차원 매력의 새내기 드랙퀸 에밀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클럽 블랙로즈에 모였다. 그런데 이들에게 동성애 혐오주의자인 폭력조직 NO.2인 홍사장이 찾아온다. 처음엔 불협화음이 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이해하게 된다. 특히 ‘드랙퀸’은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가 출연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2001년 화장품 CF로 데뷔한 하리수는 당시 뛰어난 외모와 더불어 트랜스젠더라는 것이 알려져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하리수는 극 중 드랙퀸 시스터즈 멤버들을 이끄는 오마담을 연기한다. 영화, 드라마에는 출연한 바 있으나 뮤지컬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리수는 ‘드랙퀸’ 시나리오를 받고 바로 두 시간 만에 출연을 허락했을 만큼 이 작품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리수는 “실제로 연예계에 데뷔하기 전 쇼무대에 섰던 과거 나와 같은 이야기에 끌렸다”고 작품 선택 이유를 밝혔다. “오마담은 사랑에 지고지순한 인물이고,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랑스럽고 강한 여자예요. 마치 저 같아요. 극 중 노래를 부를 때 눈물을 많이 흘리는데 이 눈물은 제 과거가 생각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기쁨의 의미도 포함돼 있어요. 제가 데뷔하면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듯이 이 공연을 하면서 또 다른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리수는 “나 역시 살아오면서 많은 편견과 불평등을 겪어 왔지만 다른 트랜스젠더 분들도 많이 힘들 것”이라며 “참고 견디다보면 더 많은 친구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게 내게 주어진 것 같다”고 성 소수자를 위해 계속 활동할 것을 밝혔다. 사회가 많이 개방적이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성 소수자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존재한다. 성 소수자들을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으로 여기는 이 시선들에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드랙퀸’의 행보에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드랙퀸’은 대학로 SH아트홀에서 6월 2일까지 공연된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