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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기 문화 칼럼]한여름 밤의 꿈 ‘죽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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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37-338호 박현준⁄ 2013.08.05 13:38:31

무더운 한 여름 밤에 죽부인을 끼고 삼베 홑이불을 덮고 잘 양이면 복더위도 시원해서 피해간다. 한여름의 무더위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이것을 식히는 피서법은 사뭇 달라졌다. 오늘날에는 차단된 밀폐공간에서 기계의 도움으로 더위를 다스리고자 하는 반면에, 옛 선인들은 자연의 숨결 속에서 더위와 더불어 하면서도 그 가운데서 서늘함을 얻었다. 바깥의 불볕 더위를 막고 바람을 불러들이는 ‘대발’을 대청이나 방문에 치고 바람이 위 아래로 통하는 ‘평상’위에 왕골로 엮은 ‘꽃돗자리’를 깔고, 신선한 자연풍을 실어오는 ‘부채’를 부치면서 그 가운데서 더위를 다스리고자 했던 우리 조상들과 여름의 옛 풍물들은 자연과 담을 쌓은 오늘의 그것보다 휠씬 더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는가 한다. 우리 나라 사람이 죽부인을 사용해 온지는 상당히 오래 됐다. 고려 말의 학자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이 지은 ‘죽부인전(竹婦人傳)’도 있고,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도 ‘죽부인(竹夫人)’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대는 본래 장부에 비할 것이고 竹本丈夫比 참으로 아녀자의 이웃은 아니다 亮非兒女隣 어찌하여 침구로 만들어서 胡爲作寢具 억지로 부인이라 이름하였나 强名曰夫人 내 어깨와 다리를 안온하게 괴고 指我肩股穩 내 이불 속으로 친하게 들어온다 入我衾親親 눈썹과 나란하게 밥상 드는 일은 모하나 雖無擧案眉 다행히 사랑을 독차지하는 몸은 되었다 幸作專房身 조선말 이유원이 쑨 ‘임하필기(林下筆記)’에도 죽부인에 관한 것이 있는데, ‘더울 때에 상석간(狀席間)에 두고 수족(手足)을 쉰다. 그 가볍고 시원함을 취하는 것이다.’라 하고 그 기능을 풀이해 놓고 있다. 한여름의 낮 더위가 가시고 해가 산그늘에 진 다음 밤에 찾아들면 뜰에 모깃불을 지펴놓고 무더운 여름밤의 잠을 청하게 되는데 이때 벗이 되는 것이 ‘죽부인(竹婦人)’이다. 대오리를 매끈하게 다듬어 거의 사람의 키만큼 길게 둥글데 얼기설기 엮어 만든 침구가 바로 죽부인이다. 남정네들이 잠자리에서 품에 끼고 자던 죽부인은 부피가 안아서 반 아름이 되고 부인을 대신해서 함께 잔다 하여 죽부인이라 불렀다. 그래서 아버지가 쓰던 죽부인은 아들에게 물리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속이 비어 있어 공기가 잘 통하고, 또 대나무 표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을 이용하여 만든 죽부인을, 여름에 홑이불 속에 넣고 자면 상쾌한 잠자리를 누릴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의 오랜 생활 경험에서 터득한 여름나기 풍물들은 속을 비게 만들어서 여유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공기가 대류(對流)를 일으켜서 자연 선풍으로 시원함을 구했던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무동력의 피서도구였다. 이렇듯 옛날의 피서법은 자연의 숨결 속에서 그 생명력을 되돌려 받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더위를 다스렸다. -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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