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민은 가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의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아냐, 이게 아닌데 왜 난 자꾸만 친구의 여자가 좋을까”로 시작했던 노래 ‘흔들린 우정’을 떠올린다. 가수로서 최고 인기를 얻은 그는 2000년 KBS 가요대상 청소년부문 인기상, SBS 가요대전 인기상, KMTV 가요대전 본상,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본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화려한 수상 이력에 2006년 하나 더 추가된다. 영화 ‘과속스캔들’, 드라마 ‘사랑하는 사람아’ 등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홍경민은 MBC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특별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능력 또한 드러냈다. 그리고 2013년 또 하나의 타이틀이 붙었다. 이젠 당당한 ‘뮤지컬 배우’로서 7월 26일부터 9월 1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 ‘미스터 온조’ 무대에 오른다. 한창 뮤지컬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홍경민을 7월 1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살롱 드 파이브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스터 온조’는 고구려 주몽의 세 번째 아들이자 새로운 나라 백제의 건국 운명을 지닌 청년 온조가 천명의 열쇠를 지닌 달꽃무리를 만나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홍경민은 극 중 온조 역으로 열연한다. 온조는 강경한 왕이 되길 바라는 어머니와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여인 달꽃무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갈등하는 인물이다. 홍경민이 생각하는 온조는 무력으로 사람들을 누르기보다 모두를 포용하고 감싸 안으려는 인물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하는 작품이라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물론 새로운 상상을 보탠 픽션이긴 하지만 역사적인 인물을 연기해볼 수 있다는 점에 끌렸죠. 전 카리스마 넘치고 멋있는 캐릭터가 부담스러워요. 그런데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온조라는 인물이 인간적이고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더 연기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우연찮게 시작한 뮤지컬, 그 매력에 푹 빠져 무대에서 마초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것과 달리 그는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다가도 뜬금없이 아주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보이는 그의 다채로운 모습은 20대의 온조 역할을 맡기에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 생활을 하는 동안 홍경민에게는 유독 20대 역할이 많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온조가 20대 초중반으로 나오긴 하지만 그만의 노련함으로 너무 어리지도 그렇다고 너무 노숙하지도 않은 온조를 표현하겠다는 포부이다. 홍경민은 “TV 화면이라면 주름이 세세하게 잡힐텐데 다행이다”라며 능청스레 웃어보였다. ‘미스터 온조’ 뿐 아니라 유독 올해 들어서 홍경민에겐 뮤지컬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앞서 올해 초에 ‘남자가 사랑할 때’에 출연했고, ‘미스터 온조’ 이후엔 9월 ‘사랑해 톤즈’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이렇게 뮤지컬 무대에 많이 오르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그는 담담하게 털어놨다. “뮤지컬은 정말 우연찮게 시작했어요. 처음 뮤지컬 제의를 받았을 때는 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어요. 그 전까지는 상상해본 적도 없거든요. 그러다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막연히 시작했는데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진 거죠. 뮤지컬은 연기와 노래 그리고 춤 3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져야 해요.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준비해서 2시간 여 시간 안에 라이브로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그런 점이 제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줬어요.” 특히 창작 뮤지컬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그가 도전한 대부분의 뮤지컬들은 창작 뮤지컬이었다. ‘창작 뮤지컬 전문 배우’라는 호칭이 붙을 정도로 창작 뮤지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홍경민은 앞서 7월 2일 열린 ‘미스터 온조’ 제작발표회에서도 “꼭 창작 뮤지컬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할 생각이 있다. 하지만 창작 뮤지컬을 할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함과 자부심, 보람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그는 “창작 뮤지컬은 창작이다 보니 참신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며 “우리나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와 정서를 담고 있다”고 답했다. 그래서 무엇보다 관객이 ‘미스터 온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백제 건국 이야기라 해서 어려운 역사 이야기를 다루는 게 아니라 조화와 상생이 어우러지는 온조와 달꽃무리의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사랑’이라는 정서가 공감을 준다는 것.
‘사랑’이라는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관객 만나 “사랑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미스터 온조’가 한국 관객 뿐 아니라 해외 관객들에게도 공감을 줄 거라고 봐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가 나라에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듯이 각 문화에 맞물려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이런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도 충분히 세계에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라이선스 공연이 뮤지컬 시장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시점에서 창작 뮤지컬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뮤지컬계에서는 스타 마케팅을 활용할 때가 많다. 팬 층이 두터운 아이돌 가수나 티켓 파워가 확실한 배우들을 주역으로 세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미스터 온조’에 같이 출연하는 배우 이기동도 “우리 공연엔 조승우가 없다. 몇 분 만에 공연 티켓이 다 매진될 정도로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가 없다”며 “라이선스 공연들에 비하면 아직 턱없이 부족한 배우, 금액, 무대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제 시작한 첫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모두 노력하고 있으니 힘을 전해주길 바란다”고 짚은 바 있다. 이 발언에 대해 홍경민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또한 스타의 반열에 있는 입장으로서 조금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을까. 홍경민은 바로 손을 내둘렀다. “전혀 자존심 상할 문제가 아니에요. 티켓 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배우들이 많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죠. 워낙 유명한 조승우 씨라든가 가요계 후배인 김준수 씨처럼 말이죠. 오히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제가 더 성장해 우리 공연 팀에게 더 많은 보탬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담됐냐고요? 아니에요. 뮤지컬이라는 건 다 같이 만들어가는 작품이에요. 한 명의 배우 때문에 공연이 이뤄지고 좌절되는 건 잘못된 문화라고 봐요. 또 성공한 공연들이 꼭 배우들의 역량 그 하나에만 의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자체도 좋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 건 아닐까요? 예를 들어 조승우 씨도 배우로서 뛰어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지킬앤하이드’ 작품 자체가 지닌 힘도 있는 것처럼요.” 뮤지컬은 스타 한 명이 아닌 전체가 힘을 내는 작업 그의 말인즉슨 뮤지컬은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그래서 ‘미스터 온조’에 함께 하고 있는 가수 후배들에게도 이런 점을 가르쳐주고 있다. 쥬얼리의 박세미와 익사이트의 민후 또한 뮤지컬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수들의 뮤지컬 진출이 활발한 현 시점에서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으로 함께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중이다. “가수 후배들이 뮤지컬에 도전하려 하는 것을 좋게 봐요. 무대를 많이 겪어봤기에 얼마든지 선배 배우들에게 배우며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대신 후배들도 다른 배우들과의 공동 작업에 열심히 임하고 또 잘 해야죠. 요즘엔 가수들이 뮤지컬 무대에 서는 걸 무조건적인 편견으로 배척하는 경우는 못 봤어요. 관객들의 마음도 그만큼 열린 거죠. 또 어떤 배우 한 분이 샤이니의 온유 씨를 칭찬하는데 아쉽게도 뮤지컬은 못 봤지만 같은 가수로서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열심히 하는 가수들이 많아요. 좋게 봐주길 바랍니다.” 선입견을 이겨내는 건 노력이고, 또 노력해서 성장하는 배우가 돼 공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이젠 정말 ‘뮤지컬인’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보인다. 물론 무대에 서게 해준 원동력인 팬들에 대한 사랑은 잊지 않는다. 인터뷰 말미 꼭 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묻자 바로 팬들 이야기를 꺼냈다. “올해는 뮤지컬을 많이 하게 됐어요. 즉 무대에서 직접 팬 분들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거죠. 방송을 통해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저 스스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할 테니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홍경민은 ‘미스터 온조’ 연습실로 향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관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는 그의 열연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빛을 발할지 기대된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