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헌법’을 ‘기업의 헌법’으로 바꿔치기한 미국 기업의 문제는 오직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의 기업들이 자국을 떠나자, 미국의 노동자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잃어버려 고통 받고 있으며, 그 기업들이 진출한 나라들에서는 그 나라 노동자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지금까지 국가 간에 체결된 다양한 협정을 통해 이제, 거대 기업들은 한 나라를 넘어서 전 세계의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유까지 누리게 됐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한 데이터에 의하면 미국 가구 중 상위 1%가 하위 95%보다 더 많은 부를 보유하고 있고, 미국 인구 중 가장 부유한 10%는 1976년 미국 부의 50%를 소유했으나 1997년에는 이 수치가 73%로 늘어났다. 또한 상위 10개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의 매출 총합이 세계 200대 기업의 매출 총합보다 적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차이가 1950년 35배에서 1992년 72배로 커졌는데,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미국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부의 편중 현상이 슈펭글러가 ‘서구의 몰락’에서 언급했던 봉건제의 징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경고한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미명하에 전 세계가 새로운 형태의 봉건제로 들어서는 암울한 미래가 우리 코앞에 닥쳐왔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이 모든 문제의 핵심에 ‘기업과 인간의 불평등한 법인격’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업의 법인격을 무효화하는 것이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되찾고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거대한 비전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 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