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행근 중국부자 이야기] 초졸 류이첸, 아트테크 귀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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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송행근 중국경제문화학자) 도대체 누가 샀을까? 1억 7040만 달러(1980억 원 상당)나 되는 모딜리아니의 걸작 ‘누워 있는 누드(Nu Couch´e)’를. 이 작품은 지난주 세계 미술품 경매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가격에 낙찰 되었다. 이 금액은 올해 5월 1억 7936만 달러(약 2081억 원)에 낙찰된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싸다.
‘누워 있는 누드’의 소유자는 중국 억만장자 류이첸이다. 그는 “세계적 박물관들이 모딜리아니가 그린 누드화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 이제 중국 미술품 애호가들이 굳이 외국에 가지 않아도 중국 땅에서 훌륭한 예술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구매 동기를 밝혔다.
류이첸(刘益谦)은 현재 세계 문화예술계의 대표적인 파워 컬렉터다. 수억 명의 중국인들이 하루에 1.25달러(약 1460원)로 살아가는 냉혹한 현실에서 감히 상상도 못하는 미술품을 이미 여러 차례 구매했다. 최근 최고가를 기록한 중국 미술품 대부분을 그가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세기 송나라 왕조의 꽃병을 1470만 달러(한화 약 160억 8700만 원)에 샀으며,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명나라 성화제(成和帝, 1464∼1487) 때 제작된 8㎝에 불과한 술잔을 2억 8100만 홍콩달러(약 367억 원)에 낙찰 받았다. 또한 중국 명(明)나라 영락제(永樂帝) 12년(1414)년에 제작된 39장짜리 경전집을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400만 달러(약 157억 원)에,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명나라 시대 탕카(괘불)를 4500만 달러(약 500억 원)에 낙찰 받았다. 이외에 중국 화단을 대표하는 치바이스(齊白石)의 수묵화 ‘송백고립도(松柏高立圖)’를 베이징 경매에서 4억 2550만 위안(718억 원)에 구입해 중국 현대회화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370억짜리 잔에 술마시고
류이첸은 누구이고, 어떻게 해서 슈퍼리치가 되었을까? 그는 1963년 상하이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14세 때 중학교를 중퇴했다. 상하이선린전자엔지리어링(上海森林电子工程) 회사에서 일했으며, 80년대 중반에는 2년간 택시기사를 했다. 1980년에서 1983년까지 상하이 거리와 예원 등에서 여성용 가방 및 기념품을 팔며 근근이 생계를 이었다. 하지만 27세 때인 1990년 중국에 주식시장이 개설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그가 난생처음 예원상청(豫園商城) 100주를 주당 100위안에 산다. 그런데 1년 뒤 그 주식이 주당 1만 위안의 가격으로 100배 뛰면서 순식간에 1백만 위안을 벌고 부자 대열에 서게 된다. 그 후 사업에 눈을 떠 2000년에는 투자회사, 2004년에는 보험 사업에 진출해 톈핑자동차보험과 궈화생명보험을 설립했다.
▲367억 원에 낙찰받은 중국 명나라 시대의 계향배에 실제로 차를 따라 마시는 류이첸의 모습이 중국 언론에 보도됐다.
그는 현재 신리이그룹(新理益集团) 회장으로 금융 부호다. 현재 순자산은 포브스 기준 14억 5000만 달러 수준이다. 지난해 후룬연구소는 류이첸의 자산이 135억 위안(약 2조 4636억 원)으로 중국 부호 순위 100위라고 밝혔다.
류이첸은 중국 미술품에 관한 최고의 투자가이자 탁월한 안목을 가진 고수다. 중국 골동품에서 현대 미술품에 이르기까지 사들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국에서 두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가장 활동적인 미술품 수집가로 알려진 그의 아내 왕웨이(王薇)와 함께 문화 사업에 열정을 쏟고 있다. 대표적인 문화 사업은 미술관 설립이다. 현재 상하이(上海)에 미술관 2개를 운영 중이다. 특히 지난해 4월 상하이 푸시(浦西) 지역에 세운 롱(龍)미술관은 대지 3만 3000㎡(약 1만 평)에 전시 면적만 1만 6000㎡(약 4900평)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그는 항상 자신을 ‘문화적 소양이 뛰어나지 않은 졸부(土豪)’라 밝히며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 중국의 많은 신흥부호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겸손함이다. 이런 삶의 자세는 류이첸이 자신의 소장품을 미술관에 전시해 중국 인민들에게 개방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번에 구입한 모딜리아니 누드도 미술관 개관 5주년을 맞아 전시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참으로 보고 배울 점이다.
피카소와 고흐 등 세계적 유명 화가의 작품을 구매하는 중국 갑부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최근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최고기록을 경신하는 낙찰자 대부분이 신흥 슈퍼리치라는 점이다. 중국 영화사 화이브라더스(華誼兄弟)의 왕중쥔(王中軍) 회장이 빈센트 반 고흐의 ‘데이지와 양귀비꽃이 담긴 병’을 6180만 달러에 구매했다. 또 중국 부동산 대부 왕젠린(王健林) 완다그룹 회장이 파블로 피카소의 ‘클로드와 팔로마’를 2820만 달러에 산 것이 대표적이다.
둘째, 대부분 예술품에 대한 이해와 문화적 소양이 다소 부족하다는 공통점이다. 1949년 중국 사회주의가 건국된 이래 10년간 문화대혁명이라는 암흑기를 거치고 개혁개방 이후 벼락치기 신흥부호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미술품을 체계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하고 소장할 것인가에 대한 학습을 거의 받지 못했다.
미술 작품으로 돈벌고 과시도 하고
미술품 수집은 이제 중국 부호들의 삶의 트렌드이자 특권이 되었다. 연간 베이징에서 이뤄지는 미술 경매 낙찰 금액만 4조 원을 훌쩍 넘고, 또 미술품 구입을 할 수 있는 부호들도 100만 명이 넘는다. 뉴욕에 소재한 온라인 미술품 경매회사 아트넷은 중국 부자들이 보유 재산의 평균 17%가량을 예술품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후룬(胡潤)리포트에 따르면, 중국 부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예술품은 ‘고대 서화’였고 다음으로 ‘도자기’, ‘현대 예술작품’ 순이었다. 또 중국 부자들의 60%가 직접구매를, 24%가 경매회사를 통해, 14%는 위탁대리를 통해 예술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중국 갑부들은 미술품 수집에 열광할까? 첫째, 아트테크다. 최근 중국은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주가가 불안하다. 반면 미술품과 골동품이 훌륭한 투자대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대체투자인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중국 남송(宋) 시대 때의 접시가 2590만 홍콩달러(약 33억 8000만 원)에 낙찰됐다. 이 접시는 1975년에 진행된 경매에서 2348달러(약 238만 원)에 낙찰된 물건으로, 40년 만에 가격이 1422배 폭등했다.
▲류이첸이 1억 7040만 달러에 낙찰받은 모딜리아니 작 ‘누워 있는 누드’.
둘째, 부의 과시이다. 문화혁명을 겪은 신흥부호들은 “돈과 예술은 인민의 적”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자수성가하여 갑부가 된 이후에 그들은 자신이 이룬 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품격을 중요시하는 사회풍조에서 자기만의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특권을 누리고자 한다.
셋째, 애국주의이다.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자 갑부들 사이에는 어떤 이유로든 중국 밖으로 유출된 자국의 미술품을 재구매하겠다는 애국주의적 수집 열풍이 뜨겁다. 한마디로 지난 세기 짓밟힌 ‘중화 문화의 복귀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넷째, 문화 권력의 추구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상인 계층은 부를 축적하고 나면 항상 문화 권력을 추구했다. 위진에서 송대까지는 기석, 송대에는 서화, 명대부터 청대 강희건륭 시기에 골동, 청말민국에 이르러서는 모든 항목이 그들의 소장 품목이었다. 즉 축적된 부를 통해 예술품을 소유하면서 문화 권력을 거머쥐고자 하는 것이다.
비공식적으로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폴 고갱이 1892년에 그린 ‘언제 결혼하니?’라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카타르 왕족이 구입했으며, 가격이 3억 달러(약 3513억 원)나 된다. 류이첸의 행보를 볼 때, 그는 아마도 고갱의 작품에 무척 관심이 클 것이다. 그러면 세상의 이목은 다시 한 번 류이첸에게 집중되지 않을까.
(정리 = 최영태 기자)
송행근 중국경제문화학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