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2호 김금영 기자⁄ 2016.09.23 14:34:57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무대와 방송에서 보던 스타들이 전시장에 나타났다. 그런데 큐레이터, 전시 기획, 작업 등 그 형태가 다양하다. 미술을 사랑하는 스타들의 색깔 있는 행보에 주목해본다.
PART 1. 빅뱅 탑 “갖고싶은 작품을 어린아이 마음으로”
빅뱅의 탑(최승현)이 긴장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본격 빅뱅 활동의 신호탄이었을까? 아니다. 탑은 가수가 아닌 큐레이터로서 자리에 섰다.
탑이 소더비와 특별 경매 #TTTOP를 연다. 홍보대사가 아닌 큐레이터로 참여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1774년부터 예술 작품과 각국의 컬렉터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해온 소더비는 뉴욕, 런던, 홍콩, 파리를 비롯해 9개의 국제적인 경매소를 두고 있으며, 소더비 비드나우 프로그램을 통해 경매를 온라인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40여 개 국에 90여 개의 오피스 네트워크를 두는 등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소더비와 탑이 손을 잡았다는 소식이 들리자 처음엔 뜻밖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무대 위에서 강렬한 랩과 퍼포먼스를 쏟아내던 그의 모습이 익숙했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알고 보면 탑은 미술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 왔다. 탑의 외할아버지인 소설가 서근배(1928~2007)의 외삼촌이 바로 김환기(1913~1974) 화백이다.
“어머니, 누나, 이모 등 외가쪽 식구들 중 모든 여성이 미술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작품을 많이 보며 자라왔죠. 저는 음악에 더 뜻이 있어 가수가 됐지만, 미술 또한 어렵지 않게 많이 접하면서 제 작업에 영감을 주는 요소가 됐어요. 특히 김환기 화백의 일기장을 어렸을 때 많이 봤어요. 그 중 ‘회화 안에는 음악이 있는 것 같소. 그런데 나는 어떤 노래를 부를까요? 나는 그 노래를 계속 찾아갈 것이오’라는 내용을 보고 감동한 기억이 있습니다. 미술 작가들은 작품 안에 운율을 상상하면서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풍부한 감성을 배울 수 있게 해준 미술이 제겐 뜻 깊은 존재죠.”
알고 보면 탑이 미술 관련 행보를 드러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싱가포르 아트 사이언스 뮤지엄에서 열린 ‘아이 존’ 아시아 현대미술 전시회에서 아트 큐레이터로서 나서기도 했고, 양혜규의 삼성 리움미술관 전시회에 그의 소장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5년에는 영국의 사치 갤러리와 푸르덴셜 생명, 패럴렐 미디어그룹이 주관, 기획하는 푸르덴셜 아이 어워즈에서 ‘비주얼 컬쳐상’을 수상했다.
이번 특별 경매는 소더비 측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탑은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의 한 컬렉터를 통해 소더비 아시아 현대미술을 담당하는 유키 테라세 스페셜리스트를 알게 됐다. 당시 소더비는 젊은 컬렉터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던 차 탑이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탑은 “처음 제안을 받고 너무 젊은 사람이 아트 옥션을 진행하면 굉장히 상업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걱정이 됐다. 그런데 색안경을 끼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탑-소더비, 신진 예술가 후원 및
새로운 컬렉터 경향 분석에 목적
탑과 소더비는 각각의 목적이 분명해 보인다. 소더비는 과거에도 에릭 클랩튼과 엘튼 존, 데이비드 보위 등 유명 엔터테이너와 컬래버레이션 경매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시아 엔터테이너와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패티 웡 소더비 아시아 회장은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 시장이 국제 옥션에서 점점 인지도를 얻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시장은 세계의 미술 시장이 추후 주목할, 성장이 기대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소더비 아시아 현대 미술 부서 팀장인 에블린 린 또한 “한국 예술 작품들이 아직 세계적 인지도가 없었을 때 소더비는 한국 단색화 전시를 열어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이 트렌드가 국제적 흐름으로 흘러 세계적 인지도를 얻어가고 있다”며 “한국 예술 작품들이 세계에서 아직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점차 독자성을 인정받고, 또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지금이 작품을 소개하고 수집하기 좋은 시점이라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아시아에서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탑을 통해 더욱 미술 애호가 및 일반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인기 엔터테이너이기에 화제성은 동반된다.
그리고 새로운 컬렉터의 경향을 분석하겠다는 의도도 들어 있다. 패티 웡은 “또한 탑이 나이는 어리지만 컬렉터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요즘 컬렉터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이전엔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작가를 소개하는 경매 현장을 통해서만 작품을 수집해야 했다면, 요즘 컬렉터는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해 작품에 관한 정보를 좀 더 빠르고 손쉽고, 또한 다양하게 얻을 수 있다”며 “경매 시장도 이런 컬렉터의 경향을 연구해야 하는데, 탑이 이 특징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흥미로웠고, 함께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점차 젊어지고 있는 컬렉터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아트페어 및 경매도 미술계에서 점차 개방적이 되는 추세다. 한정된 컬렉터의 접근이 용이한 억대가 넘는 고가의 작품뿐 아니라, 20~30대 젊은 컬렉터가 접근하기 쉬운 합리적인 가격의 작품들에도 눈을 돌리는 것. 2015년 첫선을 보이고 올해 8월 2회로 돌아온 ‘어포더블 아트페어’는 50만~1000만 원 가격대의 작품들을 대거로 내놓았다.
서울옥션은 온라인 경매를 진행 중이다. 고가의 작품을 위주로 하는 현장 경매와 달리 온라인 경매에서는 소품 등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의 작품이 주로 출품된다. 젊은 컬렉터들이 클릭 한 번으로 바로 작품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춰 소더비는 앞으로 경매 시장의 큰손으로 클 젊은 컬렉터를 사로잡겠다는 포부다.
탑은 개런티 없이 이번 특별 경매의 큐레이터로 나섰다. 그리고 이번 경매 수익금 일부는 아시아 문화위원회(ACC)에 기부돼 신진 예술가를 후원하는 데 쓰인다.
“재능이 있는데 형편이 어려워 미술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 어머니도 그랬어요. 그래서 더 안타까움이 큰 것 같아요. 특별 경매 시작 단계부터 어떤 단체에 기부를 할까 생각했어요. 선정 기준을 소더비와 함께 생각하다가 아시아 문화위원회를 선택했죠. 지금은 미술계에서 거장 작가가 된 무라카미 다카시나 쿠사마 야요이도 어려운 시절 이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어요. 이번 경매와 기부 소식을 알리자 무라카미 다카시가 바로 답장을 해 왔어요. 자신도 재단에 굉장히 신세를 졌다고, 이번 뜻에 동참하겠다고요.”
무라카미 다카시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키치한 팝아트로 승화시킨 작가다. 무라카미 다카시와 연락이 된 탑은 다음날 바로 자신이 쓰던 베개를 그에게 보냈다. 그리고 거기에 그림 하나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표적인 웃는 꽃 그림을 그려주면 그걸 아크릴 박스에 넣어서 벽에 전시해보고 싶었단다. 이건 이번 경매에서 탑이 추구한 작품 컬렉션 방식이기도 하다.
130억 원 상당 작품 25점 출품
신진 예술가-유명 작가 작품 나란히 배치
“현대 미술에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내놓고 ‘샘’이라 제목을 붙였고, 제프 쿤스는 진공 청소기를 작품으로 내세웠죠. 이것 또한 예술이라 하면서요. 그 작품들을 오마주하면서 '과연 어떤 것이 현대 미술인가' '어디에 걸리느냐에 따라 예술이냐 아니냐가 판가름 나는 것은 아니냐' 등을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베개엔 고전의 대가인 셰익스피어의 ‘죽느냐 사느냐’를 본따 ‘자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sleep or not to sleep - that is the question)’라고 이름 붙여서 경매에 내놓았어요.”
무라카미 다카시뿐 아니라 일본의 컬렉터이자 탑의 친구이기도 한 유사쿠 마에자와는 소장품 쟝 미쉘 바스키아의 ‘보병대’(1983)를 출품해줬다. 또 다른 탑의 친구이자 현대 예술가인 나와 코헤이의 특별 커미션 작품도 소개된다.
든든한 지원군을 바탕으로 탑은 경매의 컬렉션을 구성했다. 소더비와 탑은 약 1년의 시간 동안 작품을 고르는 과정을 거쳤다. 유키 테라세 스페셜리스트는 “탑이 원하는 아티스트 리스트를 먼저 보내왔고, 그 해당사항을 소더비 측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거의 전적으로 탑이 작품을 선택했다. 따라서 이번 경매 컬렉션에는 탑의 취향이 반영됐다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정가 총액이 약 130억 원에 달하는 25점 이상의 작품이 출품된다.
특히 이번 경매는 주요한 신진 예술가들을 서양의 유명 작가들과 함께 나란히 배치하는 전시 방식을 취해 눈길을 끈다. 탑은 “전체적인 조합을 고민했는데,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거장들의 작품과 함께 어우러졌을 때 나타나는 앙상블을 보여주고 싶었다. 좀 더 새로운 비주얼을 보여주고 싶었고, 리스트적 측면에서 개성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서양 섹션은 앤디 워홀, 조지 콘도, 루돌프 스팅겔, 지그마 폴케와 같은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선두로, 떠오르는 스타 작가인 조나스 우드의 회화 작품 2점도 포함한다. 사진가 데이비드 라샤펠의 컬렉션으로부터 나온 키스 해링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아시아 섹션은 김환기 작가의 미술관 소장품부터 시작해 박서보, 이우환, 정성화, 백남준 등의 작품을 소개한다. 탑은 “작품을 모으기 정말 힘들었지만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꼭 넣고 싶었다. 이전에 김 화백의 일기장에서 ‘선이냐, 점이냐, 나는 점이 더 개성적인 것 같다’는 내용을 봤는데, 이번 경매는 김 화백이 본격적인 미니멀 회화로 가기 전 고민을 담았던 단계의 작품을 선보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고기타 토무, 박진아, 허샹위, 사이토 모코토 등 일본과 한국, 중국의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더해진다.
“젊은 컬렉터이자 미술 애호가가 보는 관점에서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접근이 쉬운 가운데, 그 안에서 작품이 지닌 개념과 철학이 얼마나 새로운지에 집중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이 어렵지 않고 그냥 느끼고 싶은 감정을 느끼면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아이 같은 단순한 마음으로 작품을 골랐어요. 정말 제가 탐나고, 갖고 싶은 작품들이기도 해요.”
유키 테라세 스페셜리스트는 “우리는 이번 경매가 무척 자랑스럽다. 탑은 이번 프로젝트에 대단한 열정을 보여줬고 이것은 미술계의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킬 것”이라고 정리했다. 경매는 신라호텔에서 9월 21~22일, 홍콩 컨벤션 센터에서 9월 30일~10월 3일 프리뷰 전시를 거친 뒤 홍콩 컨벤션 센터에서 10월 3일 경매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