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부터 카페, 페어 등 다양한 키덜트(kidult, 아이를 뜻하는 kid와 성인을 뜻하는 adult의 합성어) 성지들을 찾아가 그곳의 특징을 짚어보는 ‘키덜트 성지순례’ 네 번째 장소는 ‘픽사 애니메이션 30주년 특별전’ 현장이다.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대박. 전시 기획에 참여한 지엔씨미디어의 홍성일 대표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본격 전시 개막에 앞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전시 티켓 사전 판매가 보통 1000장 내외 팔리고, 아주 많이 팔리면 약 2000장 정도 팔린다. 그런데 국내 전시 사상 처음으로 사전 판매 6만 장을 기록했다. 이런 놀라운 경험은 나도 처음이다. 그야말로 대박”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대박이 터진 현장은 ‘픽사 애니메이션 30주년 기념전’이다.
픽사는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거느린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다. 30년 동안 ‘토이 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업’ ‘인사이드 아웃’ ‘굿 다이노’ 등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 다양한 픽사의 작품들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예상보다 더한 대박을 친 것.
홍성일 대표는 앞서 일본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미리 체감했다. 그는 “티켓이 6000장 정도 팔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겠지만, 6만 장이라 사실 놀랐다. 그런데 앞서 일본에서도 성공의 케이스를 봤다”며 “바로 전에 픽사의 전시가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두 달 동안 열렸다. 미술관 위치도 좋지 않았고 전시 기간도 짧았는데, 무려 35만 명이 전시를 찾았다”고 말했다.
물론 5월이라는 탁월한 시기의 영향도 있다. 가정의 달로 꼽히는 5월에 황금연휴까지 겹치면서 가족들과 나들이할 장소를 물색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픽사 전시의 경우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관심이 많아서 가족 구성원 전체를 공략하기 좋았다는 이야기. 홍 대표는 “픽사에 대한 기존 팬들의 충성도도 관심에 일조했을 것이다. 그런데 또한 애니메이션의 재미, 감동, 테크닉이 전 세계에 끊임없이 새로운 팬들을 만들어내고, 이 팬들이 픽사 애니메이션에 애정과 충성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픽사는 애니메이션을 아이들만 좋아할 것이라는,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을 일찍이 타파하는 데 앞장섰다. 아이들만을 공략한 과거의 애니메이션은 권선징악의 구조 아래, 굉장히 과장된 표정과 목소리 등의 연기가 담긴 경우가 많았다. 애니메이션 상영 시간 또한 짧았다.
그런데 픽사는 단순히 유치한 것이 아니라 공감을 이끌어내는 스토리를 장시간에 담는 데 주력했다. 현재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토이 스토리’의 경우 귀여운 장난감들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유년 시절에 대한 추억, 그리고 아름다운 우정까지 담아 모두의 심금을 울렸다. ‘인사이드 아웃’은 어른들이 더 많이 찾은 작품으로 기억된다. 사람들의 감정을 인격화해 벌어지는 일을 그리며 웃음을 자아냈다.
스토리+캐릭터+세계가 만날 때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자고 모인 장본인은 존 라세터, 에드 캣멀, 스티브 잡스다. 이들은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세웠다.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픽사의 전시 수석 책임자인 마렌 존스는 “존 라세터는 위대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매력적인 스토리를 이야기해줄 것, 두 번째는 그 스토리에 실제 삶의 열망과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캐릭터를 만들어줄 것,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캐릭터를 실제 존재할 법한 세계에 담는 것이다. 사람들이 볼 때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한 예로 ‘인크레더블’을 들자면, 초능력을 가진 가족 구성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아이들은 각 캐릭터가 지닌 현란한 초능력, 즉 막강한 힘, 쭉쭉 늘어나는 몸, 투명 인간이 되는 신체, 누구보다 빠른 발 등에 눈을 밝혔다. 그리고 어른들은 초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움츠려야 하는 이들의 삶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들이 점차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결국엔 갈등을 겪었던 가족 구성원들이 사랑으로 뭉치는 과정은 뻔할 수도 있지만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줬다. 캐릭터의 외형도 매력적이라 피규어 등 아트 상품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역시 이야기와 캐릭터를 돋보이게 해준 건 픽사의 기술력이다. 홍성일 대표는 “토마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했다면, 지금 보는 3D 애니메이션의 모든 것은 픽사가 발명했다고 할 수 있다. 존 라세터, 에드 캣멀, 스티브 잡스 세 명이 모여 창의력을 발휘해 픽사를 만들었다”며 “본격적으로 토이 스토리 이전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직접 사람들이 그린 수많은 그림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토이 스토리 이후 100%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드는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3D 애니메이션 영화의 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관점을 돌린 ‘버그캠’도 탄생했다. 홍 대표는 “픽사의 작품 중 ‘벅스라이프’가 있다. 곤충들의 세계를 그린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픽사는 회사 뒷마당에서 초소형 카메라를 갖고 벌레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담았다. 그때 버그캠이 만들어졌다”며 “이밖에 제작진은 바다에 들어가 해양에 대한 연구를 하기도 했다. ‘니모를 찾아서’ 등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이 점을 느낄 수 있다. 애니메이션계에 종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또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픽사의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첨단 기술까지 함께 살필 수 있도록 구성됐다. 마렌 존스는 “사람들은 대부분 픽사 영화라 하면 혁신적인 기술에 대해서만 떠올릴 때가 많다. 그런데 하나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탄생시키는 데 페인팅, 드로잉, 조각 등 아름다운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면 놀랄 것”이라며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고민해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아티스트가 콘셉트 디자인, 스토리, 캐릭터 등을 시각화 하는 작업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특히 30주년을 맞은 전시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작품들이 추가됐다. 마렌 존스는 “존 라세터는 항상 픽사의 예술을 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했다. 10년 전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찾아와 전시 요청을 했을 때 픽사가 20년 동안 걸어온 길에 대해 선보였고, 이후 전 세계를 돌면서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작업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다”며 “최근엔 30주년을 맞아 전시를 새롭게 큐레이팅했다. 50여 명의 아티스트가 만든 약 5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각 애니메이션 별로 캐릭터, 스토리, 월드(영화 속 세계)의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스케치, 그림, 스토리보드, 컬러 스크립트, 캐릭터 모형 조각 등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그간 완성된 애니메이션의 결과물만 볼 수 있었다면 이번 전시는 애니메이션의 첫 아이디어부터 그 아이디어가 어떻게 발전되는지 전 과정을 훑어볼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또한 여기서 예술과 과학 기술과의 결합이 어떤 긍정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도 배워볼 수 있다. 전시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전시관에서 8월 8일까지.
[알고 가면 더 좋은 키덜트 성지순례 키워드]
① ‘토이 스토리’ 두 주인공의 원래 얼굴은?
토이 스토리의 매력적인 두 주인공인 카우보이 인형 ‘우디’와 최신 액션 인형 ‘버즈’. 그런데 이 우디와 버즈의 모습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면? 캐릭터를 만들 때 이뤄졌던 아이디어 스케치를 전시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디와 버즈의 시작 또한 어땠는지 엿볼 수 있다.
우디는 현재의 모습과 대체적으로 비슷한 반면, 버즈는 색다른 초기 모습이 눈길을 끈다. 사람들에게 흔히 알려진 위풍당당하고 시건방진 모습보다 다소 위축돼 보이는 모습이 흥미롭다. 토이 스토리를 비롯해 ‘니모를 찾아서’ ‘업’ ‘인사이드 아웃’ 등 픽사의 다양한 작품 속 캐릭터들의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와 이를 바탕으로 구현된 클레이 아트를 즐길 수 있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특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② 새롭게 작업한 ‘토이 스토리 조이트로프’와 ‘아트 스케이프’
아이디어 스케치, 클레이 아트 등이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느끼게 해준다면, ‘토이 스토리 조이트로프’와 ‘아트 스케이프’는 픽사의 첨단 기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픽사가 새롭게 작업을 했다. 토이 스토리 조이트로프는 일련의 연속된 정지 이미지들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작품이다. 처음엔 그냥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토이 스토리 캐릭터들이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캐릭터들은 춤을 추기도, 긴 줄을 돌리기도 한다.
이어 픽사가 자신감을 드러낸 아트 스케이프는 대형 미디어 설치 작품이다. 콘셉트 작업부터 최종 결과물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펼쳐진다. 지난해 5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드림웍스 전시도 ‘드래곤 길들이기’ 파노라마 영상(3분 30초)을 선보인 바 있는데, 드림웍스가 ‘드래곤 길들이기’ 작품 하나를 통해 드림웍스의 기술력을 보여줬다면, 픽사는 다양한 작품을 총망라하는 구성 방식을 취했다.
③ 픽사의 초창기 애니메이션
아트 스케이프가 상영되는 큰 영화관과 더불어 전시장 한켠에 또 다른 영화관이 구성됐다. 여기에서는 픽사의 초창기 애니메이션을 살펴볼 수 있다. 초창기 작업에서도 토이 스토리에 대한 아이디어가 엿보인다. 한 영상에서는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기 위해 기어 다니고, 이 아이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는 장난감들의 모습이 보인다. 현재 픽사의 애니메이션 기술력과 비교하면 다소 어설픈 감이 있지만, 신선함과 독창성이 돋보이는 픽사의 초창기 작업 또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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