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부이사장) 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세미나에서 그를 만났다. 안개비가 흩뿌리는 날이어서인지 그는 바람막이 비옷을 입고 있었는데, 왼쪽 가슴에는 골프장 로고가 붙어있었다. 그와의 처음, 첫 만남이었다. “골프하세요?”라고 내가 물었고, 누구라도 자기가 골퍼임을 알아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반겼다. 그는 자신이 골프 잡지에 골프장 탐방기를 쓰고 있다고 했다. 덧붙여서 태국 관광청의 초청으로 곧 태국으로 골프 여행을 간다고 뽐냈다. 태국 정부가 관광 진흥 정책으로 한국의 스포츠 기자와 신문 등에 지면을 가진 골프 패널들을 초청해 관광과 골프 라운드를 시켜준다고 했다.
박대 받으면서도 골프 소설을 시작한 계기
춥고 비싼 골프장 밖에 모르는 한국 골퍼들을 따뜻하고 싼 태국 골프장으로 끌어들이도록 지면과 방송에서 광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공짜 비행기에 공짜 숙소에 공짜 라운드라니. 우와, 듣고 보니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였다.
“저 좀, 그런 데 낑가주면 안 될까요?”
골프 라운드 한 번에 쌀 한 가마니 값을 지불하던 시절이었다.
“골프 칼럼이라도 쓰는 지면을 가지고 있어야…”라고 그가 말했고 “말이라도 붙여본다는 뜻이죠?”라고는 내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골프를 알게 되었다. 끊임없이 소설의 주제와 소재 발굴을 위해 혈안이 된 작가에게 골프란 얼마나 입맛이 다셔지는 맛난 먹이인가. 나는 골프의 주변을 어정거리며 골프 라운드, 골프 장비, 골프장, 골퍼, 골프와 자연, 캐디를 위시한 골프 관계자에 관한 소설을 썼다.
인간에게는 자기 현시욕이 있다. 독자가 읽어줘야 쓰는 맛도 생긴다. 그 시절의 골프는 망국 운동이며 사치성 오락이어서 내가 쓴 골프 소설은 골프를 긍정적으로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문예지에서든 문전박대였다.
나는 원고를 들고 골프 잡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열심히 썼다. 서서히 골프 작가, 골프 칼럼니스트로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고, 심심치 않게 내가 그렇게 원하던 공짜 골프 라운드의 기회도 왔다. 태국으로, 중국의 해남도로, 제주도로도 공짜 골프라운드를 다녀왔다.
한국에는 소설가도 드물지만, 골프를 하는 소설가는 더욱 드물다. 전업 소설가는 가난하기에 골프에서 멀어진다. 그가 완전히 골프에서 손을 뗐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와는 골프로 만나는 일이 줄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와 적조해졌다.
그도 알고 나도 아는 동료 작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우리도 미리 작별 인사 합시다. 정신이 맑을 때 미리 작별 인사를 해 놓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작별 인사를 미리 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마음만은 훨씬 가벼워지겠지요”라는 문자가 왔다.
생애 마지막 라운드를 20년만에 다시 치며
20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사람이 ‘마지막 라운드’를 청했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참 싫었지만, 이역만리 나뉘는 사람과는 별수 없이 마지막이리라는 예감에 슬픈 마음으로 응했다. 20년 후쯤 나는 미국에서 그와 라운드를 했다. 그 라운드도 마지막은 아니리라.
돌아가신 신영복 시인님의 ‘처음처럼’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처음’은 저절로 오지만, ‘마지막’이라는 말은 유보해야 한다.
나는 작별인사가 싫다. ‘마지막 라운드’가 싫다.
설령 이것이 나의 마지막일지라도, 내 감성의 스펀지를 뽀송뽀송하게 말려놓고 모든 처음의 떨림을 흡수하며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