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0-621합본호 김금영⁄ 2018.12.26 17:21:43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권오상, 김인배, 이동욱 작가 3인의 공통점. 이들의 조각 작품들은 “조각이 맞나?”라는 질문을 들었다. 조각의 사전적 정의는 미술 재료를 새기거나 깎아서 입체 형상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들은 정통 조각의 노선에서 벗어나 조각 언어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새로운 매체를 적용하는 시도를 해 왔다. 그리고 이들이 아라리오갤러리 서울|라이즈호텔에 모였다.
권오상, 김인배, 이동욱의 3인전 ‘무한주’는 이들이 조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주는 전시다. 아라리오갤러리 측은 “처음 전시 공간이 마련될 때부터 세 작가와의 전시를 염두에 뒀다. 청년 시절부터 아라리오갤러리와 인연을 쌓아 온 세 작가는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덧 중견 작가 계열에 들어섰다. 그만큼 조각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펼쳐 왔다”고 밝혔다.
이어 “전시명은 브랑쿠시(1876~1957)에서 시작해 현대 조각의 정신적 모체가 된 ‘무한주’로 명명해 무한에 대한 현대 조각가들의 로망과 집념이 만들어내는 역설, 그리고 그 역설로 인해 파생되는 무한한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며 “세 작가의 작업은 유한적인 상황에 처해 있고, 유한한 수단을 사용하지만, 정통 조각의 한계를 깨며 무한의 상징들을 만들어낸다. 이런 작가들의 방식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권오상은 이번 전시에서 ‘매스패턴스’ ‘릴리프’ ‘모빌’ 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인다. 이 작업들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방식은 그의 조각 오리기. 예컨대 멀리서 본 모빌 시리즈는 전시장에 매달린 채 입체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모빌 사이로 들어갔을 때 모빌 이미지가 얇은 판형 조각들임을 발견한다. 작가는 조각의 주요소인 양감에서 해방시킨 얇은 판형 조각들을 좌대에서 해방시켜 허공을 떠다니도록 유도했다. 즉 오린 조각들이 전시장에 모빌처럼 매달린 것을 볼 수 있다.
권오상은 “모빌 작업은 알렉산더 칼더(1898~1976)의 모빌과 서커스 작품에 대한 오마주다. 동서양 조각 역사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세계적 조각가인 칼더의 작업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다”며 “칼더의 서커스 비디오 클립 영상에서 장난감을 만들어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미지를 수집했다. 영상 관련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관련 검색어를 따라가서 나오는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전시장에는 권오상이 만든 이미지의 정원이 만들어졌다.
이런 방식으로 인해 권오상의 작품은 ‘사진 조각’으로 불려 왔다. 평면이었던 이미지를 오려내 철사 등을 이용해 세우는 등 재배치함으로써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허문다. 권오상은 “작업이 어느 때에는 사진으로, 어느 때에는 조각으로 분류돼 전시되기도 했다”며 “입체와 평면을 넘나드는 건 모든 미술에 내제된 특성으로 많은 작가들이 이에 대해 연구해 왔다. 장르에 연연하기보다는 작업을 이어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 조각 재료인 나무에 사진을 붙여 만든 부조 작품 ‘릴리프’, 그리고 브랑쿠시 좌대를 사진 조각으로 제작해 좌대를 작품으로 만들며 2차원에서 3차원으로의 확장을 거친 ‘매스패턴스’ 또한 물질을 재료로 삼았던 전통 조각 관습을 파괴하며, 시각 이미지에 주력하는 권오상식 조각적 무한성을 구현한다.
조각이 들어서면서 변화하는 공간
김인배의 조각에서 가장 중요시 이야기되는 건 ‘개수’다. 그리고 이 개수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품들의 배치에 주목한다. 그는 “사람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많았다. 살며 힘든 부분이 많은데 그 근원이 개수에 있다고 생각했다. 본다는 것 전제 아래 우리는 무언가를 인식하기 위해 개수를 파악하기 때문”이라며 “그렇다면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한 덩어리로 봐야 할까? 결국 개수라는 건 무엇일까? 세상을 구성하는 개수의 의미를 학습당한 건 아닐까? 이런 궁금증들이 모여 작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개수’의 경우 일반적인 개수의 개념으로 접근하자면 머리로 보이는 조각 하나, 몸통으로 보이는 조각 둘, 그 아래 아주 작게 설치된 두 발까지 다섯 개의 조각이 따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이를 “하나의 조각”이라 설명했다. 김인배는 “서로 마주본 채 하나를 이루는 덩어리가 읽히길 바랐다. 크게 부푼 몸통과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의 두상을 거리를 두고 배치했다”고 말했다.
‘2의 모각’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모방한 듯한 두 개의 두상이 배치됐다. 김인배는 “개수 중 특히 두 개를 좋아한다. 결국 두 개라는 건 ‘나’ 그리고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세상의 다양한 것들을 파악한다”고 말했다. ‘섬광 속의 섬광’에서도 개수에 강박된 구성과 배치가 돋보인다. 작가가 제시하는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고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덩어리들은 특유의 시선의 축을 흔드는 시도를 한다.
이동욱의 작업에서는 결합 방식이 돋보인다. 스컬피로 만든 인간 형상, 트로피, 수집한 돌, 검은색 비닐봉지, 나뭇가지 등 다양한 수집물들을 쌓거나 이어붙이는 식으로 결합해 하나의 거대한 조각을 구현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에는 인간상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뾰족한 나무 사이 방황하고 있거나 높은 곳에 위태롭게 위치하고 있는 등 극한 상황에 치달아 있는 모습이다. 작가는 “오브제들을 결합할 때 인간상을 넣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과거엔 이 인간상들을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에 대한 진지한 관찰, 또는 현실에 대한 고발, 비판의 내용을 냉정한 시선으로 담았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오브제들을 결합하는 데 보다 주목했다. 이동욱은 “‘어떻게 사물들을 결합시킬 것인가?’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연결하는 데에는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색 배치나 형태 등 다양한 요소들 또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느꼈다”며 “여러 개의 오브제를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새로운 조화가 흥미롭다”고 말했다.
평소 흥미가 가는 것들을 모으는 습관이 있다는 그에게 세상은 수많은 오브제들로 가득 찬 창고와도 같다. 이 오브제들을 그의 방식으로 결합시켜 새로운 조각 작품으로서 생명을 부여하는 것, 그 과정을 이번 전시에서도 살필 수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측은 “이번 전시에 참여한 조각가 3인은 유한한 수단이 만들어낸 무한의 상징들이 조각 공간에서 어떤 방식과 양상으로 전이되는지 보여준다”며 “이를 통해 조각이 창조하는 공간에서 발현되는 무한성의 예술적 의미를 규명하려는 시도를 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라이즈호텔에서 내년 3월 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