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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상의 법과 유학] 저녁이 있는 삶과 대동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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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24-625합본호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2019.01.28 09:27:34

(CNB저널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의 여성 판사가 과로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 40대 초반의 젊은 판사는 업무에 치어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토요일 저녁에 집안일을 마치자마자 다시 밀린 판결문을 쓰기 위하여 출근하여 일요일 새벽까지 일을 하고 돌아온 자택의 욕실 안에서 쓰러졌다가 뒤늦게 남편에게 발견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아까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판사 정원이 3000명을 넘어섰지만 아직까지 판사 1인 당 처리하는 소송 건수는 세계적으로도 많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이승윤 판사 같은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매년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기업환경평가보고서의 사법 분야 평가’에서 수위를 다툴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로사와 ‘돈 없는 저녁’의 사이

물론 법관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근로자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난해 7월 1일부터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대형 사업장을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고 300인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으로까지 단계적으로 확산 적용될 예정일 뿐만 아니라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는 등 인간다운 삶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법관도 공적 업무와 사적인 개인생활을 양립시킬 수 있는 인간적인 삶과 그에 걸맞는 근무 환경을 마땅히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로사 문제’는 이번에 불쑥 대두된 것이 아닙니다. 가까이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각 당의 후보자들이 국가 위기로 대두된 ‘저출산 문제’와 장시간 노동으로 빈발하는 ‘과로사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한 각자 나름의 공약을 내걸었고, 그보다 5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모 정당의 대통령 경선 후보자가 내걸었던 “저녁이 있는 삶”이란 공약이 상당한 화제가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선택하면 얻는 것도 많은 반면 잃는 것도 많을 것입니다. 가족 간의 대화, 육아 문제, 가정의 행복 등 공동체적 삶을 얻을 수 있는 반면 연봉, 직장에서의 승진 등 개인적인 욕구는 상당부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워라벨(Work & Life Balance)’, 즉 ‘일과 삶의 조화’가 매우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돈 없는 저녁’이 되어서도 행복을 얻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교에서의 이상세계는 대동사회(大同社會)입니다. 대동(大同)은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으로, 역사적으로도 일제강점기인 1919년 3월 말에 서울에서 조직된 비밀 항일결사조직인 ‘대동단(大同團)’, 조선 선조 때 정여립(鄭汝立)이 조선의 신분제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대동계(大同契)’,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경기도에 시범실시 했다가 전국으로 확대된 ‘약자를 위하는 세법’이라는 ‘대동법(大同法)’에서 그 쓰임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동사회’라는 이상적 사회를 동양 유학사회에 제시한 인물은 공자(孔子)였습니다.

 

대동사회를 이뤘다고 전해지는 요 임금(왼쪽)과 순 임금의 초상화.  

‘예기(禮記)의 예운(禮運) 편’에 따르면 공자가 지금의 산동반도에 있던 노(魯)나라에서 국가제사에 참여하고 난 후 성문 위에서 쉬면서 탄식을 하고 있을 때 제자 자유(子游)가 그 까닭을 묻자, 공자는 “대도(大道)가 행해졌던 때는 천하가 ‘공공의 것’, 즉 천하위공(天下爲公)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대도(大道), 즉 큰 도가 행해졌던 때는 요순(堯舜) 임금 때를 뜻하는데, 이때는 천하가 임금이나 소수 귀족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백성의 소유였다는 뜻입니다.

 

입구에 ‘천하위공’ 문을 세워 놓은 보스턴 차이나타운. 사진 = Ingfbruno

공자는 대동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 “노인들은 편안하게 일생을 마칠 수 있고, 젊은이는 다 직업이 있고, 여자는 다 시집 갈 자리가 있고, 어린이는 잘 자라날 수 있고, 과부, 홀아비, 병든 자를 모두 사회가 봉양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부유하다고 해서 “재물을 땅에 버리는 자는 싫어했지만 반드시 자기를 위해 창고에 쌓아 두지는 않았고”, 신분이 귀하다고 해서 “몸소 일하지 않는 자는 미워했지만 반드시 자기를 위해서만 일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공자의 대동사회와 현대 복지사회의 사이

유교의 이상세계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의지할 곳이 없는 노인, 고아, 중병에 걸린 자를 서로 돕고 남은 재물이나 노동력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보편적인 도덕이 시행되고 동시에 공공성이 실현되는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사회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축재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지 않는 공동호혜(共同互惠)의 사회가 곧 공공성이 실현된 대동세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동사회는 공유제를 기반으로 한 체제이므로 원시 공동체가 붕괴되고 사유재산에 기초한 계급사회로 대체된 이후 고대인들이 추구한 이상사회에 대한 아름다운 소망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이는 사유재산에 근거한 암흑사회가 갈등과 투쟁으로 악화되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하여 출현하였던 것인데 시대의 추세와 삶의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그 이념도 점점 이익지향의 사회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유교의 이상사회인 대동의 이념이 지금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로 계층 간의 불화와 알력,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통합에 큰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지며, 그런 의미에서 대동사회의 현대적 의미는 복지정책의 확대, 복지국가로의 발돋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 1978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돼 ‘특수통’으로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강호순 연쇄 살인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다. 2006~2008년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의 초대 심사본부장,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 부사장, 2018년 9월 한국해양진흥공사 초대 투자 심의위원 위촉. 2013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석사과정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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