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그려놓은 그림 그 이상의 것을 말할 게 있을까요? 무엇이든 상상에 달려 있죠.”
황규백 작가는 이 말을 강조했다. 그는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3월 10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을 통해 근작 20여 점을 발표한다. 전시장에서 그는 작업을 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점, 그림을 그릴 때 펼치는 상상의 나래, 그림과 더불어 이어져 온 그의 삶에 대해 털어 놓았다.
60여 년의 작업 여정에서 작가의 이름을 미술계에 알린 건 판화였다. 그는 1954년부터 1967년 신조형과 신상회의 일원으로 초기 한국 추상회화에 몸담았으나, 1968년 도불을 계기로 전통적인 판화 방식인 메조틴트 기법을 익혀 판화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의 작품은 ‘판화의 현대적 재창조’라는 평가를 받으며, 루브리아나 판화 비엔날레(1979, 1981), 브래드포드 판화 비엔날레(1974), 피렌체 판화 비엔날레(1974) 등 국제 판화제에서 수상했고 뉴욕 현대미술관,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 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의 소장품에 포함됐다.
그랬던 작가가 2000년 한국으로 귀국하고 초창기의 조형 언어인 회화로 다시 회귀했다. 무슨 연유였을까? 그는 파리와 뉴욕에서 활동했던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파리에서 판화 작업을 할 때 즐기며 임했다. 그러다 미국 화상 관계자들이 새로운 화가를 찾으러 유럽에 왔다가 내 작업을 보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해 뉴욕으로 건너갔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작가는 문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다소 보수적인 성격의 파리에서 뉴욕으로 건너가니 생활 자체가 달랐다. 뉴욕은 매우 진취적인 분위기였고,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파리에서 했었던 작품을 보니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주목받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통 무엇을 작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맨해튼의 잔디밭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그 순간 문득 청량한 하늘과 푸른 잔디, 그리고 새하얀 손수건의 이미지가 그의 눈에 들어왔고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작가는 “왜 좋은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손수건과 하늘의 이미지가 내 마음에 박혔다. 마음으로 느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라며 “이것을 동판화로 작업했고 ‘손수건’ 연작이 시작됐다. 사람들이 새 작업을 많이들 좋아해줬고 작품도 잘 팔렸다. 이 작품이 나를 살렸다. ‘손수건’이 아니었으면 난 배추장사를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런 새로운 시도는 작가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자연스럽게 마음에 들어오는 풍경을 그려보자는 마음이 붓 또한 자연스럽게 들게 했다. 작가는 “판화 작업을 30여 년 해오며 즐겁기도 했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힘에 부치기도 했다. 판화 기법상 문제로 담고 싶은 것을 작업하는 데 한계가 있기도 했다”며 “판화에서 유화로 옮기면서 캔버스에 그리고 싶은 화면을 마음껏 그릴 수 있다는 점에 해방감을 느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매순간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판화가 아닌 캔버스 회화 작업 20여 점을 선보인다.
남북정상 회담 감동 담은 신작 첫 공개
작가가 붓으로 그린 풍경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일순간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그리고 시계와 우산, 바이올린, 쪽지 등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물들이다. 이 모든 요소가 응집된 화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편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이끈다.
예컨대 하늘에 떠 있는 것이 달인지, 해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하늘 아래 사람 한 명 등장하지 않는 큰 집의 형상이 보이는 화면은 명확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 작가 스스로도 “화면 속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그린 것 중 실제 존재하는 풍경을 보고 그린 건 하나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즉 이 풍경들은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작가는 “그림을 보면 집 속에 보통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지 않다. 신성한 존재의 보금자리는 아닐지 여러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며 “나는 그림을 그릴 때 화면 속 대상들을 보고 보이지 않는 걸 스스로 읽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물가에 있는 큰 바위 위 쪽지가 있고, 백조가 이를 향해 다가오는 그림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쪽지는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 쪽지를 향해 백조가 다가오며 마치 서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림 속 안에서도 대상들끼리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등불과 쪽지를 함께 그린 화면에 대해서는 “전날 만난 연인들이 등불을 바위 위에 올려두고 간 모습을 상상하며 그린 것이다. 이건 내 상상이고, 그림을 보는 이에 따라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인 없이 놓여 있는 신발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신발의 주인은 누구냐”는 질문을 받자 “바로 당신”이라고 웃으며 답하기도 했다.
그림에는 시계가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작가는 “시계를 좋아한다. 시각적으로도 흥미를 끄는 매체이기도 하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연상케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즉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작가가 좋아해서, 마음에 들어와서 손이 가는대로 마음껏 그린 사물들이다. 이밖에 커튼으로 반쯤 가리어진 창, 연기가 피어오르는 숲, 목욕 가운이 걸쳐진 바위와 같은 이미지들은 그 너머의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를 바라는 작가는 스스로를 투영한 사물을 화면에 등장시켜 이야기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사우스 앤 노스 서밋(South and North Summin)’에서 작가는 우산의 모습으로 그림에 개입한다. 오래도록 대립과 반목을 거듭해 온 남북의 정상이 도보다리를 함께 걷던 순간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지난해 4월 TV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보고 정말 감동 받아 눈물까지 흘렸다. 초록빛 자연 속 정담을 나누는 남북 정상의 모습에서 평화를 느꼈다. 이 감동을 영원히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림을 그렸다”며 “그림에서 내 자화상으로 우산이 등장한다. 우산이 벽에 기대 있는 모양새인데 남북 정상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엿듣고 있는 것”이라며 웃었다.
사람이 아닌 사물에 빗대어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한 이유에 대해서는 “인물을 정말 제대로 그리지 않으면 오히려 그림의 전체적인 느낌이 깨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물에 투영해 그렸고, 이편이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의 여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고 답했다. 그의 말처럼 벽에 기댄 우산은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바깥에는 궂은 비 대신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면서 비라는 역경을 견딘 우산이 한숨 돌리며 휴식을 취하는 느낌도 든다.
이런 평화야말로 작가가 평생에 걸쳐 간절히 염원해온 것이기도 하다. 6.25 참전용사로서 3년 동안 전쟁터를 지킨 작가는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극도의 잔혹함을 목도했고, 조국에서 벌어진 참상을 잊지 못해 휴전 후 파리로 떠났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미술은 마음의 위안이자 냉혹한 현실로부터의 피난처였던 것. 이제 그는 혼란의 시기를 극복하고 그림으로서 평화를 찾아가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전시장에 그림을 설치하다보니 작업실이 텅 비었다. 텅 빈 작업실을 보니 뭔가 기분도 이상하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진 것 같아 병원을 갔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림 하나를 하루 종일 쳐다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그림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림은 내게 늘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해줬다”며 “그림은 내게 행복을 준다. 지금 내 건강은 그림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릴 수 있는 한 붓을 손에서 놓으면 안 되겠다는 걸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다시금 느꼈다”고 말했다. 작가는 그림 하나하나를 설명할 때마다 “지금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붓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또 써내려갈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