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작품을 보고 있는 사람들. 그런데 하나같이 작품 사진을 찍느라 바쁜 모습이다. 즉 자신의 눈이 아닌 핸드폰 또는 사진기 화면을 통해 작품을 보는 셈.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화면이 파라다이스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눈을 통해 또 포착된다. 누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 시선이 여러 겹으로 겹치는 현장이 흥미롭다.
파라다이스집이 김홍식 작가의 개인전 ‘김홍식. 집(ZIP): 비 띠어리(B Theory)’를 5월 25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사진과 판화를 활용해 자신만의 매체를 구축해 온 작가가 2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된 작품은 작가의 ‘미술관’ 시리즈 중 일부다. 작가는 장소, 시선에 관심을 두고 ‘도시’, ‘산책자’, ‘미술관’ 시리즈 등을 선보여 왔다. 평소 여러 장소들을 직접 다니며 여러 현상을 눈여겨 봐 온 작가는 몇 년 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다. 특히 작품 자체보다 그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먼 루브르 박물관까지 힘들게 찾아와 하나같이 몰려간 곳은 작은 크기의 ‘모나리자’ 그림 앞이었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작품을 보지 않고 핸드폰, 사진기를 꺼내들고 촬영하기에 바빴다”며 “화면을 통한, 즉 간접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은 루브르 박물관뿐 아니라 국내외 여러 박물관, 미술관에서도 보였다”고 말했다.
특히 2층 전시장에서는 미술관의 전체 배경 그리고 작품을 찍고 있는 관람객의 모습을 담은 큰 화면 앞에 이 관람객만의 모습을 다시금 부각시킨 작은 화면을 배치해 마치 창문 같은 구조를 만들어 눈길을 끈다. 이른바 시선에 시선을 겹친 모습. 이를 통해 작가는 산책자의 시선, 미술관의 시선, 작품 안의 시선, 관람자의 시선까지 아우른다.
그리고 여기서 또 눈길을 끄는 건 작품을 둘러싼 화려한 액자와 작품 속 돋보이는 금색. 보통 작품에의 집중을 위해 액자의 형태를 심플하게 취할 때가 많은데, 작가는 장식성이 돋보이는 화려한 금색 액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금색 액자와 화면 속 금색이 공명을 이룬다. 대체로 단조로운 색을 띤 화면에서 관람자의 머리색 또는 옷 일부 등이 금색으로 확 튄다.
이는 외적인 시선에 치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작가의 또 하나의 시선으로 보인다. 작가의 화면 속 사람들의 시선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핸드폰 또는 사진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 그리고 파라다이스집에 설치된 작품의 화려한 액자 또한 작품으로 향하는 시선을 일부 빼앗으며 관람자의 시선을 교란시킨다. 즉 본질에 앞서 화려한 외적인 요소들에 빼앗기는 시선을 꼬집어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진다.
이처럼 ‘외적 시선’에 집중한 작업들을 선보여 온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는 ‘내적 시선’까지 통찰을 시도한다. 전시 제목 ‘비 띠어리’는 이를 상징하기도 한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며 과거, 현재, 미래 모두 동일하게 실재한다”는 시간 철학 개념에서 차용했다. 작품의 외적 요소에 쏟아지는 시선을 포착했던 작가는 이젠 작품 자체가 만들어지는 모든 재료와 과정들을 따라가며 작품의 내적 이야기까지 시선을 쏟는다.
외적 시선에서 내적 시선까지 확장된 작업
작가는 “누군가 ‘이 기법이 뭐냐’고 물어보면 설명이 길어진다. 미술에 있어서 매체의 개념은 작품의 표현 수단이나 매체로서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 형식 또는 목적으로 전이되고 있다”며 “2017년의 환기미술관에서의 전시는 그동안 내 작업 중 산책자의 시선-미술관의 시선, 작품 안의 시선, 관람자의 시선 등 시각적인 면에 대한 논의 중 어느 한 점을 찍었다”며 “이번엔 보다 근본적인 물음, 즉 내 작업의 정체성 혹은 자체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하며 고민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통합적 미디엄(Synthetic Medium)’이라 정의 내린다. 결과물만 작품으로 칭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원판과 제작 과정 그리고 결과물까지 하나로 통합한 것이 바로 작품이 된다는 논리다. 작가는 “일반적으로 판화 작업은 찍어낸 결과물만 작품으로서 전시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통합된 미디엄’은 단지 물리적 현상만 말하지 않고, 그 과정과 작업 안에 담긴 콘텐츠들의 시선까지 통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작과 더불어 그동안 제작해 온 대표작들을 한 자리에서 선보이는 것도 이런 의도에서 비롯됐다. 과거의 작업과 신작을 따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작업이 있었기에 현재의 작업까지 흘러올 수 있었음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바로 ‘통합된 미디엄’으로서의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작품에 금색뿐 아니라 붉은색이 도드라진 작품들도 있는데 이 또한 과거 작업과 근작들의 통합된 조화다. 작가는 “초기 작품을 모티브로 한 신작을 작업했다. 이 안엔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들이 담겨 있다”며 “작품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초기 작품으로 돌아갔고, 그 모티브를 그동안 발전시켜 온 매체로 표현하며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작품에서 실재하는데, 이는 시간 철학 ‘비 띠어리’와도 맞닿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시장 지하 1층은 작가의 이런 의도를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스틸 등 판화 작업의 원판들이 다양하게 쌓인 이 공간은 작가의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 과정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단순히 ‘작가의 작업실 재현’ 차원에서 이 공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 과정 자체도 작품으로서 통합됨을 보여준다. 원판과 작업실이 작품 제작을 수단이 아닌 과정과 결과물이 통합된 하나의 작품으로서 제시되는 것.
파라다이스집 측은 “매체와 물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사진 혹은 판화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김홍식만의 매체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고, 이런 자신만의 매체를 작가는 ‘통합된 미디엄’이라는 중간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지하 1층은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작가의 작업실이 제시되고, 지상 1층은 원작에서 파생된 신작을 통해 재맥락화와 재구성의 과정, 그리고 2층은 판화에서 사용되는 틀과 지금까지 제작해 온 작품들로 매체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통합된 미디엄의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결과물을 바라보는 외적 시선에서 과정까지 살피는 내적 시선까지 확장된 작가의 시선이 다음엔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지게 하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