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3호 김금영⁄ 2019.04.02 14:33:12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형형색색으로 이뤄진, 마치 상형 문자같이 보이는 화면이 미래에서 온 편지처럼 느껴진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삼청에서 열리는 황규태 작가의 개인전 ‘픽셀’에서 마주한 작품들이다. 원본 이미지를 확대하고 또 확대해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해내는 것, 이것이 ‘픽셀’ 시리즈의 정체성이다.
이번 전시는 작업 초기인 60년대부터 주류나 유행에 타협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실험과 혁신을 추구하며 사진 영역을 확장해 온 작가가, 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진행 중인 ‘픽셀’ 시리즈의 최근 결과물들을 보여주는 자리다.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사진기자로 활동하며 카메라를 손에 든 작가는 예술계 데뷔 이래 실험적인 사진을 찍어 왔다. 50년대 말부터 독자적으로 사진을 연구했고, 60년대에 필름 태우기, 차용과 합성, 아날로그 몽타주, 이중 노출 등을 시도하며 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80년대부터는 디지털 이미지에 관심을 가져 디지털 몽타주, 콜라주, 합성 등 다양한 실험을 거쳤다. 그리고 그 과정의 끝에서 현재의 ‘픽셀’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지금이야 픽셀이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지만, 디지털 이미지보다 아날로그적 성향이 강했던 90년대엔 상황이 달랐다. 당시 작가는 이미지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이 네모 모양의 작은 점들, 즉 픽셀을 디지털 이미지들 속에서 발견하고 흥미를 느꼈다 한다.
작가는 “정말 거창한 계기가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픽셀’ 시리즈를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많은 사진을 찍고 이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사진을 확대해 봤다. 이때 예상치 못했던 굉장히 현란한 픽셀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하학적 이미지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픽셀을 작업으로 끌어온 건 그의 궁금증 덕분이다. 작가는 “나는 원래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다. 현대 예술의 많은 이야기들이 우연 또는 실수로도 탄생한다. 그리고 난 모니터를 보던 중 픽셀이 예술적 이미지로서 지닌 가능성이 궁금해졌고, 이 궁금증이 ‘픽셀’ 시리즈로 나를 이끌었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픽셀’ 시리즈를 작업할 때 러시아 미술가 카시미르 말레비치의 작품이 떠올랐다고 한다. 말레비치는 손수 그린 극한의 미니멀한 하드엣지 작품으로 알려졌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린 말레비치는 구상적 재현의 흔적을 모두 제거하고 원, 사각형 등 기본적인 형태와 색채만으로 순수한 구성을 선보였다. 그리고 본래의 이미지에 확대에 확대를 거듭해 도달한 픽셀의 추상적인 이미지에서 작가는 말레비치의 작품의 흔적을 느낀 것.
그는 “100년 전 아주 먼 과거를 살았던 사람이 손수 그린 그림과 현재 최첨단 디지털 시대의 픽셀 이미지 사이에서 유사성을 느꼈다. 두 작품 모두 굉장히 미니멀하면서도 추상적인 색면의 세계를 지녔다”며 “긴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는 예술의 힘을 느낀 순간이었다”고 자신의 예술적 토대를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포스트 하드엣지’라 칭하기도 했다.
예측 불가능한 지점을 즐기는 재미
‘픽셀’ 시리즈가 작가에게 주는 즐거움이 또 있다. 사진기자였던 시절 그에게 중요한 건 촬영 과정이었다. 하지만 ‘픽셀’ 시리즈는 다르다. 사진의 기본인 ‘촬영’ 과정이 이 시리즈에서는 기본적으로 부재하거나 현저히 부족하다. 촬영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이미지를 ‘선택’하고 ‘확대’하느냐는 것.
이를 작가는 ‘레디메이드’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숨어 있던 픽셀을 내가 ‘선택’하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다. 따라서 원본의 이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즉 전통 사진의 주요 쟁점인 지표성의 가치는 그의 작업에서 희소해지고, 선택과 확대라는 방법의 특성상 원본 이미지에서 파생되는 결과물들은 무한해진다.
여기서 또 작가의 흥미를 끄는 지점이 발생한다. 어떤 이미지를 확대할지 선택하는 건 작가의 몫이지만, 이 이미지를 확대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나올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사진기자였던 시절엔 어떤 이미지가 나올지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가 의도한 대로 카메라는 현실을 포착했다. 하지만 ‘픽셀’ 시리즈에서는 이미지를 확대할수록 본래의 시선이 잡지 못했던, 또 다른 예측하지 못했던 이미지들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난다.
예컨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 중 하나는 영화에서 발견한 ‘피에타’의 인쇄물을 확대한 것이다. 하지만 확대된 이미지만 보고서는 본래의 이미지인 피에타를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결국 피에타에서 시작된 이미지는 피에타에서 벗어난, 또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서의 가능성을 갖게 된다. 이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창조 과정을 작가는 즐기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미지를 선택하고, 확대할지가 작가에게는 즐거운 지점이다. 2층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의 경우 컴퓨터에서 저장했던 이미지를 다시 불러왔다가 깨진 것을 발견하고 시도한 작업이다. 항상 깨끗하고 완전무결한 원본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깨진 이미지를 또 확대해보기도 한다. 작가는 “깨진 이미지는 그냥 눈으로 봐서는 흐릿한데 이를 확대해 픽셀을 보니 선명해지더라. 무한적 증식되는 이미지의 모습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선택과 확대가 중요한 작업이라 기왕이면 원본 이미지에 손을 대지 않지만 색을 살짝 바꾸는 식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3원색이 들어간 이미지엔 이 색을 반전시켜 이미지의 테두리에 마치 액자틀처럼 두르며 이미지가 무한대로 증식하는 듯한 화면을 만들기도 했다.
이미지 확대는 체계적인 분석 아래 이뤄지기보다는 이미지를 지켜보다가 “좋은데?”라는 직관적인 느낌이 오는 순간 멈춘다고 한다. 특별한 기계를 사용하지도 않고 일반 카메라와 컴퓨터를 사용한다. 작가는 “사람들이 작업을 보고 ‘이건 나도 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 21세기의 아트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아라리오 갤러리 측은 “황규태의 작품은 여느 사진 작품처럼 대상을 카메라로 촬영해 그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하는 과정보다, 다른 목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나 모니터 등을 자유자재로 선택 및 확대할 때 발현되는 다양한 형태와 색상의 픽셀을 집요하게 발견하는 것이 기본 골자”라고 밝혔다.
이어 “이 모든 과정을 사진으로 보느냐 마느냐는 문제의 핵심이 되지 않는다. ‘나는 만들지 않았고, 픽셀들을 선택할 뿐’이라고 말하는 그의 전방위적 작품들은 예술의 전통적인 범주나 양식사적 접근으로 축소해서 볼 게 아니라 이미지 연구의 관점에서 더 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삼청에서 4월 2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