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폐기물 대란, 미세먼지 등 오늘날 환경문제는 전 지구적 차원의 이슈다. 예술계 또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전시의 주제로 끌어오고 있다. 아트선재센터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 속 다양한 관계에 대한 확장적인 생각을 포괄하는 ‘색맹의 섬’전, 일민미술관은 전 지구적 맥락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인류세의 문제를 다루는 ‘디어 아마존: 인류세 2019’전을 선보이고 있다.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아트선재센터는 ‘색맹의 섬’전을 7월 7일까지 연다. 전시명은 신경인류학자 올리버 색스의 섬 여행을 기록한 책의 제목과 같다. 그는 섬 핀지랩에서 희귀 풍토병을 두고 주민 개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연구했다. 소수의 색맹 인구가 다수의 정상 색각 인구 안에 섞여 살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또한 색맹 인구에게 필요한 환경이나 능력을 사회 전체가 인지하고자 노력했다.
이 태도는 이번 전시가 환경 문제를 대하는 전체적인 관점과도 맞닿는다. 즉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위의 입장에 있는 게 아니라, 동등한 대상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김해주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은 “오늘도 ‘미세먼지 나쁨’ 등 환경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거리를 걸을 때도 목이 따끔거리는 등 환경 문제를 점점 피부로 체감하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며 “환경에 대한 관심은 미술계에서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그간 환경 문제에 대해 경각심 차원에서 이야기를 많이 다뤘다. 이 가운데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자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더 큰 생태적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말했다.
즉 “우리가 환경을 지켜야 한다”며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한정지어 대상화, 타자화시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공존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을 해야 한다는 것. 그 고찰의 키워드는 ‘공감’과 ‘관계’로 이번 전시를 끌어가는 가장 큰 축이다. 김해주 부관장은 “다른 존재의 입장이 돼보는 것부터 공존의 가능성이 시작된다. 전시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간 중심의 구도에서 벗어나 위상 전환을 제시한다”며 “또한 생태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미시적인 관계 안에서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가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8명/팀이 참여해 ‘함께 살아가기’에 대한 각자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2층 전시장에는 우르술라 비에만과 파울로 타바레스, 비요른 브라운, 임동식과 우평남의 작업이 설치됐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우르술라 비에만과 파울로 타바레스의 ‘산림법’이다. “살아있는 자연에도 인간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 영상 작업은 아마존 지역에서 개발과 대규모 채굴 압박과의 법정 투쟁에서 승리한 사건을 다룬다. 자연을 보호 대상이 아닌 동등한 주체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비요른 브라운은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는다. 들쥐가 지나간 길을 수집해 그 위에 석회를 얹은 작업, 그리고 자신이 직접 키우는 새 두 마리에게 집 지을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해 이들이 완성한 집을 보여준다. 작가의 손길과 자연의 손길이 동등하게 닿은 결과물이다.
역지사지의 관점이 공존의 시작
임동식과 우평남의 이야기는 좀 더 현실과 맞닿는다. ‘들로 던진다, 들에서 내게로 던져져 온다’는 뜻을 가진 야외 중심의 미술행위 야투를 설립한 임동식은 1993년 이래로 원골마을에서 농민에게 더 큰 자연예술가의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과 마을’ 활동을 진행한 바 있다.
우평남은 운전을 못하는 임동식을 여러 장소로 데려다주는 친구로 인연을 쌓았다가 칠십을 넘긴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사람이 자신들의 일생을 사계절에 비유해 풍경의 변화와 함께 표현한 작품 ‘자연예술가와 화가’ 시리즈 등을 소개한다.
임동식은 “자연과 더불어 사유하는 작업을 이어 오다 우평남을 만났다. 당시 그는 산에 버섯, 꿀 등을 직접 채집하러 다녔다. 나도 나름 농경사회의 일원으로 10여 년 생활해 왔을 무렵이었는데, 우평남을 보고 그의 삶의 방식이야말로 농경사회 이전 진정으로 자연과 더불어 산 선사시대의 채렵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며 “근원적 생태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함께 그림을 그렸다”고 작업을 소개했다.
2층 전시장의 작업들이 서로 마주하는 인간과 자연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3층 전시장의 작업들은 ‘공존’에 관한 이야기를 더욱 깊게 파고 들어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보다 주목하는 마논 드 보어와 파트타임스위트, 김주원, 유 아라키의 작업을 소개하며 타인과 ‘함께 있음’의 상황을 은유와 관찰, 개인의 경험과 사회적 현상, 그리고 문화의 번역으로 그려낸다.
마논 드 보어의 영상 작품 ‘벨라 마이야와 닉: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엇인가로, 무엇인가에서 다른 무엇인가로, 파트1’에서는 창 밖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세 명의 모습이 보인다. 서로 다른 소리를 쥔 이 사람들은 악보를 보지 않고 즉흥적으로 서로의 연주에 반응해 멜로디를 내기 시작한다. 그 아름다운 소리의 조화는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과정을 상징한다.
‘이웃들 ver. 1.0’은 전시장 내부와 외부 곳곳에 보급형 IP 카메라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파트타임스위트의 작업이다. 작가의 통제를 벗어난 영상은 우발성이 가득하다. 예상할 수 없는 변칙적인 요소들의 조합은 불안정하지만, 그런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인 흥미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갖고 이어져 간다. 작가는 가깝고도 먼 이웃의 풍경이 보이는 스크린을 하나의 장소로 보고, 그 안의 수많은 목적과 의미, 이름과 이야기로 세계를 구성한다.
스냅사진에서 파생된 김주원의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편집 1-2)’은 어떤 정보가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를 파생하며 하나의 범주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4000장이 넘는 사진들을 사진 찍었을 때의 기억과 찍은 시간 등 정보를 단서를 토대로 연결 시켜 끊임없이 이야기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어떤 테이블에는 어둠에 관련된 이미지들이 모아져 있는 식이다.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는지 이미지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대형 화물용 컨테이너도 전시장에 설치됐다. 유 아라키의 영상 작업 ‘쌍각류: 제 1장’에서 작가는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다양한 장소와 문화, 맥락들과 연결시킨다. 또한 사물이 가진 의미가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르게 번역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전시는 아트선재센터 1층 프로젝트 스페이스에 위치한 쉬탄의 작업으로 마무리된다. 작가 자신의 성찰적인 고백을 담은 작업 ‘사회적 식물과 사유의 발작’과 함께 싱가포르, 교토,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한 인터뷰들을 모은 ‘누가 숲 속에 있던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나’는 자연의 삶과 인간 사회의 삶을 병치하며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폐단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김해주 부관장은 “근본적으로 환경 파괴 원인을 더 큰 생태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게 이번 전시의 제안이다”며 “또한 결국 우리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공존하는가는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와도 직결된다. 이번 전시가 근본적인 공존이 어떤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