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방문했던 같은 공연장에서 ‘혼자의 삶’을 다루는 연극이 펼쳐졌다. 그런데 비슷한 듯 달랐다. 5년 전의 공연은 타인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혼자의 삶을 사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그리고 이번에 마주한 공연은 타인과의 관계 속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번 혼자 꾸역꾸역 밥을 먹는 주인공이 혼자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5년 전 만났던 연극은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다. 학교,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는 20대 히키코모리 청년 스즈키 타로, 20년 동안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은 40대 히키코모리 카즈오가 출장 상담원 토미오와 만나며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최근 마주한 연극 ‘1인용 식탁’은 윤고은의 동명 단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회사에서 이유 없이 따돌림을 당해 혼자 점심을 먹던 인용이 ‘혼자 밥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학원에 등록한 뒤 단계를 밟아 최종적으로는 ‘혼자 고깃집에서 고기 구워 먹기’ 테스트까지 치르는 과정을 다뤘다.
‘나 혼자 산다’를 기사 주제로 정하고 연극 ‘1인용 식탁’ 현장을 찾았을 때 문득 이 공연장에서 봤던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가 떠올랐다. 장소가 같은 이유도 있었지만, 혼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형태의 변화가 5년 사이 느껴졌기 때문.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는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스즈키 타로, 카즈오를 문제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점이 있었다. 원작이 일본의 1990년대 거품경제를 겪고 박탈감을 느끼며 실제 히키코모리의 삶을 살았던 일본 작가 이와이 히데토로부터 비롯됐지만, 당시 한국의 시대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단 히키코모리 문제에만 국한돼서가 아니라 연극이 무대에 올랐던 시기 쏟아졌던 노래, 드라마 등 수많은 콘텐츠에서 혼자 있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그러면 사회생활 제대로 못한다” “그러니까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이라고 다그치는 모습이 흔히 보였다.
또 외톨이를 자처하는 이들은 주로 주눅 든 모습으로 표현됐다. 당시 최고 히트곡으로 꼽혔던 빅뱅의 ‘루저’에서는 “솔직히 세상과 난 어울린 적 없어” “언제부턴가 난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만 해”라는 가사가 돋보였고,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속 카즈오와 스즈키 타로도 늘 우울한 표정에 내면엔 불안과 분노를 품고 있었다. 이런 그들에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타일렀다. 즉 “인간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존의식이 강하게 깔려 있었다.
5년 전과 후 같은 공연장에서 펼쳐진 ‘혼자의 삶’
그런데 연극 ‘1인용 식탁’을 비롯해 요즘 콘텐츠에서는 ‘혼자의 삶’을 꼭 해결해야만 하는 사회적 문제 또는 마냥 처량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비혼주의와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세대의 층이 넓어지고, 이에 따라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받기를 바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점점 형성되면서 오히려 “왜? 뭐가 어때서?”라고 반문하는 느낌이다.
‘1인용 식탁’에서 처음엔 혼밥을 버거워하는 인용의 모습이 나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색한 모두와의 밥보다는 편한 혼밥을 선호하는 모습도 보이고, 결국 각자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혼밥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극의 말미를 장식한다. 관련해 이기쁨 연출은 “극을 통해 ‘혼자 먹는 게 좋다’ 또는 ‘누군가와 같이 먹어야 한다’ 식의 이분법적 결론을 내기보다는 개개인의 존재를 인정, 존중하면서 자신만의 삶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다른 현장에서도 비슷한 지점이 엿보였다. KT&G 상상마당이 홍대 갤러리에 마련한 ‘나 혼자 산다’전은 기획부터 제작, 유통까지 혼자 맡아 자급적으로 해결하는 1인 창작자의 삶에 주목했다. 이 전시는 작품의 첫 시작부터 끝까지, 즉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갖고 당당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1인 창작자의 삶에 다가갔다.
전시에 참여한 고경원 작가는 “혼자 일하면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일할 필요가 없고, 조직 내의 불합리한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혜영 큐레이터는 “참여 작가 4인은 작업의 색깔은 다양했지만 혼자의 삶을 즐기는 가운데 매우 치열하게 산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며 “혼자 고민하고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익숙한 그들의 삶은 1인 가구가 일상이 된 현 시대적 측면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고 짚었다.
1인 가구가 늘며 점점 혼자 사는 삶이 익숙해지는 시대다. 2010년 400만 명에 이르렀던 국내 1인 가구는 2018년 국내 584만 명으로 전체 가구의 29.3%를 차지하고 있으며, 올해 6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브랜드 평판 상위권을 고수하고 있는 프로그램 제목도 ‘나 혼자 산다’고, 올 1월 열렸던 정책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제 더 이상 ‘나 혼자 산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다. 1인 가구가 우리 사회의 보통 가구인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변화된 시대상을 따라 아예 1인 가구를 주요 타깃으로 한 마케팅도 과거와 비교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 1인 가구가 자주 찾는 편의점 CU, 이마트24, GS25 등은 도시락의 고급화 및 가정 간편식 종류 확대, 1인분 제품 출시, 소용량 제품 포장 등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 또 올해 불거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혼자의 시간을 갖게 된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면서 더 이상 혼자의 삶은 특이한, 또는 처량하게 바라볼 것이 아닌 삶의 여러 형태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에 두산아트센터의 연극 ‘1인용 식탁’, KT&G 상상마당 전시 ‘나 혼자 산다’를 비롯해 당당한 혼자의 삶에 주목하는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혼자라서 처량하다”가 아니라 “혼자라 더 빛나고 멋있다”는 이야기도 흔히 들린다. 같은 공연장에서 5년의 시간이 흐른 뒤 비슷한 이야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토록 다양화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문화 콘텐츠와 마케팅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5년의 시간 속 변화를 느낀 현 지점에서 추후엔 또 어떤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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