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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영의 오페라 이야기 (4)] [몬테베르디 – 하] 74세에 작곡한 ‘네로와 포페아의 음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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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84호 이종영 전 경희대 음대 학장⁄ 2020.09.28 10:22:12

(문화경제 = 이종영 전 경희대 음대 학장) 몬테베르디의 마지막 작품이고, 인간의 여러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다룬 세속적이고 현대적 감각을 지닌 걸작 ‘포페아(Poppea)의 대관식’(1643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74세가 넘어 작곡한 이 작품은, 베르디(Verdi)가 생의 후기에 작곡한 위대한 오페라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의 기교도 한창 무르익었고 인생을 유머와 함께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는 시기였다. 이 작품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신화 속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보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 데다 비도덕적이고 나쁜 사람이 주인공이다. 권력과 사랑에 미친 네로와 포페아의 감각적이고 감미로운 사랑 이야기다.

음악 역사학자 도널드 그라우트(Donald Grout)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음악은 거창하지(spectacular) 않고, 이중창 빼고는 앙상블도 몇 개 안 되고, 대단한 장면도 없다. 작곡가의 위대성은 인간의 성격과 정열(passion)을 해석해 나가는 힘에 있다.”

생생하게 그려진 상류사회의 음모와 비밀

몬테베르디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관계를 생생하게 그렸다. 더군다나 네로와 포페아 사이의 유혹적이고 음란한 사랑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그려져 있다. 그 당시 사람들도 상류사회의 음모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모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1570년경에 요염하게 그려진 포페아. 

몬테베르디는 부인이 1608년에 사망한 뒤 1632년 베니스에서 신부가 된 신분으로 이 곡을 썼다. 당시 베니스의 재미있는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13세기 후반부터 베니스는 셰익스피어 연극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인이 가장 많이 들락거리는 번창한 상업 도시였다. 무슬림, 유태인 할 것 없이 외국인이 많이 드나들던 항구 도시로, 한때는 기생 2천 명이 있던 도시였다. 비발디가 가르치던 학교도 그런 도시에서 생겨난 사생아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에 도덕성을 요구하는 가톨릭 교회의 중심이었던 로마와는 적대적 관계일 수밖에 없었고 자주 전쟁을 하는 사이였다.

 

1697년 가스파르 반 비텔이 그린 베니스의 풍경. 

장사로 부유해진 베니스 시민들은 세속적인 오페라를 아주 좋아했다. 1637년 처음으로 베니스에 오페라 극장이 생겼다. 상업으로 돈을 번 시민들이 아무나 표를 사서 들어갈 수 있는 대중 극장이 시작된 것이다. 교회의 음악감독(Master)이었던 몬테베르디는 성스러운 음악을 훌륭히 써냈지만, 이러한 사회적 배경 덕에 오페라를 좋아하는 시민들과 살면서 다시 오페라에 관심을 가졌다. 더군다나 자기보다 30살이나 젊은 부세넬로(Busenello)의 리브레토(대본)는 과감하고 아름답고 변화무쌍하고 혁신적이었다. 부세넬로는 Accademia degli Incogniti(‘익명 아카데미아’: 당시 베니스의 영향력 있고 방종한 조롱을 일삼는 지식인들의 모임)의 멤버였다.
 

1656년 출간된 ‘포페아의 대관식’ 대본집. 표지의 1642년은 이 책의 출간 연도가 아니라 오페라가 탄생한 해를 뜻한다.

황후가 되고 싶어했던 포페아의 비극

이 리브레토의 역사적 줄거리는, 타키투스(Tacitus)의 책 8권 ‘로마 제국의 연보(The Annals of Imperial Rome)’ 중 포페아에 대한 묘사에서 시작된다. 당시 작가에게 역사적 내용을 바꾸는 게 허용되었기에 몇 개의 내용들은 사실과 다르다. 오페라의 마지막 사랑의 장면과는 다르게 네로는 임신한 포페아를 때렸고 그 탓에 그녀가 죽었다는 설도 있다.

오페라의 서막(Prologue)은 행운(Fortune)의 신, 사랑(Cupid)의 신, 미덕(Virtue)의 신 셋이 누가 가장 힘이 강한가를 겨루는 다툼으로 시작한다. 행운은 미덕에게 그것을 지키다 얼마나 가난하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롱한다. 오페라에서는 처음부터 오톤(네로의 비서실장)이 네로의 심부름으로 외국에 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자기의 부인인 포페아가 네로와 사랑에 빠져있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포페아의 사주에 따라, 자신의 제자였던 네로 황제로부터 사약을 받고 죽어가는 세네카의 모습을 그린 루카 죠르다노 작 ‘세네카의 죽음’(1684년). 

포페아는 황후가 되고 싶어 네로에게 부인 옥타비아를 추방하라고 부추긴다. 또한 “당신의 마음을 조종하려고 든다”며 네로의 선생이었던 세네카에게 사약을 내리라고 네로를 조종한다. 다른 한편으로 황후 옥타비아는 포페아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그 일을 오톤에게 시킨다. 오톤은 자기를 짝사랑하는 포페아의 시종 드루실라의 옷을 입고 변장한 상태로 포페아가 정원에서 잠든 새 죽이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 일이 발각된 후 드루실라는 자기가 혼자 한 일이라고 거짓 고백을 하지만 사실을 알게 된 네로는 드루실라와 오톤을 같이 귀양 보내고 옥타비아를 추방한다.

옥타비아 황후가 추방당하기 전에 부르는, 로마에 고별을 고하는 독백의 레시타티브는 초기 Florentine Camerata(바르디 공작 집의 모임)가 무엇을 원했는지를 실감케 하는 걸작이다. 오페라의 마지막은 포페아와 네로의 더할 나위 없이 감각적이고 유혹적인 유명한 사랑의 이중창 ‘Pur ti Miro’의 “난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당신을 가집니다(I gaze at you. I possess you)”로 끝난다.
 

니콜라우스 아농쿠르 지휘의 ‘포페아의 대관식’ 음반 표지. 

뼈대만 그려져 있던 몬테베르디의 악보

몬테베르디 후기 오페라로 오면서 합창은 점점 줄어든다. 아마도 비용 문제였으리라 짐작된다. 합창단이 필요할 때는 교회 합창단을 쓰는 것이 당시 관례였을 것이다. 사실 여러 파트에 대해, 또 어떠한 악기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악보(score)에는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한동안 ‘포페아’의 제일 마지막 노래 ‘Pur ti Miro’에 대해서도 그의 제자 카발리(Cavali)의 것인지 사크라티(Sacrati)의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많았다.

몬테베르디의 음악이 세상에 알려지기 힘들었던 이유 중 큰 하나는, 그의 악보는 주로 뼈대만 그려져 있기에 해석이 어렵고 해석자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데 있었다. 그렇기에 ‘포페아’는 지금도 연주자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또한 바로크 시대의 연주자나 가수들도 대부분 동시에 작곡가였기 때문에 그들은 즉흥 연주로 장식음을 자유롭게 붙였다. 20세기에 활발해진 초창기 음악(early music)에 대한 관심과 사랑 덕에 이 위대한 음악이 우리들 가까이로 다가왔다.

[참고 문헌]
* ‘The Letters of Claudio Monteverdi’, Translated and Introduced by Denis Stevens. Cambridge
* First Nights, Thomas Forrest Kelly, Yale University Press
* Five Centuries of Music in Venice, H.C. Robbins Landon and John Julius Norwich, Schirmer Books
* The Birth of an Opera, Michael Rose, Norton & Company

[들어볼 만한 곡들]
* L’Orfeo, Nikolaus Harnoncourt
* L’incoronazione di Poppea, Nikolaus Harnoncourt, Deutsche Grammophon
* L’incoronazione di Poppea, William Christie, Virgin Classic
* Cecilia Bartoli Live in Italy, Decca
* Philippe Jaroussky, La Voix Des Reves, Virgin Classics


이종영 전 경희대 음대 학장 첼리스트로서 이화여고 2학년 때 제1회 동아일보 콩쿠르에 1등을 했고, 서울대 음대를 거쳐 맨해튼 음대 학사, 석사를 마쳤다. Artist international 콩쿠르 입상, 뉴욕 카네기 홀 연주,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 등으로 활약했다. 예술의 전당 개관 및 10주년 기념 폐막 연주 등 수많은 연주 활동을 펼쳤으며 1996년 Beehouse Cello Ensemble을 창단하고 사단법인을 만들어 음악감독으로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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