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8호 윤지원⁄ 2020.11.17 15:25:38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주관한 2020년 IFLA AAPME 어워즈에서 삼성물산의 래미안아트리치가 ‘열섬현상과 내화’ 부문의 수상작에 선정됐다. 삼성물산의 이번 수상은 국내 공동주택 프로젝트 중 유일한 수상작이며, 2008년부터 총 10개의 프로젝트가 IFLA 수상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문화경제는 래미안아트리치 조경을 담당한 삼성물산 빌딩2팀(조경그룹) 정엽 책임, 전해진 책임, 주소희 선임을 만나, 래미안이 대한민국 아파트 조경을 대표하는 아파트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과, 남다른 자부심에 대해 들어봤다.
‘조경은 래미안’ 평가와 자부심
문화경제 : 우리나라 아파트 업계에 ‘조경은 래미안’이라는 말이 있다. 삼성물산의 조경 역량이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 같다. 우선, 근무하는 사람들로서 프라이드가 남다를 것 같은데?
정엽 책임(이하 ‘정’) : 건설업은 복사이전이 잘 되는 분야다. 남의 것을 따라하기 쉽다는 뜻이다. 삼성물산이 1990년대 최초 도입한 석가산과 2000년대 숲, 생태계류원 도입, 2010년대 가든 스타일 및 지금의 쿨미스트 파고라 개발 등은 다른 건설회사에서도 곧 잘 적용된다. 전문가 입장에서는 복사품의 품질을 알아 보겠지만, 소비자 대중의 눈에는 비슷해 보일 것이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꾸준한 개발 과정을 통해 소비자에게 어필할 점을 찾고, 다르다는 것에 자부심도 느낀다. 그렇기때문에 우린 예전부터 해오던 일을 단순히 계속하면 안 되고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또 너무 급진적이면 시장에서 공감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적 트렌드를 읽고, 고객의 잠재된 요구를 찾는 수준에서 계속 노력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파트업계의 조경은 전부 비슷비슷해지게 된다.
삼성물산은 매년 내부적으로 상품 개발을 한다. 해외 벤치마킹도 늘 적극적으로 한다. 그렇게 트렌드를 읽어 오고, 또 새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아파트에서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대한 고민을 늘 한다.
예컨대 최근 우리는 아파트 각 동의 필로티 공간을 정원으로 꾸미는 필로티 가든을 내놓았다. 래미안 신반포 리오센트에 처음 적용했고, 다른 래미안에도 많이 시공하고 있다.
필로티 가든은 단지 안에서 유휴 공간을 찾고, 아늑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고, 이미 3면이 형성되어있는 실외에, 공간을 만들어내서 조경하는 일이다.
래미안 조경은 전사적 노력의 결과
전해진 책임(이하 ‘전’) : ‘조경은 래미안’은 밖에서만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삼성물산은 예전부터 내부적으로 조경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입사한 후로 자주 느낀 건데, 다른 회사와 비교해도 우리는 회사 내에서 조경에 대한 비중이 확실히 크고, 우리 팀뿐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더 잘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개인적인 역량을 더 발휘하기 좋은 여건이 잘 갖춰져 있다고 느낀다.
그런 노력은 조경 시공을 끝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마지막 마감까지 더 신경 쓰는 것에서 드러난다. 방금 정 책임이 예로 든 필로티 가든의 경우, 디자인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 마감 디테일을 얼마나 신경 써서 했는지에 따라 고객은 품질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점에 더 많이 노력하고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일은 더 많을 수 있지만, 같은 것을 만들더라도 더 좋은 품질로 구현해내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정 : ‘회사 차원의 노력’을 부연하자면, 조경을 잘 한다는 것이 조경만 잘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필로티 가든을 예로 들자면, 래미안은 이미 조경에서 상품화했지만, 타사는 아직 실체화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조경 분야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건축물의 형상과 마감재, 조명과 급배수 등 필로티 내부 공간 연출에는 조경이 아닌 다른 분야의 기술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필로티 가든은 여러 분야 간의 긴밀한 협업으로 조성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현실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쿨미스트 파고라도 마찬가지다. 래미안 아트리치의 쿨미스트 파고라는 조경 디자인에 타분야 전문기술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하이테크 반도체 기술을 도입하고, 독일에서 정밀한 기후 센싱 장비를 들여왔다. 서로 다른 분야의 기술을 시스템화 하기 위해 래미안 제어기술이 적용됐다. 이렇듯 서로 다른 다양한 분야의 협업을 통해서 그 한 가지가 나온 것이다. 고객 눈엔 심플해보일 수 있겠지만, 개발할 때 힘겹던 과정을 생각하면 애정이 남다르다. 그런 점을 고객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
전 : 우린 타 공정과의 협업이 잘 이루어지는 편인 것 같다. 삼성물산이 조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잘 되는 것 같다.
특정 아파트 브랜드에 대해 ‘조경은 래미안’이라는 평가와 호불호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아파트 조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20~30년 전보다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인터뷰 자리에 동석했던 삼성물산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삼성물산 : 최근 소비자가 도시재생사업에서의 조경에 관심을 더 갖게 된 이유는, 조경은 개인 자산이 아닌 공용부문이기 때문이다. 가구나 인테리어 등 세대 내부를 구성하는 것은 맘에 안 들면 소비자 개인이 투자해서 바꿀 수 있지만, 조경은 한번 조성하면 수십 년 동안 유지될 수밖에 없다. 나무 몇 그루 뽑고 다른 나무로 바꾸려고 해도 개인이 그 절차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조경은 처음부터 만족스럽게 그 수준을 갖춰놔야 하지, 나중에 수준을 높이기란 어려운 분야다.
이처럼 단지가 새로 조성될 때에 조경 같은 공용부문에 초반 투자를 많이 한 단지와 그렇지 않은 단지의 수준 차이는 뚜렷하고, 그 차이가 최소 10년 넘게 간다.
이런 것을 지금의 소비자들은 전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재건축 조합이나 사업 주체 입장에서는 조경에 투자를 많이 하고, 성과를 많이 냈던 기업과 손을 잡는 편이 수년 후를 내다봤을 때 더 유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 형태로 정착한 지는 불과 반세기 남짓이지만, 산업 자체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런데 지금의 자연과 사회 등 환경은 전보다 더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아파트도, 아파트 조경도 계속된 변화를 요구받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조경의 미래
문화경제 : 향후 아파트 조경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또는, 조경에 대해 최근 갖고 있는 고민이 있다면?
정 : 갤러리나 고급 호텔과 달리 아파트 조경은 고상한 작품을 구현하는 분야가 아니다. 아파트는 대중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두 사람의 뛰어난 취향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설계를 해야한다.
그래서 예술적인 조경, 학문적인 조경 분야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다소 가볍다, 과하다는 평을 받는 경향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용의 기능을 하는 조경에서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설계를 할 순 없다. 그래서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명품’이란 어떤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삼성물산 : 수주는 결국 조합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발주처인 셈이다.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전 : 최근 우리가 반포3주구 재건축 사업을 수주했다. 그때 고객에게 좋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우리는 반포3주구 조경에서 자연 숲이나 호수 등을 조성하는 등 자연 그 자체를 담아내면 좋겠다는 의도를 품고, 많은 것을 그것에 맞춰 설계하고, 제안했다. 그런 의도에 대해 좋게 평가받았으며, 나중에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연 그 자체를 아파트 조경에 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렇지만 아마 많은 회사가 그것을 위해 고민하고, 기술적으로도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아파트 조경의 본질은 결국 자연 그 자체를 잘 만들어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일이다. 좀 더 자연스러운 자연을 단지 안에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조경을 잘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기술적으로도 뒷받침하는 등 지속 가능한 조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궁극적으로 그런 것을 지향한다.
한편, 최근 고객들이 많이 관심을 보이는 것 중 하나가 ‘정말 잘 쉬는 것’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기는 무엇을 하는 공간, 저기는 무엇을 하는 공간 등등 공간별 용도를 만들어서 제안하기보다, 사람들이 거기서 아무 것을 하지 않고도 정말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 거기에서 잠깐 앉아 쉬기만 해도 평화로움을 느끼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버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주소희 선임 : 개인적으로는, 특정 아이템보다는 ‘래미안=조경’이라는 연상이 보편적이 된 만큼, 래미안 입주민도 프라이드를 갖는 요소가 조경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상품 및 기술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기후변화, 미세먼지, 요즘은 코로나19까지도, 이런 이슈들을 공간적으로 푸는 것에 대한 고민도 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