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7호 옥송이⁄ 2021.04.05 09:36:38
‘유통과 부동산의 분리’. 지난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달라진 유통산업을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대관절 유통이 부동산과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목 좋은 곳에 대형마트나 백화점, 로드숍 등이 즐비했던 것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대신 상권은 디지털로 옮겨가고 있다. 이로 인해 유통 체계는 물론 인력, 매장 구성 등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번 시리즈는 시장의 변화와 유통사들의 각기 다른 대응책을 살핀다. 4편은 실내에 꾸민 조경요소로 고객 방문을 높이는 현대백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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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녹지가 없다면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없다면 100년 후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이 생길 것이다.”
지난 1840년대, 미국의 시인이자 언론인이었던 윌리엄 브라이언트가 대규모 숲 조성을 제안하며 남긴 말이다. 도시화로 몸살을 겪던 뉴욕 시민들은 이 발언을 지지했고, 뉴욕시는 대규모 도시공원 건설에 착수했다. 이후 장장 16년에 걸쳐 완공된 것이 센트럴파크다.
150여 년이 흐른 현재, 다행히 101만 평(센트럴파크 부지) 규모의 정신병원은 생기지 않았고 센트럴파크는 뉴욕의 대표명소이자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숨 쉴 곳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도심 속 녹지 공간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한 윌리엄 브라이언트의 발언은 현재도 유효하다. 도시는 목적을 갖고 설계된 공간으로, 자연과 배제되기 때문이다. 대신 의도적으로 공원 등 녹지를 조성한다면 정신건강은 물론, 도시 환경개선에도 효과적이다. 영국 하이드파크가 런던의 허파가 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도시, 녹지공급률 낮아 … 자연 공간 확대 절실
우리는 어떨까.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의 인구 밀집도가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도시에서 녹지 공간을 제대로 누리고 있을까?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서울을 예로 들며 녹지공급률이 낮은 이유를 지적한다.
그는 “서울의 녹지공급률은 뉴욕이나 도쿄에 비해서 낮다. 하지만 실제로 서울에는 남산이나 한강, 서울숲, 북한산 등 자연 공간이 많다. 이들을 포함 시킨다면 엄청나게 많은 자연 녹지가 있다”며 “그럼에도 녹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첫 번째 이유는 녹지 주변 상황 문제다. 센트럴파크와 크기가 비슷한 서울숲의 경우, 주변에 주거 및 상업공간이 적고 고속도로가 많다”고 했다.
이어 “다른 하나의 이유는 땅의 기울기다. 센트럴파크는 대부분 평지로 돼 있어 다양한 형태의 행위가 이뤄지지만, 남산이나 북한산 같은 산들은 모두 기울어져 있다. 평평한 땅과 비교해 사람이 마주 보며 할 수 있는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기 어려운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즉, 공원은 주거·상업공간과 분리된 지역에 덩그러니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지고, 산은 경사도 때문에 온전히 휴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제대로 된 녹지 공간이 도심에 도입돼야 하는 이유다.
‘글라스하우스’, 눈으로 즐기는 계절 변화
녹지를 반드시 노지(露地. 지붕 따위로 덮거나 가리지 않은 땅)에 가꿔야 하는 건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편견을 깨고 백화점 안에 꽃과 나무를 심었다. 목동점은 ‘정원’, 더현대서울은 ‘공원’을 지향한다. 비슷한 듯 다른 두 곳의 차이는 ‘계절’에서 나뉜다.
통상적으로 백화점에는 암묵적인 공식이 있다. 시계나 창문이 없다는 점이다. 해가 떨어지는지, 시간이 가는지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오로지 쇼핑에 집중하도록 설계된 공간이라서 그렇다. 그러나 최근 리뉴얼을 마친 현대백화점 목동점 7층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것도 제각기 달리 터지는 꽃망울을 통해서.
지난 3월 문을 연 목동점 ‘글라스 하우스’는 유럽의 정원과 온실을 콘셉트로 설계됐다. 기존 문화홀을 자연 친화적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곳은 이름에 걸맞게 벽면이 전면 유리창으로 돼 있다. 덕분에 햇빛이 실내를 채울 뿐만 아니라, 실내 정원과 실외 하늘정원 두 공간의 구획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나의 공간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또한, 천장에 은은한 LED조명이 설치돼 온실에 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무엇보다 이곳의 압권은 식물이다. 실내 정원의 경우, 거대하고 동그란 구멍마다 화단이 조성돼있다. 도톰한 토심 위에 뿌리내린 식물이 각양각색인데, 총 15그루의 나무와 30여 종의 식물이 어우러져 있다. 홀마다 청나래고사리 등의 다년초나 자생식물이 흙을 푸르게 뒤덮고,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 철마다 바뀌는 식물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오렌지 자스민’이 봄을 알린다. 이름대로 오렌지와 자스민 향을 풍기며 꽃을 틔운다. 이후 여름이 되면 홍가시나무가 검은색 옷을 벗고 흰색 꽃을 만개한다. 돈나무로 알려진 만리향도 함께 개화한다. 가을이 되면 다시 오렌지 자스민이 꽃을 피우고, 다른 나무에서는 열매가 맺힌다. 이때 아열대지방에서 서식하는 미니홍콩야자 등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야외 하늘정원에서도 철마다 꽃이 핀다. 봄이면 산벚나무가 흰색 또는 연홍빛 꽃을 틔우고, 연핑크·적색·황색·자색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진 황금조팝나무가 박자를 맞춘다. 꼭 줄기 모습이 국수같다해서 붙여진 자엽국수나무가 여름에 어울리는 연노랑 꽃을 피운다. 하늘정원에 심어진 식물은 총 10여 종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글라스 하우스는 도심 속 정원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식재했으며, 실내 생육이 용이하고 공기정화 효과가 좋은 품종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사시사철 푸른 공원 ‘사운즈포레스트’
목동점에서 계절의 변화를 즐길 수 있다면, 더현대서울은 사시사철 푸른 숲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5층 ‘사운즈 포레스트’는 1000평에 달하는 공간이 실내 녹색 공원으로 꾸며졌다.
바탕이 되는 건 천연잔디다. 이 위로 사계절 내내 잎이 푸르고 낙엽이 지지 않는 나무를 심었다. 호랑가시나무와 은목서가 대표적이다. 두 종 모두 사철나무로, 호랑가시나무의 경우 잎이 두껍고 윤기가 돌아 싱그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이외에 한약재로도 사용되는 여러해살이풀 목향 등을 심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사운즈 포레스트는 고객들이 백화점 실내에서도 사시사철 푸르름을 느끼며 휴식할 수 있는 녹색 공원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더현대서울은 사운즈 포레스트뿐 아니라, 지점 전체에 녹지를 도입했다. 설계부터 그렇다. 모든 층에서 자연 채광을 받을 수 있도록 천장을 유리로 제작했고, 보이드 기법(void. 건물 내부를 오픈한 형태)을 통해 1층까지 햇살이 닿는다. 또한, 매장 곳곳에 꽃과 식물 등의 조경 공간이 들어섰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더현대서울은 영업 면적의 절반이 힐링 공간에 해당하며, 고객 동선을 넓혀 실제 공원을 산책하듯 거닐 수 있다”며 “최근 현대백화점은 자연친화적 요소를 넓히고 있는데, 이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심신이 지친 고객들에게 휴식과 힐링을 제공하기 위한 취지다. 이른바 ‘리테일 테라피(쇼핑을 통한 힐링)’가 차별화된 집객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