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7호 윤지원⁄ 2021.09.01 09:25:05
지난해와 올해, 많은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악재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가 된 기업, 위기를 보란 듯이 극복한 기업들도 있었다. 이젠 백신 개발과 접종에 가속도가 붙었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래가 멀지 않았다. 모든 산업이 재도약을 준비하는 이때,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하고 좋은 성과를 거둔 기업들을 살펴본다. 먼저 HMM이다.
환골탈태(換骨奪胎), 또는 새옹지마(塞翁之馬)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전과 이후 HMM을 한마디로 표현할 때, 어떤 사자성어가 더 잘 어울릴까? 이런 고민이 될만큼 지금 HMM의 상승세는 놀랍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MM은 2분기 매출 2조 9067억 원(이하 연결 기준), 영업이익 1조 3889억 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 대비 매출은 111.4%, 영업이익은 901.3% 증가한 액수다.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은 2조 4082억 원이 넘는다. 올해 연간 영업이익 5조 원 이상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연 지난해 1분기까지 20분기 연속 분기 실적 적자를 기록했던 기업이 맞나 싶다.
HMM은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지난해 2분기에 1387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드디어 적자의 늪에서 벗어났다. 이후로도 HMM의 영업이익은 엄청난 기세로 올라갔다. 지난해 3분기 2770억 원, 4분기 5670억 원, 올해 1분기 1조 190억 원 등 대략 2배씩 증가했다. 특히 올해는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실적을 2분기 연속 갱신했다.
3분기에도 상승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증권 양지환 연구원은 지난 17일 리포트를 통해 HMM의 3분기 매출을 3조 6990억 원, 영업이익을 1조 9120억 원으로 전망했다.
양 연구원은 코로나19 완화에 따른 소비재 수요 증가가 전 세계에서 두드러지고 있고 이에 따라 컨테이너 박스 물동량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3분기 실적호조 예상의 근거로 제시했다.
글로벌 물류 대란, 해운업계엔 호재
영국의 해운 시황 분석 전문기업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세계 물동량 증가율은 6.8%다. -5.7%였던 지난해에 비해 12.5%P 상승한 수치다. 반면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량) 증가율은 지난해 2.6%에서 올해 3.4%로 겨우 0.8%P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불균형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물동량이 증가했어도 화물을 실을 배는 충분히 늘지 못했기 때문이다. 컨테이너선 한 척을 새로 건조하는 것은 1~2년까지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물동량 급증에 바로 대응할 수 없다.
또 다른 원인은 항만 적체 현상의 심화다.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나라와 나라를 오가는 화물에 대한 검역이 철저히 시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선박이 항만에 대기하는 일정이 평소보다 훨씬 길어지고, 그만큼 운항 회차도 줄어들게 됐다.
화물을 실을 빈 컨테이너도 부족한 현상이 발생했다. 항만과 내륙을 오가며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는 육상 물류에서도 검역 강화로 인한 적체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 3월에는 전 세계 물류의 약 12%가 통과하는 수에즈 운하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좌초하면서 6일간 통행이 마비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화물은 많은데 배가 모자란 상황에선 해운 운임이 오른다. KDB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 산업기술리서치센터의 ‘최근 해운산업 동향 및 주요 이슈 점검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컨테이너선 및 벌크선 운임이 전년 동기 대비 5~6배 수준으로 급등했다.
컨테이너선 운임을 대변하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를 살펴보면, 지난해 1월 3일 기준 1022.72포인트였고, 코로나19의 글로벌 유행이 한창이던 4월 24일 기준으로는 818.16포인트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더니 11월 말에는 2000포인트를 넘겼다.
이후 SCFI 증가세는 2900포인트를 넘기지 않는 수준에서 한동안 정체됐고 2월 중순부터는 우하향 곡선을 그리며 낮아졌다. 그런데 3월 말 수에즈 운하 사고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8월 20일 기준으로는 4340.18포인트까지 올라갔다. 지난해 4월 SCFI지수보다 5배 넘게 높아진 것이다.
물동량이 늘고 운임도 크게 오르니 해운업계 전체가 초호황이다.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들 대부분이 2분기에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인 덴마크 머스크의 경우 2분기 51억 달러(한화 약 5조 8450억 원)나 되는 역대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또 HMM이 속한 해운 동맹인 ‘THE얼라이언스’(이하 디얼라이언스) 회원사인 독일의 하팍로이드(Hapag-Lloyd))는 올해 상반기에 잠정 약 42억 달러(약 4조 912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의 3배 이상이라고 밝혔다.
시의적절했던 초대형선 스무척 확보
그런데 해운업 전반이 호황이라 해도 HMM이 그 흐름을 잘 탈 수 있었던 것은 시의적절하게 스무 척이나 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신규로 인도받았기 때문이다.
HMM은 지난해 2만 4000TEU(1TEU는 2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을 새로 인도받아 아시아~유럽 노선에 투입했다. 2만 4000TEU급은 세계에서 가장 큰 컨테이너선으로, 1호선 ‘알헤시라스(Algeciras) 호’는 지난 5월 1만 9621TEU를 선적하고 출항하며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HMM이 보유한 12척은 전 세계에서 새로 건조된 2만 4000TEU급 컨테이너선의 절반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이를 바탕으로 HMM은 늘어난 물동량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고, 32항차 연속 만선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이는 지난해 5년 만의 흑자전환으로 이어졌다.
또 올해는 1만 6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8척을 상반기에 추가로 인도받았다. 이 8척은 모두 북구주 항로에 투입됐으며, 지난 7월 출항한 마지막 배 ‘HMM 누리(Nuri) 호’까지 연속 만선으로 출항했다.
이 스무 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HMM이 지난 2018년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한국해양진흥공사를 통해 무려 3조 1532억 원을 투자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에 발주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배들이 완성될 무렵에 이런 팬데믹이 발생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때다.
이처럼 대형선 위주의 선대를 갖추게 된 HMM의 또 다른 호재는 해운 동맹 디얼라이언스 정회원 가입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의 지난해 10월 보고서에 따르면 하팍로이드, 원(ONE, 일본), 양밍(Yang Ming, 대만) 등 디얼라이언스의 기존 회원사는 2만 TEU 이상의 초대형 선박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HMM의 입지가 크게 개선됐으며, 공동운항을 통한 비용 절감 효과도 컸던 것으로 분석했다.
HMM은 (구)현대상선 시절에 세계 최대 해운 동맹인 ‘2M’의 준회원사였지만 탈퇴하고 지난 2019년 디얼라이언스에 가입했고, 지난해 4월부터 정회원으로 10년간 협력하게 됐다. 세계적 해운 동맹의 정회원 지위를 획득함으로서 HMM은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획득하고, 서비스 네트워크 경쟁력도 강화하게 됐다.
HMM의 초대형선 경쟁력은 향후 2~3년간은 현재처럼 유지될 전망이다.
HMM 관계자는 “물동량 증가로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글로벌 해운사들의 신조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가 많았다”면서도 “하지만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2023~2024년경 까지 현재의 구성은 비슷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HMM은 지난 6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과 1만 3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의 신조발주 계약을 체결했다. 총 1조 7776억 원 규모이며 2024년 상반기까지 모두 인도받게 된다.
3분기와 겨울은 해운업계 전통의 성수기다. HMM은 이에 맞춰 추가 화물 확보를 위해 지속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HMM 측은 “대표 국적 선사로서 책임감을 갖고, 수출기업들의 화물이 차질없이 운송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